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이탈·교수 번아웃·환자 아우성…여야의정協 지지부진 [여야의정협 '삐걱']
전문의 수도권 재취업, 지방의료 위기
의료위기 갈수록 커지는데 서로 싸움만
참여 밝힌 대한의학회·의대협회도 불만
“정치권 제안해 놓고 서로 합의 안 돼”
전의비·전의교협은 여전히 불참 천명
사직 전공의 한 달 새 재취업 늘었지만
상급종합병원 취업 비율 1.7%에 그쳐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이 8개월을 넘어서면서 통상 응급 환자가 늘어나는 겨울철 의료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풀 여·야·의·정 협의체는 아직 출범도 못하고 있다. 의료계 일부 단체가 협의체 참여 의사를 밝힌 지 이틀 만에 여야 입장차와 정부에 대한 의료계의 부정적 기류 확산으로 이마저도 무산될 위기다.
한계 직면한 응급실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인한 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간 지속되는 가운데 24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 앞 구급차에서 대기하던 환자가 응급의료센터로 들어가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
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정부의 입장 변화와 의료계를 대표해 전공의 등을 설득할 수 있는 대표 단체의 참여 등 두 가지 상황 변화가 필요하다”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정부가 내년 의대 정원부터 열어 놔야 전공의·의대생이 참여할 명분이 생긴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 핵심 관계자는 “전공의 단체 없이는 하는 모양만 갖추는 것”이라며 “내년도 정원 문제부터 논의하자는 문은 열어 둬야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전날 긴급총회에서 협의체 구성·운영이 결정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참여 결정을 유보하기로 결정했다. 전의교협은 “(협의체는) 전공의와 학생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의료계 단체로 구성돼야 하며 정부도 의료대란을 촉발한 당사자가 아니라 문제 해결에 적합한 인사가 참여해야 할 것”이라며 “의료대란을 극복하기 위해 협의체에 참여하기로 한 대한의학회와 KAMC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이미 “정부의 태도 변화 없이는 협의체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참여 의사를 밝힌 두 단체 내부에선 최근 이틀간 정치권 상황 등으로 부정적인 기류가 일고 있다. 대한의학회·KAMC의 한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협의회를 주도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에게 힘을 실어줘도 모자랄 판에 지금은 오히려 어깃장을 놓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치권서 먼저 제안한 협의체인데도 여야 간 입장차가 있는 것 같다”며 “여야 참여 협의체가 중요한 건 ‘법제화’ 때문인데 야당이 불참하면 의미가 없다”고도 했다.
정부(보건복지부·교육부)가 협의체 출범에 비협조적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두 단체가 요구한 무조건적인 ‘자율적 의대생 휴학 승인’에 대해 교육부가 굳이 ‘복귀 조건부 휴학 승인’이란 기존 입장을 강조해 협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2월 전공의 이탈 이후 8개월이 흐르는 동안 의료 상황은 악화될 대로 악화됐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정부는 지난 9개월간의 ‘골든 타임’을 허송세월하면서 환자들을 위한 실제적인 대책 없이 2000명 의대 증원만을 초지일관 고집했고, 중증 환자 진료의 필수 인력인 전공의들을 복귀시키는 데 실패했다”며 “올해 2∼6월 상급종합병원에서 시행한 암 수술은 16.3%(1만1181건) 감소했고(‘빅5’ 병원은 29%, 8392건 감소), 심장 수술이나 장기이식 수술 등 중증 환자의 진료 역시 비상사태”라고 주장했다.
의료대란은 특히 체력적으로 약하거나 소외된 이들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2∼7월 전국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병의원에서 수술한 소아암 환자(0∼18세)는 452명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24%가량 줄었다. 희귀질환 수술 환자도 1827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3% 감소했다.
전문의 사직 증가로 지방의료 붕괴 우려도 날로 커지는 중이다. 올해 2∼8월 의대 40곳의 수련병원 88곳에서 사직한 전문의는 275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7% 증가했다. 전문의 사직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전공의 공백이 8개월을 넘기면서 전문의들의 업무 부담이 커진 것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경기 지역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전공의 이탈로 당직이 힘들어 병원에서 당직 전문의를 따로 뽑았다”며 “지방 병원 전문의들이 서울, 경기권 병원으로 이동하면서 지방 병원의 위기감이 크다”고 했다.
한편 사직한 전공의들은 빠르게 재취업하고 있다. 다만 수련받던 상급종합병원으로 돌아간 전공의는 여전히 극소수다.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이 복지부에서 받은 ‘사직전공의 재취업 현황’에 따르면 20일 기준 사직했거나 임용을 포기한 레지던트 9163명 중 4111명(44.9%)이 의료기관에 재취업해 의사로 일하고 있다. 한 달 전 사직 레지던트 9016명 중 3114명(34.5%)이 재취업했는데 한 달 새 재취업자가 1000명가량 늘었다. 이들 중 본래 자리인 상급종합병원에 취업한 비율은 한 달 전과 유사한 1.7%(72명)에 불과했다. 사직 레지던트 중 절반이 넘는 2341명(56.9%)은 1차 의료기관인 동네 의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올해 전국 221개 수련병원의 실업급여 신청도 급증했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월19일부터 8월까지 221개 수련병원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해 수급 자격을 인정받은 의사는 328명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00명) 대비 3배 넘게 늘어난 규모다.
시기별 실업급여 인정 인원은 3월 91명, 4월 53명, 5월 11명, 6월 10명, 7월 24명, 8월 139명으로 나타났다. 수련 계약이 만료되는 3월 시점과 정부가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철회한 6월 이후 실업급여 신청이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정재영·이지민·정진수·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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