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추종인가 혐북 추수인가…임종석 2국가론에 당내서도 비판과 혼란

김예진 2024. 9. 19.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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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9일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가 아닌 ‘별개의 국가관계’로 규정하는 소위 ‘2국가론’을 수용하자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까지 지우자고 해 파문이 일고 있다. 전문가와 당내에서는 “감상적 통일포기론”, “친문계의 자기부정” 등 비판이 나왔다. 

◆“통일 전제 때문에 평화에 거부감”?

임 전 실장은 1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맡았다. 그는 “기념사라기보다는 도발적인 발제에 가깝다. 많은 토론이 이어지길 바란다”며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자“며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고 했다.

그는 “제가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통일이 전제돼있음으로 인해 적극적인 평화 조치와 화해·협력에 대한 거부감이 일고 소모적 이념 논란이 지속된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밝혔다. 

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임종석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스1
2국가론은 지난해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먼저 공식화한 것으로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들의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며 나왔다.

지난해 12월 31일 조선중앙통신에 공개된 제8기9차 당 중앙위 전원회의 연설에서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 헌법이라는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조선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버젓이 명기돼 있다”고 문제삼았고 “북남관계는 더이상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2국가론’은 남북관계를 떠받쳐왔고 세대를 이어 계승된 ‘남북 특수관계론’을 일방 파기한 것으로 국내 남북대화파 사이에서도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임 전 실장은 김 위원장의 선언 이후 북한 당국이 취한 대남정책의 근본적 변화들을 거론하며 “이런 변화된 조건들이 반영되지 않은 통일 논의는 분명히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분명히 말한다”며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 관계는 있을 수 없으며, 평화 공존과 화해 협력을 전제로 하는 새로운 정책이 제시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토조항, 북한은 신설하는데 우리는 삭제?

임 전 실장의 이날 주장은 통일 결정은 미래세대에 맡기고 지금은 통일을 지우고 평화만 추구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 △헌법 영토 조항 삭제 또는 수정 △국내의 모든 제도와 정책에서 통일을 지울 것 △국가보안법 폐지 △통일부 정리 등을 제시했다. 기존 민족공동체통일방안과 실상은 다를 게 없는데, 통일과 특수관계론을 폐기하고 영토조항을 삭제하자는 파격 조치를 곁들인 것으로 들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통일방안에 대한 몰이해”라는 지적이 나왔다. 기존 통일방안 역시 남북 교류·협력→남북 연합→남북의 당시 세대가 통일을 결정, 점진적이며 질서있는 통일, 평화적 통일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 위배 논란과 국민적 거부감도 예상된다. 우리 헌법은 전문에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분단 이전 상태부터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따라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했다.

국민, 영토, 주권은 국가의 3요소로 현재의 영토 조항 삭제 제안은 반헌법적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또 북한이 다음 달 7일 헌법에 영토 조항을 추가하겠다며 우리 헌법에 대한 일종의 ‘비례적 조치’를 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인데 우리 영토 조항을 흔드는 행위가 돼 수용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19일 오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9.19평양공동선언 6주년 광주 평화회의 2세션 '두 개 국가론과 새로운 통일구상' 포럼이 열리고 있다. 뉴스1
평화통일을 최우선 과제로 앞세웠던 정부의 인사임에도 이제 와서 “통일이 무조건 좋다는 보장도 없다”, “더 이상 당위와 관성으로 통일을 이야기하지 말자” 등의 언급도 “자기 부정”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다시 정권이 교체되고 권력 지형의 변화가 있더라도 역사의 시계를 판문점과 하노이로 되돌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도 비관했다.

또 중국 영토인 동북3성을 거론하며 “두 개의 국가 상태를 유지하며 남북이 협력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경제 지평을 한반도 전체와 동북3성까지 확장하는 동북아 단일경제권, 동북아 일일생활권을 우리의 새로운 목표로 삼는다면 충분히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고 한 대목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새로운 목표와 현실적 접근이 공감을 얻는다면 남북이 신속하게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국제사회와 함께 한반도 비핵화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언급도 비슷한 반응이다. 2국가론을 수용하면 북한은 외국이 되므로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명분은 오히려 약해지기 때문이다. 또 북한은 핵을 만든 이유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타국과 통일은 침략인데?

