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나라 망하겠어”...퍼주기 거부하는 국민들 ‘우향우’

한재범 기자(jbhan@mk.co.kr) 2023. 5. 29.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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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중도 우파 국민당 대표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좌) [AFP = 연합뉴스]
이탈리아,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까지 우파 정당이 선거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고 있다. 선심성 공약과 무분별한 복지 정책 등 좌파 포퓰리즘으로 국가재정이 악화돼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이라고 비하되던 남유럽 국가에서 경제 개혁의 고삐를 죄는 바람이 불고 있다.

28일(현지시간) AP·AFP와 블룸버그 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치러진 스페인 지방선거에서 제1야당인 중도우파 국민당(PP)과 극우 야당 복스(Vox) 연합이 집권당인 사회노동당(사회당)에 대승을 거뒀다. 이번 선거에서는 광역 자치단체 12곳 중 3곳에서만 사회당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고, 나머지 9개 지역은 국민당과 복스 연합이 우위를 점했다. 직전 지방선거에서 12개 광역 지방정부 가운데 10곳을 휩쓸었던 사회당은 이번 선거로 대부분 지역에서 패했다.

2018년 집권한 스페인 사회노동당의 페드로 산체스 정권은 집권 후 고소득자 소득세 인상,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장 유연화 방안 철회 등 포퓰리즘 색채가 짙은 정책들을 펼쳤다. 또한 저소득층 코로나 지원용 재원을 마련한다며 은행과 전력 회사로부터 이른바 ‘횡재세’를 걷는 식의 반 시장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우파 국민당은 올해 12월 예정된 총선까지 기세를 이어갈 태세다. 블룸버그는 “스페인 선거 역사상 지방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은 이후 치러질 총선에서도 승리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PIGS 국가를 포함한 유럽은 줄곧 분배와 복지를 중시하는 좌파 정치인의 주 무대였다. 다만 우파 정당들이 연이어 집권함에 따라 이같은 공식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실제로 유럽 주요국의 정치 성향을 수치화해 나타내는 유럽연합 폴리티컬 바로미터에 따르면 올해 기준 유럽 주요국 28개국 중 우파성향을 띄는 국가는 22개국(78.5%)에 달했다. 2019년과 비교해보면 유럽 국가들의 우향우 추세도 두드러졌다. 좌파-우파 성향을 3~7점으로, 중립 성향을 5점으로 수치화한 이 지표에 따르면 2019년 6점을 넘어서는 우파 성향 국가는 단 한 곳이었던 반면, 올해 기준으로 6점을 넘어선 나라는 6곳으로 늘어난 상태다. 유럽에서 좌파 정당들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 우파 정권들은 과거 복지정책을 남발하던 좌파 정부와는 달리 고강도 긴축 정책을 펴고 있다. 그리스가 대표적이다. 지난 21일 치뤄진 그리스 총선에서 우파 집권당인 신민주주의당(이하 신민당)은 2위를 기록한 급진좌파연합을 20%포인트 차로 따돌리며 압승을 거뒀다. 과도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가부도 사태까지 내몰렸던 그리스 국민이 최근 4년간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친기업 정책으로 경제 회복을 일궈낸 집권당에 대승을 안겼다는 분석이다.

그리스는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어라”는 말로 유명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1981년 당선된 것을 기점으로 파격적인 복지정책이 실시됐다. 재정적자를 무릅쓰고 중·고등 교육 무상 제공, 연금 지급액 인상에 그치지 않고 최저임금 인상, 무상의료 혜택까지 제공했다. 쌓여가는 재정적자는 국가부채로 충당했다. 과도한 정부 지출을 감당하지 못한 그리스는 2008년 국제 금융위기를 전후로 해운, 관광 등 주력 산업들의 몰락과 함께 경제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2019년 집권에 처음 성공한 미초타키스 총리는 고강도 긴축 정책을 통해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재정위기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공공부문 임금부터 대폭 삭감했다. 또한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으로 지적됐던 무상의료와 소득대체율 90%의 연금제도에 대해 대수술을 감행했다. 부채비율도 2020년 206%에 달했지만 지난해 171%로 끌어내려 경제 체질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9월 당선돼 100년만에 극우 정당 총리가 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도 방만하게 운영돼온 국가재정을 손보고 있다. 지난 1일 내각 회의에서 멜로니 총리는 이탈리아의 기본소득 정책 ‘시민소득’을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노동시장 개혁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이탈리아는 1~2년마다 정권이 바뀌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 속에 기본 소득과 연금 혜택, 사회보장 확대 등의 정책은 계속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12년 남유럽 재정 위기 이후 새로 생긴 현금성 복지 제도만도 추가 노령 수당(2015년), 청년 문화 수당(2016년), 청년 주거 수당(2017년) , 저소득층 수당(2018년) 등 10여 개다. 멜로니 총리의 이같은 노동개혁안은 그간 이탈리아 경제의 발목을 잡는 무분별한 포퓰리즘을 끊어내는 첫 걸음으로 꼽히고 있다.

포르투갈에선 중도 좌파 사회당 소속 안토니우 코스타 총리가 2015년부터 8년째 집권하고 있다. 다만 그의 경제 노선은 오히려 중도 우파 쪽에 가깝다. 돈을 푸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펼치라는 좌파 정당들의 압박에도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긴축 정책을 고수해 왔다. 긴축 기조로 국가 부채가 줄어들고 안정적인 경제성장률을 보이면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까지 얻어 장기 집권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17년 좌파 사회당을 누르고 프랑스에 중도우파 정부를 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연금개혁을 강행한 이후 역대 최저 수준의 지지율을 그 대가로 치르고 있다. 하지만 그가 2017년부터 대중적 인기를 포기하고 밀어붙인 노동개혁 드라이브의 성과는 가시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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