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민사소송 중 개인정보 노출 막을 방법이 없다?
범죄피해자들 보복 두려움에 민사소송 포기…형사 배상명령 제도도 사실상 무력
소송 중 피해자 신원보호 민사소송법 개정안 국회 계류…외국은 '주소비공개제도' 등 활용
(서울=연합뉴스) 우혜림 인턴기자 = 일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더욱이 가해자가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취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보복 범죄에 대한 우려까지 나온다.
해당 사건의 피고인 A씨는 지난해 부산 진구에서 귀가하던 피해자 B씨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살인미수 혐의로 12년형을, 2심에서는 성폭행미수 혐의가 추가돼 20년형을 선고받았다.
피해자 B씨는 지난 6일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그 사람(가해자)이 구치소에서 제 주민등록번호와 이사 간 아파트 주소를 달달 외우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라며 "민사로 정보를 받은 것 같다. 상세 주소를 알고 있고 때려 죽이겠다는 말을 하고 있어 너무 불안하다"라고 두려움을 호소했다.
그에 따르면 B씨가 A씨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현행 제도상 민사소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정보 노출을 막을 방법은 없는 걸까?
![늘어나는 보복범죄(CG)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6/15/yonhap/20230615061619861ogol.jpg)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소송 당사자와 법원은 여러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작성되는 문서는 소를 제기하는 원고가 법원에 제출하는 '소장'이다. 소장을 통해 소가 접수되면 법원은 소송과 판결 집행 과정에서 판결문, 결정·명령서 등을 작성한다.
사법정책연구원의 2020년 보고서 '민사소송 및 집행 절차에서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민사소송 중 개인정보 노출은 원고가 작성하는 소장에서부터 발생한다.
민사소송법(274조)은 소송 당사자가 소장 등에 기재해야 하는 개인정보로 성명과 주소를, 민사소송규칙(2조)은 성명과 주소, 연락처를 규정하고 있는데 실제 소장 서식을 보면 이에 더해 주민등록번호를 작성하는 기재란이 존재한다. 작성된 소장은 실명으로 상대방, 즉 피고에게 송달되기 때문에 원고의 주소와 연락처,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될 수밖에 없다.
![민사소송에서 작성되는 소장 서식 [출처=사법정책연구원(2022)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6/15/yonhap/20230615061620017xmca.jpg)
이는 법원이 작성하는 문서에서도 마찬가지다. '재판서 양식에 관한 예규'(9조)에 따라 민사·행정·특허·도산 사건의 판결문에 주민등록번호는 적지 않지만 당사자의 성명과 주소는 기재한다. 결정·명령서에도 주민등록번호는 거의 기재하지 않지만 성명과 주소는 기본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이렇게 민사소송 과정에서 당사자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건 손해배상 집행 절차에서 법원이 당사자의 동일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즉 집행 절차에서 누구의 계좌를 압류하고, 압류된 금액을 누구에게 지급할지를 명확히 특정하기 위해 개인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법정책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외국의 경우 성명, 생년월일만 조합해도 많은 사람을 식별할 수 있지만, 동명이인이 많고 주거 이동이 잦은 우리나라의 경우 신원확인을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한 개인정보 수집이 불가피하다"라고 설명했다.
![한국과 해외 국가의 거주 가구 주거 이동 비율 [출처=사법정책연구원(2022)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6/15/yonhap/20230615061620093nesc.jpg)
하지만 부산 돌려차기 사건처럼 범죄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손해배상 소송 등을 제기할 때는 이러한 개인정보 노출이 신변의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소장을 제출할 때부터 가해자에게 개인정보가 노출되기 때문에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큰 범죄피해자들은 소송을 꺼리게 된다.
