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전문가들, 대북 확성기 중단에 “한국 일방적 양보는 전략적 실수”
“北, 이미 中·러로부터 혜택 보고 있어 유인 적다“
대북 정보 유입 약화 예상… “北주민 생명선 끊은 것”
국정원장 후보자 “尹정부, 전단 살포 방임·방조”
확성기에도 “北이 무서워한다는 건 오판“

이재명 대통령이 대북 전단 살포 중단을 요청한 데 이어 11일 군(軍)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는 등 취임 후 잇단 대북 유화책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이날 본지가 접촉한 워싱턴 DC 외교가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이미 예상을 했던 터라 별로 놀랍지는 않다”면서도 “북한은 이미 중국·러시아로부터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얻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긴장 완화나 평화 진전에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북한 주민들의 자유·인권 의식을 고취시켜 내부로부터의 변화를 이끌 대북 정보 유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이번 조치는 이 대통령이 직접 지시해 이뤄진 것으로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대선 과정에서 국민께 약속드린 바를 실천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6월 북한이 오물 풍선을 살포하자 윤석열 정부가 대응 차원에서 6년 만에 재개한 확성기 방송을 다시 중단한 것인데 우리 정부의 선의(善意)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대남(對南) 방송은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다. 미 육군 특수작전사령부 출신인 데이비드 맥스웰 아시아태평양전략센터(APS) 부회장은 “미국이 미국의 소리(VOA)·자유아시아방송(RFA)을 없앤 것 만큼이나 중대한 전략적 실수(strategic mistake)”라며 “안타깝게도 이번 조치는 김정은 정권의 신뢰를 얻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김정은은 남한 사회에 분열을 조장하고 한미 동맹에 균열을 일으키는 자신의 전략이 성공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했다.

미 정보 당국 북한 분석관 출신인 시드니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고문은 “현재 한반도가 불안정한 가장 큰 원인은 북한이 핵무기 보유량을 확장하고, 러시아와 전략적인 협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대북 확성기, 전단 살포와 남북한 긴장 사이에는 거의 상관관계가 없다. 이번 조치가 한반도 긴장 완화나 평화 진전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 수석부차관보도 “평양(북한)은 자체 선전 방송을 계속 송출하고 있고 한국의 이번 조치를 인정하는 어떤 신호도 보이지 않고 있다”며 “김정은은 이미 베이징(중국)·모스크바(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제재 회피, 외교적 보호 같은 다양한 혜택을 누리며 미소 짓고 있다. 서울이 이 새로운 게임에서 큰 카드를 갖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고 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는 “트럼프와 이재명 대통령 모두 긴장 완화를 위해 새로운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확신한다”면서도 “평양과의 외교가 어느 때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이 1년 반 전 통일 포기를 선언하고 남한을 북한의 주요 적대국으로 지목했을 때 그는 어느 정당이 통치하는 것에 상관없이 모두 여전히 적대국이라 분명히 밝혔다”며 “김정은은 두 가지 양보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다만 베넷은 “김정은이 협상을 계속 거부할 가능성이 높지만, 확실한 건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북 접촉이 김정은의 실제 입장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렉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HRNK) 회장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 8일 만에 이뤄진 이번 조치는 일방적인 양보로 적절하지 않다”며 “정보 유입을 협상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되지만, 한국이 대북 레버리지를 스스로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일방적인 양보는 남한의 위치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지난 5년 동안 문재인 정부, 미국 바이든·트럼프 정부의 모든 대화 시도와 최근 트럼프의 친서(親書) 전달까지 모두 거부했다”며 “워싱턴에서는 이 대통령이 과거 진보 정부들이 평양에 조건 없이 혜택을 제공했던 것처럼 북한에 지나치게 유화적인 정책을 펼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인권 전문가들은 지난 30년 동안 한미가 공을 들였던 대북 정보 유입이 약화할 것을 우려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후 이뤄진 연방 구조조정 광풍 속에 북한 주민들이 외부 세계를 접하는 창구가 되고, 북한 내부 사정을 국제사회에 공론화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던 VOA·RFA 같은 매체들이 사실상 폐쇄된 상태다. 올리비아 이노스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한 주민들이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채널이 줄어든 가운데 나온 이번 한국 정부 발표는 이보다 더 나쁜 시기에 이뤄질 수 없었다”며 “한국 내 시민 사회의 표현의 자유에 냉각 효과를 주고, 38선 너머로 탈출을 고려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필수적인 생명선(critical lifeline)을 제거한 것과 같다”고 했다.
엘리트 탈북민 출신인 이현승 글로벌평화재단 연구원은 “외부 정보는 북한 장교와 군인들의 전의를 약화시키고 의식 변화를 유도하며 궁극적으로는 한미에 대한 적대감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며 “한국 정부가 스스로 이를 차단하면 북한은 이를 ‘한국이 김정은 정권에 굴복했다’는 신호로 해석할 것”이라고 했다.
◇ 이종석 “北이 확성기 무서워한다는 믿음은 오판”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20년 남북관계발전법을 개정해 대북 전단 살포 금지를 법제화했지만, 3년 뒤인 2023년 9월 헌법재판소는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위헌(違憲) 결정을 내렸다. 이재명 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로 이 대통령의 외교·안보 공약을 설계한 이종석 후보자는 이와 관련 지난해 경향신문 기고에서 “윤석열 정부는 표현의 자유만을 강조하며 전단 살포를 방임 혹은 방조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북한이 남한의 어떤 무기보다 무서워하는 것이 대북 확성기’라는 믿음은 오판이라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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