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몰랐나?”…대세는 ‘착한’ 다이아몬드라는데 [뉴스 쉽게보기]

임형준 기자(brojun@mk.co.kr), 박재영 기자(jyp8909@mk.co.kr) 2023. 9. 1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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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반지. /사진=드비어스
최근 들어 기술 수준이 크게 발달하면서 시장의 판도가 확 바뀌고 있는 분야가 있어요. 반도체나 인공지능(AI) 같은 첨단 산업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오늘 소개해 드릴 분야는 조금 다른 쪽이에요.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보석으로 여겨지는 ‘다이아몬드’ 시장의 변화를 살펴봤어요.
가장 비싼 보석이 갑자기 저렴해졌다?
영원함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귀하게 여기는 만큼 좀처럼 가격이 잘 내려가지 않는 보석이었어요.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보석이니 할인 판매를 하는 경우도 드물었죠.

그런데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이 최근 1년 동안 40%가량 급락했어요. 미국 경제 전문매체인 포춘(Fortune)에 따르면 세계 1위 다이아몬드 기업인 드비어스(De Beers)는 결혼반지에 주로 쓰이는 원석인 ‘셀렉트 메이커블’ 다이아몬드 가격을 지난 7월에 대폭 인하했어요. 1년 전만 해도 1캐럿당 1400달러(185만원)였던 가격은 850달러(약 112만원)가 됐어요.

이 회사는 다이아몬드 가격이 전보다 저렴해진 이유를 “팬데믹 여파로 자연스럽게 줄어든 수요”라고 설명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다이아몬드값이 급격히 하락한 이유가 따로 있다고 분석해요.

천연 원석 가격의 변화를 나타낸 국제 다이아몬드 가격지수는 지난해 3월 158을 넘기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이후 쭉 하락세예요. 지난 14일엔 111까지 하락했죠.

자료=IDEX
‘실험실 다이아몬드’의 역습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 하락의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되는 건 인조 다이아몬드의 인기예요. 실험실(lab)에서 만들어졌다는 뜻에서 ‘랩그로운(lab grown)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인조 다이아몬드가 너무 인기라, 천연 다이아몬드를 찾는 사람이 줄었다는 거예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주목받는 건 당연히 저렴한 가격 때문이고요.

실험실에서 만들어 낸 인조 다이아몬드는 전 세계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어요. 천연 다이아몬드는 지구 내부의 탄소 덩어리에 수백만 년 이상 고온·고압이 가해지며 만들어지는 희귀한 광물인데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이런 자연의 과정을 실험실에서 재현해서 몇 주 만에 빠르게 만들어 낸 다이아몬드를 말해요.

‘길러낸’이라는 뜻의 그로운(grown)이 붙는 이유는 아주 작은 다이아몬드를 자라게 하는 방식을 많이 쓰기 때문이에요. 탄소 파우더에 철·니켈 등 금속 촉매제를 넣고 고온·고압으로 합성하면 ‘씨앗(Seed)’으로 불리는 아주 작은 다이아몬드가 점점 커진다고 해요.

인조 다이아는 천연보다 안 좋을까?
실험실에서 만드는 다이아몬드는 1950년대부터 공업용으로 제작돼 왔어요. 그러다가 기술이 발전해서 2010년대에는 보석용으로 쓸 만한 원석까지 본격적으로 만들게 됐고, 이후로도 점점 수준이 높아졌죠. 놀라운 건 이렇게 만들어 낸 다이아몬드가 광산에서 캐낸 천연 다이아몬드와 사실상 같은 물질이라는 거예요.

사람이 만든 것이긴 하지만, 인조 다이아몬드는 물리적·화학적 기준으로 보나 광학적 기준으로 보나 천연 다이아몬드와 100% 일치한다고 해요. 전문가들도 맨눈이나 확대경으로 자연산과 인조 제품을 구분할 수 없는 수준이고, 특수한 검사 기계를 사용해야만 겨우 구별이 가능할 정도래요.

