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 풍미한 슈퍼모델의 귀환…전성기 때 모습 아니어도 괜찮아

한겨레 2024. 3. 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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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c21a1a;">[한겨레S] </span>김도훈의 낯선 사람
<span style="color: #278f8e;">린다 에반젤리스타</span>
1980년대 후반 사진작가 권유로
과감한 쇼트커트…독보적 존재감
자취 감춘 뒤 ”시술 부작용” 고백
보그 ‘40명 여성 레전드’ 표지에
지난해 9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펜디 패션쇼에 참석한 린다 에반젤리스타. AP 연합뉴스

슈퍼모델이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슈퍼는 크거나 강하다는 의미다. 당연히 슈퍼모델은 크고 강한, 압도적 모델이라는 소리다. 요즘도 돈 잘 벌고 유명한 모델은 있다. 말 많은 카다시안 집안 딸 켄들(켄달) 제너가 대표적이다. 누군지 모르겠다고? 몰라도 큰 문제는 없다. 켄들 제너를 두고 슈퍼모델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는다. 슈퍼모델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까지 쓰였던 단어다. 슈퍼모델이 되려는 꿈을 꾸는 독자라면 슬픈 일이지만 그 시절은 끝났다. 그러니까 이 글은 이미 지나간 화석에 대한 이야기다. 아름다운 화석 말이다.

할리우드 스타급 슈퍼모델

1980년대는 자본주의의 모든 것이 폭발하던 시대였다. 알아듣기 쉽게 영화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수천만달러가 넘는 제작비를 들여 여름 시장에 맞춤 개봉하는 ‘블록버스터'가 만들어진 시기다. 이전 시대에도 대작은 있었다. 현대적인 의미의 블록버스터는 없었다. 블록버스터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커스가 ‘죠스’(1975)나 ‘스타워즈’(1977) 같은 영화들을 내놓으면서 시작된 영화적 경향이다. 압도적인 자본에 무시무시한 마케팅 비용을 더해서 전세계적으로 거의 동시에 개봉하는 시대는 1980년대에 처음 열렸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패션도 마찬가지였다. 파리·밀라노에서 열리는 패션쇼는 원래 그들만의 리그였다. 1980년대가 되자 그들만의 리그가 대중에게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부유층을 위한 옷을 만들던 디자이너들이 1970년대 말부터 대중을 위한 기성복 라인을 내놓았다. 그 시절의 변화가 수십만원짜리 발렌시아가 티셔츠를 사 달라고 떼를 쓰는 지금 여러분의 아이들을 창조한 것이다. 어쨌든 패션이 대중화되자 패션의 모든 것이 대중화되었다. 모델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 이전에도 유명한 모델은 있었다. 1960년대 패션 아이콘으로서 빼빼 마른 몸을 유행시켰던 트위기가 대표적이다. 그 시절 트위기에게는 없었고, 슈퍼모델들에게는 있었던 것이 있다. 매스미디어다.

1995년 프랑스 파리 샤넬 패션쇼. 왼쪽부터 신디 크로퍼드, 린다 에반젤리스타, 카를 라거펠트(디자이너), 클라우디아 시퍼. AP 연합뉴스

1980년대에는 영화·패션과 마찬가지로 영상미디어와 광고의 힘이 폭발했다. 패션 광고가 티브이(TV)와 도심 광고판 등을 통해 좀 더 넓은 대중에게 파고들었다. 그러자 모델들이 할리우드 스타처럼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패션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이름을 들으면 기억할 슈퍼모델들이 이 시기에 터져 나왔다. 나오미 캠벨, 신디 크로퍼드, 클라우디아 시퍼, 크리스티 털링턴, 케이트 모스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엄청난 돈을 받고 파리, 밀라노, 뉴욕 패션쇼에 섰다. 패션 회사들의 광고를 도맡아 찍었다. 할리우드 스타들과 연애를 했다. 신디 크로퍼드와 리처드 기어, 케이트 모스와 조니 뎁은 그 시절 가장 뜨거운 커플이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 독자들이라면 케이트 모스와 조니 뎁이 호텔방을 박살 내며 싸운 뒤 파파라치에게 찍힌 사진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지금보다는 거칠고 화려하고 과장되고 난리법석이던 시절이다. 슈퍼모델이라는 과장되고 과잉인 단어가 딱 나올 법한 시대였다.

울면서 머리 맡기고 인생이 바뀌었다

슈퍼모델 시대를 대표하는 문장이 하나 있다. “하루 1만달러 이하를 받을 거라면 그날은 차라리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라는 말이다. 한화로 따지자면 1300만원 정도다. 1990년대와 지금의 인플레이션을 생각해 본다면 그 시절 1만달러는 대략 지금의 다섯배 정도가 된다. 이 얼마나 거만하게 휘황찬란한 말인가. 이 이야기를 1990년 패션 잡지 인터뷰에서 한 사람은 슈퍼모델 린다 에반젤리스타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린다 에반젤리스타의 말을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해요”라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럼에도 역사적인 실언 중 하나로 여겨지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말과 비교했다. 이 문단을 쓰다 보니 나도 이런 말을 해보고 싶다. “원고료 100만원 이하를 받을 거라면 그날은 차라리 펜을 들지 않을 거예요.”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소리니까 한번 해봤다.

