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감원 열풍 [뉴노멀-실리콘밸리]

한겨레 2025. 2. 1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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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1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빅테크 기업 행사에 창업자와 투자자들이 모여 있다. 임지선 기자

권순우 | 더밀크 서던플래닛장

“올해는 더 이상 엔지니어를 채용하지 않을 계획이다.”

지난 1월, 실리콘밸리 대표 소프트웨어 기업 세일즈포스의 마크 베니오프 최고경영자(CEO)는 이렇게 선언했다. 이유는 인공지능(AI)의 성장에 있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생산성 향상으로 추가 인력 채용이 필요 없어졌다는 것이다.

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일즈포스는 1천명 정도를 감원하기로 했다고 블룸버그가 최근 보도했다. 단순한 인력 감축이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직무를 정리하는 구조 개편 차원이었다. 동시에 인공지능 제품을 판매할 영업 인력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등 조직의 방향성을 ‘인공지능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기술혁신은 곧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인공지능이 ‘업(業) 자체를 변화시키는 수준’으로 업무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세일즈포스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구글 역시 인공지능 투자를 확대하면서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최근 안드로이드, 크롬, 픽셀 등 다양한 부서 인력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패키지를 제안했다. 미국 경제전문 방송 시엔비시(CNBC)가 입수한 내부 문서를 보면, 안드로이드, 크롬, 크롬 오에스(OS), 구글 포토, 구글 원, 픽셀, 핏비트, 네스트 등의 플랫폼과 디바이스 부서가 인력 조정 대상에 포함됐다. 일각에선 구글이 인공지능 중심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하드웨어 부문을 정리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 구글은 최근 가상현실(VR) 헤드셋 제조업체 ‘에이치티시 바이브’(HTC Vive)의 엔지니어링팀 일부를 인수하며, 안드로이드 엑스알(XR) 플랫폼 개발을 본격화할 계획을 밝혔다. 이는 인공지능과 엑스알 기술을 결합해 차세대 스마트 글라스 및 헤드셋 생태계를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메타도 지난 10일(현지시각)부터 성과에 기반한 해고를 단행하는 전략적 구조조정을 시작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메타는 전세계 인력의 5%를 감축할 계획이지만, 머신러닝을 비롯한 기타 비즈니스 핵심 직군에 대한 채용은 오히려 적극 진행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인공지능 인프라 투자를 위해 다른 비용을 절감하고, 인공지능 사업 중심으로 인력 재배치를 더 가속화할 것이란 신호로 해석된다.

다른 빅테크 기업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해 1월에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기업들은 6천명 이상을 감원했다.

이는 기업의 인공지능 전략이 기초연구와 모델 개발에서 벗어나, 이제 상용화 단계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피티(GPT), 달리(DALL-E) 같은 모델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순수 연구보다는 이를 응용하고 상용화하는 역량이 더 중요해진 탓이다.

실제로 메타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이제 더 작고 효율적인 인공지능팀으로도 충분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또 구글 최고경영자 순다르 피차이도 “이제는 인공지능의 비즈니스 가치 창출에 집중할 때”라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는 인공지능 혁신의 중심지인 동시에 인공지능으로 인해 가장 빠르게 인력 감축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들이 오히려 가장 적극적으로 인력을 줄이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새로운 시장과 가치를 창출하는 강력한 성장동력이란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보여주는 ‘인력 감축과 투자 집중’ 흐름은 인공지능이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는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를 것이란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 기업과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인공지능 기술을 능동적으로 활용할 역량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와 사회 또한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안전망을 구축하고, 교육·재훈련 기회를 확대할 제도적, 정책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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