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2글자" 제목만으로 인생 역전한 ‘이 남자'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E플랫장조, op.73 '황제'

베토벤이 지은 제목이 아닌 피아노 협주곡 '황제'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

오늘날 누군가에게 어떤 피아노 협주곡이 가장 유명한지 묻는다면 단연 베토벤의 ‘황제'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여전히 ‘황제'라는 제목으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베토벤이 안다면 불같이 화를 낼지도 모른다.


원래는 나폴레옹에게 바치려 했던 곡

프랑스혁명의 이상을 지지했던 베토벤은 자신의 <교향곡 3번 ‘영웅'>을 혁명 중 이름을 떨친 군사 지도자인 나폴레옹에게 바치려 했다.

나폴레옹 동상

하지만 1804년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에 오르자 베토벤은 진보적 이상이 배신당한 데 화가 난 나머지 <교향곡 3번 ‘영웅'>의 표지에서 나폴레옹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그러고는 ‘위대한 사람을 기억하며'라는 헌사로 바꾸었다.

그렇다면 1809년 작곡된 <피아노 협주곡 5번>이 적어도 영어권 국가에서는 아직도 ‘황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출판사의 마케팅 수법?

이는 독일 피아니스트 요한 바티스트 크라머Johann Baptist Cramer의 아이디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런던에서 출판사를 소유했던 그는 위풍당당하고 전투적인 이 곡의 특성을 금세 알아차리고 재빨리 마케팅 솜씨를 발휘하여 ‘황제'라는 별명을 붙였다.

크라머의 생각은 들어맞았다. 귀에 쏙 들어오는 별명인 ‘황제'는 <피아노 협주곡 5번>이 베토벤의 협주곡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토벤과 피아노

19세기에 접어들며 피아노의 힘과 표현력은 훨씬 넓어졌다. 여러 거장이 새로운 가능성을 이용해 경쟁했지만 베토벤은 단연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다.

특히 즉흥연주에 뛰어났던 베토벤은 피아노 음악을 통해 즉흥적인 영감의 흐름에서 길어올린 악상을 기록하곤 했다.

베토벤의 음악 인생에서 피아노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악기다. 그의 피아노 제자이자 베토벤과 쌓은 우정을 기록으로 남긴 페르디난트 리스Ferdinand Ries는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의 마지막 악장이 탄생한 일화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는 “갑자기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 주제가 떠올랐어"라며 방에 들어가더니 모자도 벗지 않은 채 피아노로 달려갔다. 베토벤은 곧 구석에 앉아 있는 나를 잊어버렸다. 베토벤은 소나타의 아름다운 피날레를 한 시간 가까이 이어갔다. 마침내 피아노에서 일어난 그는 아직 앉아 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수업을 못하겠네. 이 부분을 좀 더 써야겠어.”

바흐, 베토벤, 라흐마니노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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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곡에 담긴 피아노의 빛나는 스토리
<피아노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