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안하고 친구랑 살아요”…‘비친족가구’ 8년간 2.5배 늘었는데
2인 가구·미혼 많고…정서적 안정·비용 절감 이유
가족 형태 변했지만 주거정책은 ‘핏줄’ 고집
임차권 보호·주택청약 접근성 강화 등 제도 보완 필요

# 38세 직장인 A씨는 벌써 10년째 동갑내기 친구 B씨와 살고 있다. 두 사람은 퇴근 후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하루의 피로를 풀거나, 각자의 방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곤 한다. A씨는 지금의 생활 방식에 만족하고 있다. 텅 빈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 정서적으로 의지가 되고 내 생활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했는데, 전세 보증금을 반씩 부담했고 공과금, 생활비도 같이 지불하고 있다. 어쩌면 일 년에 몇 번 만나지 못하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아닐까 싶다. 이렇다 보니 A씨는 요즘 ‘결혼을 꼭 해야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친구·연인·회사 동료·지인 등과 함께 사는 ‘비친족가구’가 증가하는 가운데, 주거정책은 여전히 답보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친족가구는 법적 혼인이나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관계와 함께 살고 가구원 수가 5인을 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시대 흐름에 따라 가족의 형태 역시 변하고 있는 가운데, 비친족가구와 같이 ‘남’과 ‘함께 살기’를 선택한 이들을 존중하는 주거정책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인 가구 90.3%·미혼 70.8%…정서적·경제적 이유 커=5일 국토연구원이 국토정책브리프를 통해 발표한 ‘비친족가구의 증가에 따른 주거정책 개선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비친족가구는 2015년 21만4000가구에서 2023년 54만5000가구로, 8년간 2.5배 급증했다.
비친족가구 구성을 보면, 가구주 연령이 20대 이하(16.3%), 30대(28.1%), 40대(15.3%), 50대(17.8%), 60대 이상(22.6%) 등으로 전 연령대에서 고르게 나타났다. 또 가구원 수 2인 비중이 90.3%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또 3인 7.2%, 4인 이상 2.5%으로 나타났다.
미혼 비율이 70.8%로 높지만, 배우자가 있거나(16.3%), 사별 또는 이혼(12.8%)을 경험하기도 했다. 거주 형태는 자가(17.9%)나 전세(14.2%)보다 월세(38.9%)·무상(22.4%) 비율이 높았다.

비친족과 함께 사는 이유는 ‘정서적 이유(38%)’가 가장 많았다. 이어 주거비 절감(26.9%), 생활비 절감(8.7%) 등 경제적 이유도 주요 동기로 꼽혔다. 이밖에 생활 습관·라이프스타일 파악 위해(14.7%), 비용 대비 주거면적 품질 향상(6.7%), 응급상황에 도움 기대(2.4%), 범죄나 재난에서 안전 기대(1.0%)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1인가구가 고령화되면 취약성이 증가하는데, 비친족가구는 동거인으로부터 아플 때나 위기 시에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유대감·소속감도 느낄 수 있다. 또 이혼을 경험했거나 재산·부채·양육 등 개인사정으로 결혼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상호돌봄’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전통적 주거정책은 ‘핏줄’ 중심…수술 동의·임차권 승계 등 못해=비친족가구의 증가는 동거나 다양한 가족 개념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반영한다. 일례로 혼인과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거주하고 생계를 공유하는 관계가 가족이 될 수 있단 동의가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함께 산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힘이 없다. 주거 정책이 ‘세대(직계존비속)’ 등 법적 가족이나 ‘1인가구’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친족가구는 수술 동의, 임차권 승계, 유족 자격 등 제도적 권리에서 배제된다.
국토연구원은 비친족가구가 이런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비친족이란 이유로 주거제도에서 차별이나 불편을 겪는 사례가 많다. 일례로 공공임대주택은 법적 가족이 아니면 함께 입주할 수 없고, 전세 보증금을 공동으로 부담했더라도 주계약자가 사망하면 임차권이 동거인에게 승계되지 않는다. 주택담보대출·주거급여·주택청약 등 주거지원 정책에도 불리하다.

◆가족→거주 단위 등 ‘가족개념 변화’ 따른 주거정책 필요=결국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포용하는 주거정책의 패러다임 전환과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연구진은 “비친족가구의 주택 정책 접근성을 높여 함께 살기, 상호 돌봄을 위한 주거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가족 단위 주거정책을 ‘거주 단위 주거정책’으로 전환해 법적 가족이 아닌 관계와 함께 사는 비친족가구의 주거권을 보호해야 한단 제안이다. 이에 연구원은 ▲공동거주계약서 등으로 임차권을 보호 ▲동거인 사망 시 임차권 승계 ▲주택금융 접근성 보호 ▲보증금 보호 등 제도 개선안을 내놨다.
기존의 미혼청년·신혼부부·고령자 등 ‘획일적인 생애주기’가 아닌 ‘다양한 생애경로’를 반영한 주거정책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관계 증빙방식의 다양화 ▲제도 악용 방지 관리·감독 체계 마련 ▲다양한 가족 위한 주택 평면 개발 ▲최저주거기준 개선 등을 제안했다.
아울러 ‘혼자 살기’ 외에도 ‘함께 살기’를 선택할 수 있는 주거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이에 ▲쉐어형(공유) 공공임대주택 운영 개선 등 접근성 강화 ▲주거급여 및 주택청약 접근성 강화 방안 마련 등이 제고돼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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