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선거 무효? “선거 효력 자체 부정 어려워”
선관위 “미비 통감하나 재선거 사유 아냐”
법조계 “당락 영향 없어 선거 효력 부정 불가”

6.3 전국동시지방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 기습 집회가 이어지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집회 참가자들은 유권자 참정권이 침해된 만큼 '선거 원천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다만 법조계 진단·과거 판례를 바탕으로 미뤄봤을 때 실제 무효 판결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논란은 본투표 당일인 지난 3일 서울 등 일부 지역 투표소에서 준비된 투표용지가 조기에 소진되면서 시작됐다. 정해진 투표시간인 오후 6시를 넘었지만 투표를 못한 대기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투표 무효를 주장하는 일부 단체·시민은 4일 오전부터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앞으로 집결해 기습적인 밤샘 집회를 벌였다.
보수 유튜버 전한길 전 강사를 비롯한 참가자들은 "유권자를 대기시킨 것은 명백한 부정선거이자 관권선거"라며 개표 중단과 선거 무효를 강력히 요구했다.
중앙선관위는 준비 미비로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 지연 사태가 발생한 데에는 책임을 통감하나, 선거 연기·재선거 사유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중앙선관위는 4일 입장문을 발표하고 일부 투표소에서 발생한 용지 부족·투표 지연 사태에 대해 "선거일 일부 투표소의 투표 용지 부족으로 발생한 이번 사안은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현재 진행되는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그럼 유권자를 대기시키면 안 될까. 먼저 현행 공직선거법상 유권자가 정해진 투표시간이 지나더라도, 투표소에서 투표하려고 대기하고 있다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공직선거법에는 '투표소가 마감할 때에 투표소에서 투표하기 위해 대기하는 선거인에게는 번호표를 부여해 투표하게 한 후에 닫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투표 지연 사태가 선거무효를 성립시키진 않는 것으로 보인다.
법·판례에 따르면 선거무효 핵심 요건은 '선거 규정 위반'과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되는 상황이 발생한 경우다.
2022년 7월 대법원 판례를 보면, 한 인천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무효 소송에서 핵심 요건을 갖추지 못해 선거 무효가 아니란 판단을 한 바 있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선거 규정 위반이란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사무 관리집행에 관한 규정을 위반 △후보자 등 제3자에 의한 선거과정상의 위법행위에 대해 적절한 시정조치를 취함이 없이 묵인·방치하는 등 그 책임으로 돌릴 만한 선거사무의 관리집행상 하자가 있는 상황을 말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하는 상황이란 선거에 관한 규정의 위반이 없었더라면 선거의 결과가 달랐을 수 있다고 인정되는 때다.
법조계에서도 대법원 판례 등에 따라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선거 무효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신현목 변호사는 "이번 사안에서 후보자의 당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되지 않는 이상, 선거의 효력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며 "선거 결과보다 유권자 참정권 행사가 사실상 제한되거나 박탈되었는지가 중요하게 다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선거 무효나 부정선거로 확대될 순 없으나, 유권자가 선관위 등에 법적 책임을 물을 가능성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 변호사는 "투표기회를 상실하거나 중대한 제약을 받은 유권자가 존재한다면, 국가배상청구를 비롯한 법적 책임을 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안지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