그러면서도 통일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 전문에는 남겨”놓자거나, “미래세대에게 맡기자”, “통일을 봉인했다 30년 후 열어보자”는 등 발언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반박이 나온다. 2국가론을 수용한 뒤에 하는 통일이야말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해온 국가연합 방안도 접어두자”는 언급도 의아한 대목이다. ‘국가연합’ 류의 ‘방안’은 연방제를 뼈대로 변모해온 북한의 역대 통일방안처럼 들려서다. 우리 정부는 3단계로 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중 2단계에 과도적 방안으로 ‘남북연합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통일방안은 북한이 먼저 제안했고,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우리정부가 통일방안을 뒤따라 만들면서 서로 경쟁했다. 남북이 서로 자신의 통일방안에 정통성이 있다며 대립하다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때 두 방안의 차이점보다 공통점에 주목하자는 데 합의하는 성과를 거뒀다. 6·15선언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정상회담을 위해 만난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민주당은 강령에서 기존 남북 합의를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고, 문재인정부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대외적으로 계승한 정부다. 선관위에 등록된 당 강령을 보면 ‘사회민주당’이 ‘통일’이 아닌 ‘남북연합’을 추구한다고 적시한 정당이다. 임 전 실장 발언은 현재 민족공동체통일방안 2단계를 추구해온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 최종목표로 남북연합을 지향해온 특정 그룹을 “우리”로 지칭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6번째 강령에 “번영된 통일국가”가 쓰여 있다. 민주당 홈페이지 캡처
◆전문가·당내 “우리 권리 스스로 포기”

평화적 2국가론은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담론과 연구를 쌓아온 학계 일각에서도 ‘차라리 분단 상태가 평화일 수 있다’는 시각이 제기되기도 하나 아직 논의가 무르익거나 정립된 것은 아니며 반론도 많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임 전 실장 주장에 대해 “굳이 이름을 붙이면 ‘감상적 통일 포기론’ 같다”며 “통일을 버리고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으로 나간다고 할 때 북한이 화해협력으로 안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국제적 불법행위인 북한 핵문제는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통일안보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고 했다. 또 “통일은 헌법적 가치로, 통일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며 “평화통일론을 통해 흡수통일론에 대한 대안적 담론을 만들어 나가야 할 시점에, 통일은 빼고 평화만 하자는 것은 오히려 영구분단론의 다른 이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치열한 국제정세 속에 국익에 기반한 외교안보를 가져가야 할 시점에 뜬금없다”며 “오히려 각계 비판과 남남갈등만 증폭시킬 우려가 들고, 특히 여야 합의로 마련된 통일방안을 부정하는 것은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고 했다.
북한이 다음달 7일 남쪽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고 헌법 개정 등을 논의한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지난 15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전원회의를 열어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를 10월 7일 평양에서 소집 결정을 전원 찬성으로 채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한 전직 통일부 장관은 “평화적2국가론은 지극히 단견”이라며 “젊은 세대를 핑계로 현실을 추수, 영합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영구분단으로 가자는 것이고, 그렇게 평화가 만들어질 수도 없기에 허구적”이라며 “두 개의 정부라는 실체성을 인정하면서도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의 과도적인 특수한 관계라는 규정을 두 개의 축으로 균형을 잡아왔던 건데, 하나의 기둥을 뽑아버리는 격으로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대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 교차하는 한반도 외교지형에서 우리 민족이 가졌던 배타적 권리와 발언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고, 평화와 통일을 대립시키는 이상한 프레임을 만들어 현 정부 하에서 이미 심각하게 굴절된 통일 논의를 더욱 왜곡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지난 대선쯤 국내법적으로도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통일은 폐기하자는 2국가론이 확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논의 과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이 가운데는 문재인정부 청와대에 몸담았던 인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당 관계자는 “현재 이재명 당대표 체제의 지도부도 비슷한 흐름”이라며 계파별로 의견이 갈리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전했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소모적 논란이 부상하는 것을 막고자 발언을 삼갔지만, 이런 경향이 퍼지는 데 대한 강력한 우려와 문제의식도 상당하다”고 했다. 또 다른 당 핵심관계자는 “현실론과 체념론이 뒤섞인, 처음 듣는 통일론”이라며 깎아내렸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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