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추종인가 혐북 추수인가…임종석 2국가론에 당내서도 비판과 혼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9일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가 아닌 ‘별개의 국가관계’로 규정하는 소위 ‘2국가론’을 수용하자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까지 지우자고 해 파문이 일고 있다. 전문가와 당내에서는 “감상적 통일포기론”, “친문계의 자기부정” 등 비판이 나왔다.
◆“통일 전제 때문에 평화에 거부감”?
임 전 실장은 1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맡았다. 그는 “기념사라기보다는 도발적인 발제에 가깝다. 많은 토론이 이어지길 바란다”며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자“며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고 했다.
그는 “제가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통일이 전제돼있음으로 인해 적극적인 평화 조치와 화해·협력에 대한 거부감이 일고 소모적 이념 논란이 지속된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31일 조선중앙통신에 공개된 제8기9차 당 중앙위 전원회의 연설에서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 헌법이라는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조선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버젓이 명기돼 있다”고 문제삼았고 “북남관계는 더이상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2국가론’은 남북관계를 떠받쳐왔고 세대를 이어 계승된 ‘남북 특수관계론’을 일방 파기한 것으로 국내 남북대화파 사이에서도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임 전 실장은 김 위원장의 선언 이후 북한 당국이 취한 대남정책의 근본적 변화들을 거론하며 “이런 변화된 조건들이 반영되지 않은 통일 논의는 분명히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분명히 말한다”며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 관계는 있을 수 없으며, 평화 공존과 화해 협력을 전제로 하는 새로운 정책이 제시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토조항, 북한은 신설하는데 우리는 삭제?
임 전 실장의 이날 주장은 통일 결정은 미래세대에 맡기고 지금은 통일을 지우고 평화만 추구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 △헌법 영토 조항 삭제 또는 수정 △국내의 모든 제도와 정책에서 통일을 지울 것 △국가보안법 폐지 △통일부 정리 등을 제시했다. 기존 민족공동체통일방안과 실상은 다를 게 없는데, 통일과 특수관계론을 폐기하고 영토조항을 삭제하자는 파격 조치를 곁들인 것으로 들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통일방안에 대한 몰이해”라는 지적이 나왔다. 기존 통일방안 역시 남북 교류·협력→남북 연합→남북의 당시 세대가 통일을 결정, 점진적이며 질서있는 통일, 평화적 통일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 위배 논란과 국민적 거부감도 예상된다. 우리 헌법은 전문에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분단 이전 상태부터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따라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했다.
국민, 영토, 주권은 국가의 3요소로 현재의 영토 조항 삭제 제안은 반헌법적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또 북한이 다음 달 7일 헌법에 영토 조항을 추가하겠다며 우리 헌법에 대한 일종의 ‘비례적 조치’를 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인데 우리 영토 조항을 흔드는 행위가 돼 수용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중국 영토인 동북3성을 거론하며 “두 개의 국가 상태를 유지하며 남북이 협력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경제 지평을 한반도 전체와 동북3성까지 확장하는 동북아 단일경제권, 동북아 일일생활권을 우리의 새로운 목표로 삼는다면 충분히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고 한 대목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새로운 목표와 현실적 접근이 공감을 얻는다면 남북이 신속하게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국제사회와 함께 한반도 비핵화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언급도 비슷한 반응이다. 2국가론을 수용하면 북한은 외국이 되므로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명분은 오히려 약해지기 때문이다. 또 북한은 핵을 만든 이유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타국과 통일은 침략인데?
그러면서도 통일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 전문에는 남겨”놓자거나, “미래세대에게 맡기자”, “통일을 봉인했다 30년 후 열어보자”는 등 발언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반박이 나온다. 2국가론을 수용한 뒤에 하는 통일이야말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평화적 2국가론은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담론과 연구를 쌓아온 학계 일각에서도 ‘차라리 분단 상태가 평화일 수 있다’는 시각이 제기되기도 하나 아직 논의가 무르익거나 정립된 것은 아니며 반론도 많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임 전 실장 주장에 대해 “굳이 이름을 붙이면 ‘감상적 통일 포기론’ 같다”며 “통일을 버리고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으로 나간다고 할 때 북한이 화해협력으로 안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국제적 불법행위인 북한 핵문제는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통일안보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고 했다. 또 “통일은 헌법적 가치로, 통일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며 “평화통일론을 통해 흡수통일론에 대한 대안적 담론을 만들어 나가야 할 시점에, 통일은 빼고 평화만 하자는 것은 오히려 영구분단론의 다른 이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지난 대선쯤 국내법적으로도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통일은 폐기하자는 2국가론이 확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논의 과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이 가운데는 문재인정부 청와대에 몸담았던 인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당 관계자는 “현재 이재명 당대표 체제의 지도부도 비슷한 흐름”이라며 계파별로 의견이 갈리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전했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소모적 논란이 부상하는 것을 막고자 발언을 삼갔지만, 이런 경향이 퍼지는 데 대한 강력한 우려와 문제의식도 상당하다”고 했다. 또 다른 당 핵심관계자는 “현실론과 체념론이 뒤섞인, 처음 듣는 통일론”이라며 깎아내렸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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