인조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천연 다이아몬드의 10~20% 수준밖에 안 돼요. 2016년에 천연 다이아몬드보다 겨우 10%쯤 저렴했던 가격이 계속해서 하락해 왔죠. 자연산과 달리 제조 기술 발전에 따라 가격이 더 하락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고요. 사실상 같은 물질인데 10분의 1 정도의 ‘착한 가격’이라니, 합리적 소비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가격만 착한 게 아니다?
인조 다이아몬드의 인기는 기본적으로는 당연히 저렴한 가격 덕이겠지만, ‘착한 가격’외에도 주목받는 이유가 더 있어요. 바로 천연 다이아몬드의 생산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에요.

천연 다이아몬드는 채굴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발생하는 데다, 오랫동안 노동력 착취 논란도 겪어왔어요. 특히 시에라리온 등 아프리카의 일부 분쟁 지역에서는 다이아몬드 암거래가 군사적 자금줄로 쓰이면서,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시민들이 탄광에서 착취당하는 일이 빈번했어요. 이런 다이아몬드에는 착취당한 이들의 피가 묻어 있다는 비유적 표현인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말도 널리 알려져 있죠.

실험실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들 땐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니까, 윤리적 이유로 다이아몬드 소비를 꺼렸던 사람에게 인조 다이아몬드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자료=폴 짐니스키, 얼라이드 마켓리서치
시장조사업체인 폴 짐니스키에 따르면 세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 규모는 지난 2016년 10억 달러 미만이었지만, 작년(2022)엔 120억 달러까지 커졌어요. 다른 시장조사업체(얼라이드 마켓리서치)는 이 시장이 2030년이면 499억 달러까지 커질 거라는 전망을 내놨어요.
한국도 뛰어든 ‘실험실 다이아’ 경쟁
원래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은 몇몇 대형업체가 대부분을 차지한 구조였어요. 하지만 기술력만 있으면 어느 업체나 만들어 낼 수 있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주목받으면서, 다이아몬드 시장의 판도는 바뀌기 시작했어요.

현재 실험실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미국, 인도, 중국, 일본, 싱가포르, 독일, 이스라엘, 한국 등 8개국이에요. 중국이 가장 많은 양을 생산하고, 그 뒤를 인도가 바짝 뒤쫓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올해 처음으로 생산에 성공했어요. 경쟁하는 업체는 30여 개라고 해요. 워낙 유망한 시장이다 보니 천연 다이아몬드를 다루던 기존 업체들도 인조 다이아 생산에 뛰어들었어요.

인도의 경우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국가 차원에서 중요한 산업으로 여기고 있을 정도예요. 지난 6월 미국을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에게 7.5캐럿짜리 인도산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선물했어요. 인도 정부는 “태양열·풍력 에너지를 사용해 친환경적으로 만들었다”는 설명도 덧붙였어요.

보석 시장 지각 변동 계속될까요
최근 상황을 보면, 인조 다이아 열풍이 시장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는 분위기예요. 천연 다이아 대비 인조 다이아 판매 금액 비중은 2020년 2.4%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9.3%까지 커졌어요. 가격 차이를 고려해서 판매량만 따지면 이미 25~35%에 이를 것으로 보인대요.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보석 업체들은 인조 다이아몬드 취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요. 스와로브스키 등 많은 업체들이 판매 비중을 늘리고 있고, 덴마크 보석 제조 회사인 판도라는 재작년에 “더는 천연 다이아몬드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어요.

예전에는 인조 다이아 활용을 꺼렸던 명품 브랜드도 점점 인조 다이아를 채택한 제품을 출시하는 모양새예요. 스위스의 시계 브랜드 태그호이어와 브라이틀링이 대표적이에요. 세계 최대 명품 기업인 LVMH(루이비통 모에 헤네시)는 지난해 7월 9000만 달러(약 1200억원)를 이스라엘의 인조 다이아몬드 스타트업에 투자했어요.

전문가들은 LVMH 등 명품 기업들이 ESG 경영을 중시하는 최근 분위기를 고려할 때, 향후 인조 다이아몬드의 활용 비중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해요.

‘가장 비싼 보석’이자 ‘영원의 상징’으로 사랑받아 온 다이아몬드, 이제는 실험실에서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면서 세계 보석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데요. 과연 실험실에서 만들어 낸 다이아몬드도 앞으로 오래오래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대량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만큼, 결국 가치가 줄어들게 되는 건 아닐지 한번 지켜볼 만하겠네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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