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세 0원'으로 ''37년간 물 펑펑쓰며 살았다는'' 이 동네 주민들

37년간 이어진 ‘물 공짜’ 생활, 전설이 된 아파트의 시작

수원 청호아파트는 대한민국 주거 역사의 기이한 사례로 꼽힌다. 1988년부터 입주한 이 아파트 주민들은 무려 37년 동안 수도요금을 한 번도 낸 적 없이, 실질적으로 무한정 물을 써왔다. 이 엄청난 특혜가 가능했던 이유는 상수도가 아닌 별도 설치된 ‘지하수 관정’을 독립적으로 활용해 아파트 전체 급수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전국 상수도 급수율이 차근차근 높아지던 시기에도, 청호아파트만큼은 ‘나만의 우물’을 쓰듯 수도세 걱정 없이 날마다 펑펑 물을 쓸 수 있었다.

이곳 주민들은 매달 날아오는 수도요금 고지서도, 사용량 제한도 경험하지 못했다. 이는 대한민국 대다수 가구와 비교해 획기적으로 ‘특권적’인 상황이었다. 수도요금 0원의 행복, 과연 그것이 복일까, 화근일까? 시간이 흐르며 이 특이한 주거 문화가 가져온 사회·환경적 역설이 뒤늦게 드러나고 있다.

지하수에 의존한 급수, 문제의 그림자 드러나다

지하수만으로 급수를 해결하는 시스템은 단순히 돈을 아끼는 차원을 넘어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첫째, 공용 관정(井)이 노후화된 채 30년이 넘게 쓰이면서 수질 문제가 잦았다. 아파트의 급수원은 엄연히 지하니, 상수도에서 인증하는 송수·살균 시설이 없다. 실제로 여러 차례 세균 및 유기물 초과 검출 같은 ‘경고’가 이어졌고, 미세하지만 금속 이물, 오염 가능성이 시민단체와 공무원 감시에 오르내렸다.

둘째, 30년을 넘긴 아파트의 하수도 시설·지하수관은 부식과 균열, 혹은 환경 오염에 노출될 우려가 크다. 공공 상수망 접속이 기본 서비스가 된 시점에도 ‘재개발 예정’, ‘공사비 부담’ ‘주민 저항’ 등을 이유로 모든 위생·사회·행정적 리스크가 방치되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수원시는 자타가 공인하는 ‘상수도 급수율 99.99%’라는 놀라운 기록을 자랑하면서도, 단 한 단지—이 청호아파트만은 특이점처럼 남아 있었다.

주민 반대와 상수도 전환 논란, 긴장의 시간들

지하수만을 사용한 독립 급수는 결국 올가을, ‘수돗물의 미래’라는 관점에서 논란의 불씨가 되었다. 수원시와 보건당국은 수십 차례 상수도 전환을 권고했지만, 실제 사업은 번번이 좌초했다. 그 배경에는 분명한 주민 반대가 존재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상수도 공사에는 필연적으로 ‘전입세대별 분담금’이 발생한다. 적게는 수십만 원, 많게는 수백만 원의 공사비를 내야 했고, 수도요금이라는 ‘고정지출’이 추가된다. 그간 무료로 쓰던 물이 갑자기 비용이 발생하면, 다수 입주민 입장에서 큰 부담이다.

둘째, 청호아파트는 진즉부터 재개발이 논의되어온 노후 단지다. “어차피 곧 헐릴 것, 거액 들여 상수도 연결해서 뭐하나”라는 심리적 저항이 가팔랐다.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 기존 예산 저항, 합의의 어려움은 지자체와 주민 사이 갈등요소가 되고 상수도 100% 완성의 마지막 고비로 남았다.

기후 재난과 위기의 여름, '단수'가 찾아오다

2025년 여름,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졌다. 기록적인 폭염에다 고갈 상태에 이른 지하수 관정이 완전히 마르면서, 청호아파트 전체가 순식간에 ‘단수’ 사태에 직면했다. 비상용 생수를 정부와 지자체가 급히 조달했고, 급수 차량이 자주 아파트를 들락거렸다. 수도꼭지를 돌려도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극한의 불편 속에 수십 년간 고수하던 ‘공짜 물’의 낙원은 허무하게 끝났다.

이 과정에서 일부 고령 입주민, 소수의 점포 등 사각지대에선 더 큰 생활 고통이 발생했고, 급수 대란을 경험한 뒤에야 주민 대다수는 ‘날마다 쓰던 물의 가치’를 통감했다. 실상 아이러니하게도, 37년 만에 처음 만난 단수 사태가 상수도 시스템 전환을 촉진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마침내 상수도 시대, 수원이 완성한 100% 급수율

수원시는 발빠른 정책 전환과 예산 투입, 행정력 총동원을 통해 긴급 급수 공사를 결정했다. 한 달여 만에 본관 매설, 계량기 설치, 지하매설 배관을 모두 교체하며 정식 상수도 공급을 개시했다. 2025년 7월, 드디어 수원 지역 주민 모두가 공공 상수도를 동시에 사용하는 ‘급수율 100%’의 신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

상수도 전환 이후 주민들은 매달 수도요금을 내게 됐다. 수도요금의 도입은, 그간 당연하던 풍족한 물 사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동시에 수질과 위생, 사회적 형평의 기준이 한 단계 올라섰음을 의미했다.

지하수와 상수도, 두 체제의 경험은 결국 ‘물’의 가치, 공동체의 관리, 보건의 중요성에 대한 소중한 교훈을 남긴다.

지하수 무료 시대의 종말, 그리고 남은 과제들

청호아파트 단지의 37년 무상 급수는 끝났지만, 이 사건이 남긴 메시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첫째, 시대 변화와 함께 사라지는 ‘특권적 공공재’의 효용, 그리고 협의 없는 정책 전환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났다. 둘째, 단기 이익 혹은 관성에 멈춘 공동체는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취약해질 수 있다. 셋째, 수도는 단순한 ‘재화’가 아니라 위생·공평·사회 안전망의 일부임을 모두가 체감했다.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은 전국 노후 주거단지 곳곳, 새로운 개발지 등에서 반복될 수 있다. 저수가·기로에 놓인 공동체, 바뀌는 물정책의 현실, 변화에 대응하는 관리와 합의의 지혜. 청호아파트 주민이 평생 ‘수도요금 0원’의 전설을 누렸던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내일의 물’이 어떤 모습일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이제야말로 “공짜 물의 시대”가 가고, “공공의 물 관리 시대”가 왔다. 물을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을 넘어, 앞으로는 더 공평하고, 더 안전한 ‘우리 모두의 수도’가 완성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