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무진' '더 쎈' 골때리는 우리말 자동차 이름 - 3화
이번에는 삼성자동차의 1톤 트럭 '야무진'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차를 '야무진'으로만 알고 계시는데, 사실 이 이름은 출시 후 1년이 넘게 지난 1999년 9월에 붙여졌습니다. 본래 이름은 'SV110'이었어요. 다소 억지스러운 영문구의 이니셜을 조합해 만들었다지만 '빈틈없이 단단하고 굳세다'라는 뜻의 우리말 '야무지다'가 더 와닿는 작아도 단단하고 굳센 1톤 트럭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어요. SV110이라는 감흥 없는 이름보다 야무진이라는 이름이 확실히 더 강렬하죠.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삼성그룹은 삼성승용차 'SM 세단' 시리즈에 앞서 상용차 부문에 먼저 진출했습니다. 기술 제휴선이었던 닛산의 상용 라인업을 들여와 대형 트럭 SM 시리즈를 출시한 이후 1998년 소형 트럭 '아틀라스'에 기반한 1톤 트럭 SV110을 출시한 것이죠.
도시형 1톤 트럭을 표방하며 등장한 SV110은 외관부터 남달랐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쪽도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 베르토네에 디자인 외주를 주면서 당시 경쟁차인 깜찍한 '뉴 포터', 오리지널 아틀라스와 더 닮은 '봉고 프론티어'와 비교하면 '도시형 트럭'이라는 문구에 걸맞게 세련미가 돋보였어요.
외관만큼이나 세련된 실내, 더블캡은 없었지만 슈퍼캡 모델을 마련해 편의성과 거주성을 높였고 동급 최대 크기의 적재함과 대형 트럭에 주로 쓰이는 '사다리꼴 레더 프레임'으로 부족함 없는 적재 능력을 강조, 파워트레인도 닛산의 2.6L 디젤 엔진과 5단 수동 변속기를 그대로 탑재해 만족스러운 성능을 제공했죠.
여기에 합리적인 가격까지 갖춰 소비자들이 많은 관심을 받아 출시 초 꽤 인기를 끌었는데, 시장에 풀리고 난 후 여러 가지 치명적인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이름처럼 야무지게 망해버렸습니다.
마지막 주인공은 타타대우상용차의 준중형 트럭 '더 쎈'입니다. 마땅한 경쟁 모델이 없어 오랫동안 2.5, 3.5톤 준중형 트럭 시장을 독식하고 있던 현대 '마이티'에 도전하기 위해 등장한 모델인데요. 앞서 이스즈 '엘프', 이베코 '데일리', 만트럭의 'TGL' 등 우리나라에 준중형 트럭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성비와 정비성 면에서 경쟁이 되지 않아 실패했고 덕분에 세그먼트를 독점하고 있는 차들이 으레 그렇듯 현대 마이티의 상품 개선이 더디게 이루어지면서 좋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 살 수는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경쟁 모델인 '더 쎈'이 등장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많은 사장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죠. 차명 '더 쎈(the CEN)'은 'C'omplete, 'E'fficient, 'N'eeds의 머릿 글자를 따왔다고 하는데 발음에서도 알 수 있듯 '더 세다'라는 의미가 먼저 와닿죠? 이는 경쟁차인 마이티에 비해 모든 면에서 앞선다는 뜻으로 붙여졌습니다.
이후에 상위 라인업까지 이 '센' 시리즈로 통일하게 되면서 페이스리프트와 함께 스펠링을 수정해 지금의 이름이 됐습니다. 단순히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라 품질이 큰 폭으로 개선됐고 승용차 수준의 인테리어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일선 부대에도 군수 차량으로 보급되면서 군생활을 하면서 이 차를 경험하시는 분들도 꽤 있을 거예요.
지금까지 우리말 이름표를 달았던 국산차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은 국산차의 이름을 영어나 라틴어, 스페인어가 지배했죠. 글로벌 시대에 맞춰 세계 공용어가 폭넓게 사용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영어가 한글보다 세련된 느낌을 준다는 편견이 작용해 같은 뜻의 우리말도 영어로 대체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기업 이름마저도 이미지 쇄신이라는 명목으로 영문자의 머릿 글자만 따오기도 하죠. 제품 이름도 마찬가지일 텐데 물론 기업 입장도 이해는 됩니다. 수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발음하기 쉽고 기억에 잘 남아있죠. 그들에게 친숙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무래도 유리하기 때문이겠죠.
그나마도 알파 뉴메릭 작명법에 밀려 제조사를 막는다고 단어 이름 자체가 사라지는 추세죠. 단순히 숫자와 알파벳을 조합하기 때문에 모델 간의 구분이 간편하고 오해의 소지가 없긴 합니다만, 이름에 딱히 의미가 없어 보인달까요? 참 건조하고 재미없게 느껴집니다. 무슨 '남자 3호', '여자 2호' 이렇게 부르는 것 같잖아요. 개인적으로 이름이야말로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3위 자동차 강국에 들어선 현시점에서도 나름 명확한 특징이 있는 독일차, 미국차, 일본차, 프랑스차와 달리 한국차만의 개성이 좀 부족하다고 느끼는데요. 분명 아쉬운 부분이긴 하죠. 하다못해 이름이라도 좀 특별했다면 말할 거리가 있는데 말이에요. 심지어 북한에서도 '뻐꾸기'니 '휘파람'이니 한글 단어를 썼으니까요.
그나마 반가운 소식으로 현대차가 수소 하이브리드 스포츠카 'N74'의 공식 명칭을 '칠사'로 정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요. 해외에서도 N74가 아닌 한글 발음 그대로 'N74(엔 칠사)''로 불러야 하는 것이죠. 상당히 의미 있는 시도라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도 한국차 그 자체를 상징할 수 있는 이름들이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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