린다 에반젤리스타가 2003년 10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베르사체 패션쇼에 선 모습. EPA 연합뉴스

1965년생인 린다 에반젤리스타는 이탈리아계 캐나다인이다. 그는 16살이 되던 해 미스 나이아가라 뷰티 콘테스트라는 지역 축제에 참가했다가 당대 최고의 모델 에이전시 관계자에게 캐스팅됐다. 풍기 인삼 아가씨 선발대회에 나갔다가 하이브에 캐스팅된 셈이다. 커리어가 시작부터 잘 풀렸던 건 아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모델이 넘친다. 톱 모델이 되려면 다른 모델과는 다른 개성이 있어야 한다. 캐나다 시골 소녀가 갑자기 하이패션의 중심이 될 개성을 얻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패션계의 유명한 전설적 이야기가 시작된다. 린다 에반젤리스타는 당대 최고 패션 사진작가였던 피터 린드버그의 권유로 긴 머리를 과감하게 쇼트커트로 잘라버렸다. 그냥 권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막 시작한 모델이 사진작가의 권유를 뿌리치기란 불가능한 일이니까 말이다. 울면서 머리를 맡겼던 한 시간이 린다 에반젤리스타의 삶을 통째로 바꾸었다. 1980년대 후반의 과장된 헤어스타일을 한 모델들 사이에서 쇼트커트를 한 그는 유독 눈에 띄었고, 패션계가 일순간에 그의 이름을 기억했다. 1990년이 되자 20대 초반의 그는 나오미 캠벨, 신디 크로퍼드, 클라우디아 시퍼, 크리스티 털링턴 등과 함께 슈퍼모델로 불리기 시작했다. 1만달러를 받지 않으면 일어날 이유가 없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사실 그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한 슈퍼모델은 클라우디아 시퍼였다. 1990년대 초반 고등학생들의 지갑을 털어간 청바지 브랜드 ‘게스'의 모델이었던 덕이다. 그런데 패션쇼 런웨이 사진을 볼 때마다 쇼트커트의 린다 에반젤리스타에게 눈이 가장 먼저 꽂혔다. 당시 ‘페어 게임’(1995)이라는 정말이지 별 볼 일 없는 영화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신디 크로퍼드가 좀 더 대중적인 모델이라면, 린다 에반젤리스타는 정말이지 패션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모델이었다. 그가 런웨이에 서는 순간 세상은 그저 린다 에반젤리스타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하여간 그 이후로 나는 쇼트커트를 한 여성을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요즘은 여성이 쇼트커트를 하면 이상한 소리를 듣는 이상한 시대가 됐는데, 하여간 세상이 얼마나 추락하려고 이러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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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노화도 용납되지 않는

지난해 11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WSJ 매거진 이노베이터 어워즈’에 참석한 린다 에반젤리스타. AP 연합뉴스

린다 에반젤리스타는 갑자기 사라졌다. 대부분의 슈퍼모델은 슈퍼모델의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 활동을 했다. 에반젤리스타는 2010년대 이후로는 모습을 전혀 내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 있다. 어떤 스타들은 젊은 시절 전성기를 보낸 뒤 대중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지기를 선택하곤 한다. 그게 아니었다. 2017년쯤 파파라치 사진이 공개되자 난리가 났다. 전성기의 모습과 전혀 달랐던 탓이다. 사람이 40~50대에 접어들면 자연스럽게 살도 찌고 얼굴도 늙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가 린다 에반젤리스타였다는 사실이다. 같은 시기 활동한 슈퍼모델들이 여전히 운동과 의학의 힘을 빌려 전성기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 탓도 있었다. 세상이 린다 에반젤리스타를 비웃었다. 비극이었다. 나는 전성기가 지나자 아예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해버렸던 고전 할리우드 스타 그레타 가르보처럼, 에반젤리스타도 영원히 사라져버릴 것이라 생각했다.

2021년 린다 에반젤리스타는 소셜미디어로 놀라운 고백을 했다. 그는 “동료들이 활약하는 와중에 왜 잠적했는지 설명하겠다”며 “지방분해 시술로 몸이 참혹하게 망가졌기 때문”이라고 썼다. 시술의 부작용은, 없애려 했던 지방을 오히려 증폭시켰다. 그는 과감하게 자신의 모습을 공개하며 말했다. “더는 고통과 수치심으로 숨어 살 수 없어요. 말할 때가 됐습니다. 내 모습을 더는 되찾을 수 없을지라도 고개를 들고 문밖으로 나설 겁니다” 그렇다. 이건 비극적인 이야기다. 오로지 육체의 아름다움으로만 평가받는 산업의 중심부에 서 있다가, 육체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노화를 막기 위해 행한 단 한번의 실수가 모든 것을 망친 이야기다.

아니다. 린다 에반젤리스타는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다. 나는 부작용으로 고통받아 체중이 늘어버린 그의 사진들을 보면서도 여전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노화한 50대 여성의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어쩌면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엄청난 자기 관리로 여전히 런웨이에 서는 다른 슈퍼모델들과 영원히 그를 비교할 것이다. 인정하자. 우리 개개인은 참으로 정치적으로 공정한 사람이지만, 거대한 대중의 그늘에 들어서는 순간 더없이 모질고 얄팍한 단죄자가 된다. 다행히도 린다 에반젤리스타는 고백 이후 몸과 마음을 정비하고 다시 활동에 나섰다. 2024년 ‘보그’ 영국판 3월호에서는 오랜만에 표지모델로 섰다. 동료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 신디 크로퍼드, 크리스티 털링턴과 함께 40명의 ‘여성 레전드’를 대표하는 얼굴로서 말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첫 문단에 쓴 것과는 달리 지나간 화석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2020년대의 가장 근사한 컴백에 대한 이야기다.

김도훈│문화평론가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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