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원작 소설에 가깝게…소리로 풀어낸 ‘서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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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미친 비정한 아버지는 잠든 딸의 눈에 청강수(염산)를 붓는다.
'오리지널'이란 부제를 붙인 소리극은 원작 소설에 충실하다는 점을 부각한다.
소리극에서도 아비는 딸에게 염산을 부은 사실을 끝까지 함구한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선 이 장면을 모호하게 처리했는데, 오리지널을 표방한 소리극은 원작을 그대로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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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미친 비정한 아버지는 잠든 딸의 눈에 청강수(염산)를 붓는다. 가슴속에 한을 심어주고, 눈으로 뻗칠 기운이 목청으로 쏠리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그래놓고 고통 속에 울부짖는 딸에게 “소리나 하라”고 다그친다. 아버지의 짓일 거라곤 상상도 못하는 딸은 이렇게 쏘아붙인다. “아부지, 돌으셨소? 지 딸 눈깔이 멀었는디 지금이 소리나 할 때요?”
서울 중구 국립 정동극장에서 17일 개막한 ‘서편제; 디 오리지널’의 한 대목. 객석에서 탄식과 한숨이 섞여 흐른다.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있다. 원작은 소설가 이청준(1939~2008)이 1976년 발표한 단편. 이번엔 소리꾼들이 북 치고 장구 치며 노래하는 소리극이다. 정동극장이 개관 30돌을 맞아 제작했는데,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만든 고선웅이 각색·연출을 맡았다.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1993)는 최초로 ‘서울 관객 100만’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 흥행 신기록을 세웠다. 이후 2010년 영화를 각색한 뮤지컬이 나왔고, 2013년 국립극단 창극으로도 변주됐다.

‘오리지널’이란 부제를 붙인 소리극은 원작 소설에 충실하다는 점을 부각한다. 영화엔 아버지 유봉과 딸 송화가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소리극의 주인공은 원작처럼 그저 이름 없는 ‘아비’와 ‘소녀’다. 영화에선 유봉이 세상을 뜨기 전에 딸에게 자신이 눈을 멀게 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원작은 이와 다르다. 소리극에서도 아비는 딸에게 염산을 부은 사실을 끝까지 함구한다. 개막에 앞서 지난 17일 기자들과 만난 고선웅 연출은 “어설프게 만들어 본질을 훼손하는 대신 원작의 텍스트를 충실하게 표현하고 싶었다”며 “원작자인 이청준 선생님이 보시고 행복해하실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고 말했다.
아무리 득음을 위해서라고 해도 딸의 눈을 멀게 한 아비의 행동은 용납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선 이 장면을 모호하게 처리했는데, 오리지널을 표방한 소리극은 원작을 그대로 재현한다. “이 인물이 우리 시대에 맞냐, 안 맞냐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고 연출은 “모질고 비정하고 폭력적인 아버지지만 하나의 캐릭터인 것”이라며 “문학은 문학으로 충분히 허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리극답게 150분 내내 소리에 집중한다. 판소리 다섯바탕의 눈대목과 단가, 민요를 포함해 22곡이 나오는데, 이야기의 흐름과 노래의 가사가 조응하도록 절묘하게 곡을 배치했다. 구멍이 숭숭 뚫린 폐가에서 한겨울을 보내야 하는 부녀의 가련한 처지를 ‘가난이야 가난이야 원수년의 가난이야’로 이어지는 ‘흥보가’의 ‘가난타령’보다 더욱 설득력 있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비는 딸을 윽박지르면서 사납게 북을 치며 ‘불쌍타, 내 제비야’라며 ‘흥보가’의 ‘제비 새끼 살리는 대목’을 불러 제낀다. 소녀가 오빠와 상봉하는 대목에선 ‘비 맞은 제비같이’로 시작되는 ‘춘향가’ 이별 장면이 흐른다. 마지막 장면에선 한승석 음악감독이 유일하게 작창한 창작 소리가 나온다. 고선웅과 한승석은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와 ‘귀토’에서 합을 맞춘 바 있다.
소녀 역은 국립창극단 단원 김우정과 서울대 국악과 학생 박지현이, 아비 역은 남원시립국악단 악장 임현빈과 국악밴드 ‘이날치’ 멤버 안이호가 연기한다. 11월9일까지.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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