[사진기자의 사談진談/신원건]사진가의 새로운 도전, AI 흉내 내기
“몇 장을 합성한 것인지 맞혀 보시오.”(아래 사진)
인간은 ‘따라쟁이’다. 모방을 통해 학습한다. 생각과 행동은 물론이고 남이 만든 것도 따라 한다. 그냥 베끼지만 않는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다른 것을 창조한다. 베끼면 모방이지만, 다른 것을 창조하면 ‘영향을 받았다’라고 한다. 시각·영상 분야도 비슷하다. 패러디와 오마주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인간은 심지어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도 영향을 받는다. 기계와 기술은 인간이 만들었지만 예술가들은 그것을 따라 하기도 한다.
기계를 따라 하는 시각 예술의 예는 많다. 인쇄된 한글체와 똑같이 쓰는 캘리그래피 ‘미꽃체’ 가 대표적이다. ‘기계적 미술’인 사진을 따라 하는 회화도 있는데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된 이른바 ‘극사실주의’ 분야다.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기법의 그림. 카메라의 탄생으로 회화가 위기를 겪은 시기도 있었지만 이를 전복하고 사진에 한 방을 제대로 먹인 예술이다.
몸짓 예술에도 있다. 우리 전통 예술 중에 꼭두각시 춤이 있다. 막대나 실로 조종하는 인형을 흉내 내는 춤이다. 러시아에는 마네킹처럼 뻣뻣하게 쓰러지는 연기로 유튜브 유명 인사가 된 배우가 있다. 1980, 90년대에는 로봇 춤을 추는 댄서들이 많았고 영화 속 슬로비디오를 흉내 내기도 했다.
사진가도 따라 한다. 무엇에 영향을 받을까. 사진은 비교적 역사가 짧다. 길게 잡아도 200년가량에 불과하다. 초창기 카메라 시절, 위대한 사진작가들이 있었다. 사진가들은 여전히 그들의 사진을 따라 앵글을 잡고 순간을 포착한다. 그런데 현대 사진가와 사진기자들에게 큰 영향을 준 대상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이 아닌 다른 분야다. 디자이너와 만화가가 그들이다.
디자이너들은 그래픽이 복잡하면 독자들의 집중력이 떨어짐을 잘 안다. 그래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최소한으로 압축, 단순화한다. 요즘 사진가도 메시지를 단순한 형태로 담기 위해 앵글을 잡는다. 초창기 사진이 ‘가급적 모든 것을 다 보여준다’며 넓게 찍었다면, 현대 사진은 한두 가지 최소한의 메시지만 전달하려 한다. 앵글이 단순해진 이유다.
만화, 특히 캐리커처도 사진에 영향을 줬다. 사진은 초상화를 대신하며 성장했고 인물을 사실적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개성을 못 잡아낸다면 좋은 사진이라 하지 않는다. 캐리커처는 비록 과장일지라도 개인의 특성을 콕 짚어낸다. 사진기자들도 인터뷰 등 인물 사진을 찍을 때 어떻게 하면 개성을 잘 잡아낼까 연구하며 배경과 조명, 표정과 몸짓을 잡기 위해 애쓴다.
신문 사진은 기사와 제목에 크게 영향 받는다. 예를 들어 ‘이제 ○○○의 시간이다’라는 제목의 기사라면 해당 인물이 시계를 보고 있거나 벽시계 아래를 지나치는 순간을 잡는다.
이처럼 텍스트(글)가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분야는 또 있다. 바로 생성형 AI다. 붓이 아니라 프로세서가 픽셀로 그린 그림이다. 이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는 키워드를 잘 구성해 요구사항을 글로 잘 정리해야 한다. 아마도 이 기술은 사진가의 실사(實寫)에도 차츰 영향을 줄 것이다. 내용과 ‘싱크로율 100%’인 그림을 마치 사진처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진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전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하듯,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뇌 과학자들은 인간만이 가진 능력 중 하나로 ‘연결’을 꼽는다. 다른 개체와 상호작용하며 연결해 ‘사회적 뇌’를 만든다는 것이다. 인간은 도움이 된다면 그 무엇이라도 연결하고 차용한다. AI는 사람을 따라 하며 학습하지만 사람도 AI를 베끼며 성장한다. 사진가들이 AI를 활용해 어떻게 다양하고 새로운 사진 분야를 만들어낼지 궁금해진다.
신원건 사진부 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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