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칼럼니스트 문주용 기자]
미국이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무단 점령하는 일이 실제 일어날까. '군사작전'을 시사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엄포가 차츰 실현 가능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 그린란드 정부는 미국의 군사 침공 등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에게 가정내 닷새분의 식량을 비축하라는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저항을 하려고?
이에 앞서 트럼프가 '자신'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지 않은 대가'라는 뜻을 담은 편지를 노르웨이 총리에 보냈다. 어이없는 주장이지만 주목해야할 부분이 그 안에 있다.

편지 내용은 이러했다.
“친애하는 요나스 총리, 노르웨이는 내가 8개 이상의 전쟁을 막은 공로가 있음에도 노벨평화상을 수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나는 더 이상 순수한 평화만을 생각할 의무를 느끼지 않습니다. 비록 평화가 항상 최우선일 것이지만, 이제 미국에 유익하고 적절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덴마크는 그 땅(그린란드)을 러시아나 중국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왜 그들이 '소유권'을 가질 자격이 있나요? 문서화된 증거가 없습니다. 단지 수백 년 전 배 한 척이 그곳에 상륙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그곳에 배를 상륙시켰습니다.
나는 NATO 창설 이후 그 누구보다도 NATO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왔으며, 이제 NATO는 미국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린란드에 대한 완전하고 절대적인 통제권을 가지지 않는 한 세계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세상은 트럼프의 미친 야욕을 비난하지만, 이 편지에 숨어있는 미국의 준비에 대해선 주목하지 않는다. '역사 공부'다. 미국 정부는 그린란드가 어떻게 해서 덴마크령이 됐는지를 학습했고, 자신들이 해온 방법과도 비교했다. 자신들의 역사 속에 그린란드 사례와 매우 비슷한 사건이 있다는 것을 미국인들은 알고 있다. 멕시코로부터 텍사스를 빼앗은 사건 말이다.
텍사스를 떠올리는 역사학자들
영화화하기도 했던 알라모 전투. 1836년, 텍사스 샌안토니오 근교의 작은 요새에서 총성과 함께 하나의 선언문이 낭독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멕시코의 변방이 아니다.”
가까운 역사서엔 미국이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매입한 사례가 언급되지만, 멕시코계 후손이나 남서부 지역의 역사 연구자들이 떠올리는 전례는 따로 있다. 텍사스다. 이들은 19세기 초 멕시코 북부에서 벌어졌던 과정을 추적한다.
1836년 텍사스의 독립은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었다. 그해 3월, 멕시코령이었던 텍사스의 샌안토니오 인근에서 교전이 벌어졌고, 이를 기화로 텍사스는 멕시코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다.
알라모 전투로 상징되는 이 시기는 흔히 ‘독립 전쟁’으로 기억되지만, 역사학자들의 평가는 다르다. 텍사스의 독립은 갑작스러운 독립선언이 아니라 장기간 축적된 변화의 결과물이었다.
1820년대 멕시코와 신생 미국의 국경은 이미 흐려지고 있었다. 멕시코 정부는 개발을 목적으로 미국 이주민의 정착을 허용했다. 이주민들은 특유의 성실함으로 농지 개간과 함께 상점, 학교, 교회를 세우고 마을을 키워갔다. 미국 정부는 이들 이주민들에게 은근히 멕시코 접경지대 정착을 장려했다.
멕시코가 이들의 움직임을 주시할 여력이 없었던 사이에 미국은 이들의 인구를 늘리기 위해 동화책와 진흥책을 썼다. 그리고 얼마 뒤인 1823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은 "유럽 세력들은 서반구에서 더 이상 땅 욕심을 내지 말라"는 경고의 독트린을 발표했다. 멕시코령 텍사스를 염두에 둔 포석이었을까.
10여 년이 지나자 텍사스의 인구 구조는 확실하게 바뀌었다. 그 지역의 멕시코 인구는 수천 명에 그쳤지만 신교도 정착민들의 수는 2만 명에 육박했다. 행정 언어는 스페인어에서 영어로 변했고, 상거래는 미국 달러 기준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멕시코의 주권은 유지됐지만, 일상과 경제는 이미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때까지 미국 정부는 개입하지 않고 추이만 지켜만 볼뿐이었다. 이를 '개인의 이주와 선택'이라고만 설명했다.

독립, 병합, 그리고 전쟁
1836년 2월 23일 텍사스 생안토니오의 알라모 전도소에서 윌리엄 트래비스, 제임스 보위 등은 180~250명의 정착민과 함께 독립을 선언하고 멕시코와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멕시코에서는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 대통령이 직접 1800~6000명이나 되는 군대를 이끌고 북상해 반란군 진압에 나섰다. 3월 6일 새벽 멕시코군의 전면공격으로 텍사스 군은 전멸한다. 그러나 한달 뒤 샘 휴스턴이 이끄는 텍사스군은 샌 재신토 전투에서 '알라모를 기억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산타 안나의 멕시코 군대를 기습해 대승을 거두고 독립을 쟁취한다.
독립 선언 이후 텍사스는 약 9년간 독립국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재정은 취약했고, 멕시코와의 군사적 긴장은 지속됐다. 1845년, 텍사스는 미국 연방 가입을 요청했고 미국은 이를 승인했다.
이 결정이후 '미·멕시코 전쟁(1846~1848)'으로 이어졌으며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통해 멕시코는 전체 영토의 약 55%를 미국에 할양했다. 멕시코는 결국 리오그란데 강의 남쪽 제방 모래밭에서 끝나는 국경선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이 때에 텍사스와 별개로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애리조나, 네바다, 유타, 콜로라도 일부도 1500만 달러를 받고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했다. 미국 사회는 이를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 불렀다.

2026년 1월, 그린란드 북서부
2026년 그린란드는 어떻게 될까. 그린란드 북서부의 피투피크 우주기지에서는 미군 레이더와 위성 감시 시스템이 북극 상공을 상시 감시중이다. 기지 주변은 얼음과 바람뿐이나, 이곳은 미국의 미사일 조기경보 체계에서 핵심 거점이다. 러시아의 ICBM을 가장 빨리 격추할 수 있는 기지다.
피터 헤그세스 미 전쟁부 장관은 “이건 매입 제안이 아니라 국가 안보 우선순위”라며 병합의 명분을 제시했다. 미국은 그린란드의 병합에 대해 ‘북극의 운명’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19세기 미국이 대륙 확장을 정당화했던 논리로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와 비견된다.
미국은 텍사스 사례와 비슷한 병합의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지휘력을 잃은 나토와 유럽연합은 미국의 행보를 저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그린란드에 대해 1단계 경제 지원 →2단계 자치권 확대 →3단계 정치적 선택(합병)을 제안할 전망이다. 알라모 전투의 지휘관처럼 그린란드 주민중에도 미국 편이 되자고 나서는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반대로 끝까지 항전하자고 할 수도 있다. 그들이 미국의 야욕을 막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