법무법인 광야의 양태정 변호사는 "범죄피해자들에게 민사소송 시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 있다는 걸 설명하면 소송을 해야 하는 상황에도 이를 포기하는 경우가 꽤 많다"며 "실제로 가해자 측에서 찾아와 합의를 요구하거나 소송을 취하해달라고 회유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보복의 위험을 무릅쓰고 소송을 제기할 경우 피해자들은 이사를 하거나 주민등록번호를 바꾸는 등 개별적 조처를 하느라 여러 사회적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21년 진행한 '여성폭력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권리 확대를 위한 방향 모색 좌담회' 자료집을 보면, 한 성폭력 피해자는 "민사소송 진행 시 거주지 주소를 가해자에게 노출하지 않기 위해 친척 집에 위장 전입신고를 한 상태"라며 "왜 이러한 불법행위를 저질러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손문숙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상담팀장은 자료집에서 피해자의 청구권을 위축시키는 소송 절차를 꼬집으며 "개인정보 노출로 인한 이사, 이직 및 퇴직, 전학, 전화번호 및 주민등록번호 변경 등 피해자의 자원을 새롭게 재편하는 데 드는 비용과 사회적 단절은 모두 피해자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여성폭력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권리 확대 사전설문조사 내용 중 일부 [출처=한국여성의전화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6/15/yonhap/20230615061620258zqxl.jpg)
주소 노출에 대한 위험은 소송이 끝나도 존재하는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민사상 '공탁'을 신청할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공탁은 금전, 유가증권 등을 국가기관에 맡기는 제도로 채무자가 채무를 갚으려고 하는데 채권자가 이사했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등의 경우 활용할 수 있다. 공탁 규칙(20조)에 따라 공탁을 신청하는 사람은 자신의 개인정보와 함께 상대방(피공탁자)의 성명과 주소,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한 공탁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만약 상대방의 주소를 모를 경우 주민센터에서 피공탁자의 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피공탁자의 동의가 요구되지 않아 피해자는 모르는 사이 자기 주소를 가해자에게 노출할 수 있다. 또한 현행 공탁 규칙(16조) 상 공탁자가 피공탁자의 주소를 밝히는 자료를 제출할 때는 3개월 이내의 것이어야 한다는 제한이 있어 피해자가 민사소송에서 승소하고 주민등록지를 이전했다 하더라도 현주소지가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공탁 규칙(20조) [출처=국가법령정보센터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6/15/yonhap/20230615061620493pcoe.jpg)
이처럼 민법상 범죄피해자의 보호조치가 없는 것은 형법과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형사소송법(35조 3항)은 피해자나 증인 등 사건관계인의 생명 또는 신체의 안전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재판기록에 대해 비실명 처리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23조)에 따라 성폭력 피해자와 범죄 신고인의 인적 사항은 조서 등의 서류에 기재하지 않는다.
이승혜 변호사(변호사 이승혜 법률사무소)는 "형사 사건의 경우 공소장과 증거 기록 등에서 피해자의 인적 사항을 전부 가리거나 가명을 사용하는 등 보호 장치를 마련하고 있지만 민사는 그런 제도가 없기 때문에 범죄피해자들이 더 큰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종합해 보면 현행 법과 제도상으로는 민사소송 과정에서 사실상 피해자의 개인정보 노출을 막기 어려운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법원 (CG)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6/15/yonhap/20230615061620607koqb.jpg)
범죄피해자가 민사소송으로 가지 않고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형사 배상명령 제도'도 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배상명령 제도는 형사소송에서 피고인이 범죄행위로 인한 물적 피해나 치료비 및 위자료를 피해자에게 배상하도록 명령하는 제도로, 1심이나 2심 공판 절차에서 유죄 판결을 선고하는 동시에 재판부의 직권 또는 피해자나 상속인의 신청으로 명령할 수 있다. 강도, 절도, 폭력 행위, 사기, 성폭력, 가정폭력범죄 등이 신청 대상 사건에 해당한다.
