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궤도 위성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걸리는데 지상국과 실제로 교신할 수 있는 시간은 20분 남짓입니다. 그 안에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쏟아내야 합니다.”
지난 6일 제노코 군포 사옥 2층 연구소에서 만난 회사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연구소 입구에는 실물 크기의 위성 모델과 복잡한 광케이블 시스템이 전시돼 있었다. 연구소는 단순 생산기지가 아니라 항공우주·방산 통신장비 설계 하우스에 가까웠다.
현장 분위기는 여타 제조업체와는 상이했다. 생산라인보다 연구 인력이 눈에 띄었다. 전체 인력 중 약 42%가 연구개발(R&D) 인력이며, 상당수가 정보통신기술 인력이다. 회사는 전투기와 위성, 유인기와 무인기, 지상과 우주를 연결하는 '데이터 전송'이 사업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저궤도용 'X-밴드 송신기' 강점
제노코의 사업 구조는 위성영상 송신기, 항공전자 장비, 광전복합케이블, 군 통신체계 유지보수(MRO)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기존 개발 중심 구조에서 양산·유지보수 기반 사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핵심은 저궤도 위성용 X-밴드 송신기다. 저궤도 위성이 촬영한 고용량 영상을 지상국으로 내려보내는 장비다. 저궤도 위성은 지상국과 교신 가능한 시간이 제한적인 만큼 단기간 내 대용량 데이터 전송 가능 여부가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현재 차세대 중형위성 시리즈에 적용되는 표준급 전송 속도는 320Mbps 수준이다. 향후 위성 서비스 시장 확대로 고화질 영상 데이터 수요가 증가할 전망이다. 회사는 이를 겨냥해 720Mbps급 송신기를 확보했다. 방사능·환경시험용 모델(EQM) 기준으로는 최대 750Mbps까지 구현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기반은 8PSK 위상 변조와 FPGA 디지털 필터 기술이다. 회사는 관련 기술이 미국·유럽 특허로 보호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쟁사 상당수가 400~600Mbps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치상 경쟁력을 입증했다는 평가다.
해당 기술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있다. 차세대 중형위성 사업 주관사가 KAI인 만큼, 제노코가 후속 위성 시리즈에서도 공급망에 안정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회사 측 역시 "향후 예정된 후속 위성 사업에도 계속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상국 사업도 의미 있는 레퍼런스를 확보했다. 군 위성 지상국 사업인 아라스(ARAS) 1·2 사업 당시 250억원 규모 매출과 25%를 웃도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 업계 평균 영업이익률이 정부 규제로 제한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수준이다. 에어버스 등 해외 기업이 상위 발주처 역할을 하면서 해외 수익이 적용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향후 3조원 규모로 거론되는 아라스3 사업이 현실화될 경우, 제노코가 수혜를 입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유무인 복합체계·볼렌즈 케이블' 특수 기대
KAI가 제노코를 인수한 배경에는 유무인 복합체계(MUM-T) 대응 전략도 있다. 과거 무인기가 단순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면, 최근에는 유인 전투기와 함께 움직이며 공격 임무까지 수행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인기·무인기·위성·지상 통제 체계를 연결하는 데이터 링크 및 통신 인프라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제노코는 이 분야에서 통합임무컴퓨터(IMC)와 인터컴시스템(ICS)을 공급하고 있다. IMC는 무인기의 ‘뇌’ 역할을 하는 핵심 컴퓨터이며, ICS는 조종사 간 통신을 담당하는 장비다.
LAH-1 헬기용 ICS는 양산 계약을 체결해 매출 인식이 진행 중이다. 회사는 해당 국산화 실적을 기반으로 미국 방산기업 노스럽그루만과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납품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글로벌 방산 공급망 진입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풀이된다.
KF-21 관련 국산화도 진행 중이다. 전투기에 탑재되는 이더넷 스위치와 와이어 하네스 등이 대표적이다. 해외 장비 의존도를 줄이려는 흐름과 맞물려 국산 부품 채택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혼선방지기 성능개량 사업도 주요 변수다. 현재 수출형 FA-50에는 제노코 혼선방지기가 적용돼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성능개량 사업이 진행될 경우 기존 수출 물량 전체에 대한 업그레이드 수요가 발생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KF-21용 혼선방지기는 FA-50 대비 단가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양산 확대 여부에 따라 관련 매출 규모가 확대될 전망이다.
광전복합케이블 사업은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제노코는 볼렌즈(Ball Lens) 기반 비접촉 광케이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기존 접촉식 광케이블은 야전 환경에서 오염 발생 시 데이터 손실 가능성이 있지만, 볼렌즈 방식은 렌즈를 이용해 광신호를 전달하는 구조여서 상대적으로 유지보수 편의성이 높다.
이 기술은 전투기·헬기·함정·전차·잠수함 등 다양한 무기 체계에 적용되고 있다. 특히 TICN(전술정보통신체계) 사업은 반복 수익 구조와 연결된다. 양산 사업은 상당 부분 마무리 단계지만, 이미 구축된 장비에 대한 유지보수 사업과 성능개량 사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방산 MRO 사업은 장기간 유지되는 특성이 있다. 장비가 한번 채택되면 교체·정비 수요가 수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서 제노코를 단순 개발기업보다 유지보수 기반 기업으로 평가하는 배경이다.
글로벌 위성통신 기업 비아셋(Viasat)과 체결한 국내 MRO 협약 역시 같은 흐름으로 해석된다. 회사 측은 향후 저궤도 위성 서비스 확대 과정에서 협업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개발에서 양산으로

그동안 제노코 수익성은 제한적이었다. 매출 대부분이 개발 사업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연구개발비와 시험 비용 부담이 지속되면서 지난해 순손실 21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부터는 일부 사업이 양산 단계로 넘어가는 구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LAH-1 ICS, KF-21 혼선방지기, 군집위성용 탑재컴퓨터(OBC) 등이 대표적이다. 위성 분야 신규 수주도 이어지고 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최근 PSU(전원공급장치) 관련 시스템 수주 등을 포함해 지난해 250억원 규모 신규 수주를 확보했다.
소형 위성 시장 확대 역시 변수다. 소형 위성은 수명이 짧아 반복 발주 주기가 상대적으로 빠르다. 중형 위성 대비 교체 수요가 자주 발생하는 구조다.
실제 실적 개선 여부는 개발 사업의 양산·MRO 매출 전환 여부에 달렸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술 경쟁력 외에도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 구축이 향후 기업가치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제노코 관계자는 "그간의 손실은 미래 가치를 위한 투자 목적이 강했다"며 "올해는 투자 부담 완화와 흑자 전환에 힘입어 턴어라운드 원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종원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