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로 변신한 절약법, 고물가 시대 청년들의 돈 모으기 트렌드
절약도 놀이로 즐기는 청년들…전문가 “이러한 인기 당분간 지속될 것”
오랜 시간 지속된 고물가 속에서 청년들 사이에 절약이 단순히 돈을 아끼는 행위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무작정 돈을 쓰지 않고 저축하는 이른바 ‘짠테크’가 유행했다면, 최근에는 절약을 놀이처럼 즐기면서 돈을 모으는 트렌드가 인기를 끌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청년들은 소비를 철저히 배제한 절약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이제는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대신 여행이나 원하는 물건 구매 같은 가치 있는 소비에는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청년들은 절약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이를 문화로 승화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냉장고 파먹기(냉파)’다. 냉파는 냉장고 속 재료를 최대한 활용해 삼시세끼를 해결하거나, 외출 시 도시락을 준비해 외식과 배달음식 소비를 줄이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식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동시에 자원 낭비를 막는 실용적인 절약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챌린지’라는 방식도 청년들의 절약 문화를 이끄는 중요한 요소다. 이는 소소한 자기계발과 목표 달성을 결합한 절약 활동으로, 다수의 참여자들이 같은 목표를 설정해 이를 달성하면 경제적 보상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 아침에 일어나서 물 한 잔 마시기 ▲ 영양제 꾸준히 챙겨먹기 ▲ 하루에 1만보 이상 걷기 등 일상 속에서 지키기 쉬운 챌린지를 지키기만 하면 된다.
참여 방법은 이루고 싶은 챌린지에 일정 금액을 보증금 형태로 내고 참가한다. 일정 기간 챌린지를 수행하면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느냐에 따라 보증금을 차등적으로 환급받을 수 있다. 90% 달성했을 경우 전액 환불, 50% 달성은 반액 환불을 해주는 식이다. 중간에 실패해 남는 보증금은 목표를 전부 달성한 사람들이 상금 명목으로 나눠 갖는다.
또 다른 인기 챌린지는 현금 생활 챌린지 일명 ‘현챌’이다. 최근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카페나 마트에서 키오스크를 활용해 주문하고 결제하는 게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들은 일부러 현금으로만 생활하며 그렇게 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SNS 상에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청년들은 스스로를 ‘현챌러’라 부른다.
현챌러들은 지출에 필요한 돈을 일부러 현금으로 출금해 생활한다. 이들은 기간별, 지출 항목별로 예산을 짜서 해당 금액만큼 구분해둔 뒤 그 안에서만 지출하려고 노력한다. 카드와 간편 결제와 달리 실제 내 손 안에 있는 돈만 사용해야하다 보니 불필요한 지출은 자연스럽게 피하게 된다.
이들은 지갑에 현금을 넣고 생활하는 게 아니라 현금으로만 생활하기 위한 바인더를 구매하고, 꾸미고 정리하는 모습도 SNS 상에 공유하는 재미에 더욱 유행이다. 바인더를 채우기 위한 속지, 저축 표시 스티커, 키링 등 마치 다이어리를 꾸미는 것처럼 하나의 놀이처럼 이러한 챌린지를 즐기고 있다.
3년째 현챌러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힌 이정애 씨(26·여)는 “과거에 카드를 사용할 때는 하루, 한 달 예산도 정해놓지 않고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며 “처음에는 현금으로만 살려고 하니 어려움이 많았는데, 이제는 현금으로만 생활하다보니 예산보다 큰 금액은 자연스럽게 피하게 되고, 남은 돈이 눈에 바로바로 보여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빠르게 돈을 모으고 싶거나, 나의 소비 습관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현금으로 한 달만 생활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밝혔다.
게임 요소를 접목한 ‘게임형 앱테크’도 인기다. 올 웨이즈의 ‘올팜’은 앱 내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면 과일, 감자와 같은 기본적인 식재료를 집으로 배송해준다. 식재료뿐만 아니라 스타벅스 커피 등 다양한 기프티콘도 받을 수 있다.
직장인 이세연 씨(36·여)는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게임에서 농작물을 재배한다. 이렇게 재배해서 사과, 파인애플, 감자 등을 받아봤다”며 “최근 고물가로 뭐 하나 사먹기가 겁나는데 이렇게라도 하나하나 아낄 수 있어서 즐겁게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절약과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가 SNS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MZ세대들은 올 한 해의 지출 및 내년 저축 계획을 공개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시끄럽게 자신의 재정 예산을 편성한다고 해서 세계 3대 소비자 신용 보고 기관 중 하나인 에퀴팩스는 이 같은 현상을 ‘loud budgeting(소란스런 예산 짜기)’이라 부른다.
loud budgeting은 자신의 현재 재정 상태와 목표를 공유함으로써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절약과 저축을 서로 독려하는 것이 목표다. 본인의 목표를 위해 꼭 필요하지 않은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고,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소비는 정중하게 거절한다. 또 자신만의 저축 방법이나 절세 방법을 SNS 상에서 서로 공유하고 있다.
일본은 Z세대를 ‘소셜 네이티브’라 명명하고 있다. 최근 이들 사이에서도 가성비를 따져가며 물건을 사는 ‘코스파족’이 늘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도 한국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평상시에는 가급적 소비를 줄이지만, 해외여행이나 취미 활동을 즐기기 위해서는 아끼지 않는다. 과거에는 단순히 돈을 아끼는 데 급급했다면, 최근 청년들의 절약은 놀이와 문화를 결합하며 더 긍정적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절약이 이제는 정보 공유와 재미를 결합해 더 즐겁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고물가 시대가 이어지는 만큼 이러한 문화는 당분간 더욱 확산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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