한국경찰법학회의 2022년 논문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기본계획과 배상명령제도'(장응혁)에선 배상명령 제도는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데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법관의 소극적 태도 등으로 제도의 실질적 효과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형사 재판부가 민사상 손해배상을 산정하는 것 자체가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해 재판이 지연되거나 배상 신청이 위축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판부 직권으로 한 배상명령은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단 한 건도 없었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배상명령사건 신청 및 처리 현황 [출처='범죄피해자 보호·지원 기본계획과 배상명령제도'(장응혁)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6/15/yonhap/20230615061620720jbld.jpg)
법관이 배상액 판단에 소극적이다 보니 배상명령 신청이 인용되는 사건은 피해 금액 산정이 쉽고 추가적인 업무 부담이 없는 재산 범죄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다. 법무부가 지난해 4월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5년간 1심 배상명령의 인용액 대부분을 사기, 절도 등의 재산범죄가 차지했고 성범죄의 인용액은 전체 평균의 0.49%에 불과했다. 건당 인용 금액 또한 500만원 미만이 대부분이었다.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의 서혜진 변호사는 "형사 배상명령은 사실상 죽어 있는 제도"라며 "위자료 산정이 중요한 성범죄의 경우 판사들이 금액 산정을 해주지 않고 민사적으로 해결하라는 취지로 배상 신청을 각하해버린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5년간 배상명령 사건 죄명별, 금액별 현황 [출처=법무부 보도자료.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6/15/yonhap/20230615061620866cqsk.jpg)
형사 배상명령 제도를 활용해도 개인정보 노출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차성안 전 서울서부지방법원 판사는 2021년 논문 '배상명령 활성화 입법에 대한 평가와 그 시사점'에서 현행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28조·32조3항)은 피고인에 대한 배상명령 신청서와 배상 신청이 각하된 판결문에 대해서는 신청인의 성명과 주소를 가리거나 생략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배상명령이 전부 또는 일부 인용된 경우에는 개인정보 보호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즉 피해자가 배상명령을 신청할 때와 신청이 각하될 때는 관련 서류에 개인정보가 가려지지만, 배상명령이 인용된 경우에는 성명과 주소가 적힌 판결문이 피고인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범죄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보장하기 위해 민사소송법에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범죄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골자의 민사소송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국회에 계류 중이다. 현행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개정안은 총 4개로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해 손해배상청구 시 소장과 판결문 등에 개인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내용이 담겼다.
법제사법위원회는 2021년 검토보고서에서 "형사소송법상 배상명령제도의 한계와 민사소송법상 개인정보 보호 조치의 부재 등을 보완한다"며 개정안의 취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손해배상 집행 절차에서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도록 피해자의 개인 정보를 표시한 별도의 확인서를 발급하는 등의 실무적 차원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개정안에 대한 연합뉴스의 질의에 "현재 발의된 법안이 통과된다면 전자소송 시스템상으로 소송 당사자의 열람을 제한할 수 있는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며 "적정한 개인정보 보호조치를 하면서도 이로 인해 재판이 지연되지 않도록 법관과 법원공무원 증원 등 인적 여건 또한 마련되어야 한다"고 답변했다.
[표] 민사소송법 개정안 내용 비교

[자료=법제사법위원회 검토보고서에서 발췌]
외국에서는 비슷한 골자의 '주소 비공개 제도'를 운영하는 사례들이 있다. 사법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오스트리아에서는 민사소송법에 따라 당사자가 비밀 유지로 얻게 되는 이익을 설명하고 송달대리인을 지명하면 서면에 주소를 기재하지 않고 별도의 준비 서면을 통해 이를 법원에 통지할 수 있다.
프랑스는 형사소송법상으로 범죄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데 이때 범죄피해자는 일정한 요건 아래에 제삼자의 주소를 소장에 기재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법원 실무에서 당사자가 범죄피해자이고 가해자로부터 보복 등을 당할 위험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소장에 주소 기재를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woo102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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