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토요일 사직에서 있었던 중계방송에서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페라자와 레이예스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스위치 히터고요. 두 팀(롯데와 한화)에는 오랜만에 한 시즌을 풀로 소화하고 있는 외국인 타자입니다.“
더 공통점이 많은데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다른 상황이 발생하는 바람에 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두 선수의 '공통점'에 대한 쓸 데 없는 애프터 서비스입니다.
(특히 음악에 관심이 없으신 분이나 야구에 대해 진지한 접근을 하시는 분은 이 글을 읽지 않으시는 것이 정신 건강에 더 도움이 되실 수 있습니다.)
페라자와 레이예스는 국적이 같습니다. 모두 베네수엘라 출신입니다. 또 멀티 포지션(내외야)을 소화할 수 있는 스위치 히터(좌우양타)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둘은 모두 KBO 데뷔 시즌에 한 팀에서 풀 시즌 소화가 매우 유력합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야구를 보면서 누구나 알 수 있는 공통점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숨겨진 공통점은 바로 '징기스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독일의 팝 그룹 '징기스칸(Dschinghis Khan)'이고, 거기서 좀 더 범위를 좁히면 '징기스칸'의 리더 ‘레슬리 만도키(Leslie Mándoki)’입니다. 레슬리 만도키는 우리 한국과 큰 인연이 있는 뮤지션입니다.
페라자는 그룹 징기스칸의 세계적인 히트곡 '징기스칸'의 가사를 바꾼 곡을 응원가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페, 페, 페라자~’하는 그 부분이 ‘징, 징, 징기스칸~’의 후렴구 파트입니다.
이 곡은 1979년 유로 비전 송 콘테스트를 통해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 곡은 국내에서 1980년대 초반 금지곡이었는데도 모두가 다 알고 흥얼거렸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1986년, 당시 세계적인 셀럽이었던 징기스칸은 서울 국제 가요제에 초청 가수로 한국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당시 헝가리의 뉴튼 패밀리(Newton Family)라는 밴드도 서울 국제 가요제에 참가했습니다. 뉴튼 패밀리는 당시 한국형 발라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Smile Again이 한 영화의 OST로 국내에서 히트하면서 큰 인지도를 가지고 있던 밴드였습니다. 이 밴드의 보컬 중에는 '에바 선(Eva Sun)'이라는 여성 멤버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현재 이름이 '에바 만도키'입니다.
그렇습니다. 둘은 1986년 서울 국제 가요제를 통해 만남을 가졌고, 서로에게 반해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그 둘을 만나게 해준 장소 Korea에 대한 애정을 담은 노래를 발표했습니다. 그 곡이 바로 1987년에 발표한 '만도키&선'의 KOREA입니다.
이 곡은 우리에게 1988년 일본의 여자 아이돌 소녀대의 '코리아'(또래들끼리 '성큼성큼 코리아'라고 했던)로 추후에 더 널리 알려지는 그 곡의 원곡입니다. 그리고 '성큼성큼 코리아'의 그 후렴구가 지금 롯데팬들이 ‘빅터 레이예~스’를 외치는 바로 그 부분입니다.
두 팀의 효자 외국인 타자 두 선수가 야구팬들이 자신들을 불러주는 응원가로도 서로 엮여있다는 것을 과연 알고 있을까요?
지난 9월 15일. KBO리그는 1000만 관중을 돌파했습니다. 1000만 관중에게 야구장이 즐거운 이유는 그라운드에서 펼쳐지고 있는 야구만이 전부는 아닐 겁니다.
이들에게 야구장에서 즐거울 수 있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우리 야구장만의 응원 문화입니다. 특히 응원가의 경우 각 팀의 응원 단장들이 선곡하고 가사를 붙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페라자와 레이예스의 팀, 한화(홍창화 단장)와 롯데(조지훈 단장)는 모두 응원 단장이 70년대 생입니다. 이들의 뛰어난 감각 덕분에 과거 올드팝 명곡들이 KBO 구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되살아날 수 있는 겁니다.
롯데의 정훈이 타석에 들어올 때마다 ‘오~ 정훈!’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오! 정훈’은 어쩌면 KBO의 응원곡 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할 닐 세카다의 ‘Oh! Carol’입니다. 저는 뮤지션 '닐 세카다'와 그의 명곡 ‘Oh! Carol’이 우리 리그와 함께 더 오래 생명력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처럼 음악을 야구 만큼이나 좋아하는 사람들은 야구장에서 들려오는 음악의 원곡을 따져보고 관계를 분석하는 것도 투수들 구종 분석 만큼이나 재밌고 즐겁습니다. 아마 저 같은 사람이 야구장에서 저 한 명 만은 아닐 거예요.
1222년, 위대한 정복자 징기스칸은 전진교(도교의 한 종파)의 장춘진인과 직접 만나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장춘진인은 그런 방법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장춘진인 구처기가 아무리 도력이 높은 인물이었다고 해도 1000년이 지난 2024년에 KBO에서 징기스칸이 페라자가 되어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절대 예측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