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논란에 유명인 단죄하는 ‘디지털 단두대’…“관용없는 폐쇄사회 될판”

이지윤 기자 2024. 10. 2. 15:5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유명 유튜버 곽튜브가 지난 28일 부산에서 열릴 예정이던 토크 콘서트를 취소했다.

과거 같은 그룹 내 멤버를 따돌렸다는 의혹을 받는 가수 출신 배우와 촬영한 콘텐츠가 논란이 된 직후다.

사회적 논란이 된 유명인을 사적으로 단죄하려는 대중의 '디지틴(digital guillotine·디지털 단두대)' 현상이 점차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곽튜브’ 캡처

유명 유튜버 곽튜브가 지난 28일 부산에서 열릴 예정이던 토크 콘서트를 취소했다. 과거 같은 그룹 내 멤버를 따돌렸다는 의혹을 받는 가수 출신 배우와 촬영한 콘텐츠가 논란이 된 직후다. 영상 속 곽튜브는 해당 배우에게 “(가해자로) 오해받는 사람한테 피해 주는 것 같았다”고 했고, 이는 ‘곽튜브가 따돌림 가해자를 두둔한다’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영상은 사과문과 함께 삭제됐으나 비난이 이어졌고, 자신을 곽튜브의 동창이라고 주장한 한 네티즌은 “곽튜브가 학창시절 물건을 훔쳤다” 는 내용의 허위 사실을 유포하기도 했다.

사회적 논란이 된 유명인을 사적으로 단죄하려는 대중의 ‘디지틴(digital guillotine·디지털 단두대)’ 현상이 점차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논란이 불거진 인물, 기업을 보이콧함으로써 변화를 일으키려는 움직임인 ‘캔슬 컬처’ 현상이 즉각적 처벌, 과격한 비난에 과중한 형태로 격화한 것. 앞서 올 5월에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경북 영양군에서 촬영한 콘텐츠 속 지역 비하 발언으로 단두대에 올랐다. 사과문을 발표하고, 영양 지역축제 기간에 맞춰 홍보 콘텐츠를 꾸준히 제작 중이지만 사태 이후 ‘구독 취소’를 결정한 구독자 수는 약 32만 명에 달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디지틴의 타겟은 연예인을 넘어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으로 광범위해지는 추세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SNS에서 주로 이뤄지는 디지틴은 확증편향, 일반화의 오류로 이어지기 쉽다. 자신이 가진 정보와 의견을 무기로 공적 제재, 조사가 이뤄지기도 전에 사적인 처벌을 내리고 있는 것”이라며 “취업, 주거 등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악화하면서 젊은층이 공정성에 매달리게 됐고, 스스로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성공한 유명인에게 투사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디지틴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문제에 대해 대중 주목도를 빠르게 높이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속결 처단에 급급할 경우 사회 전반에 대한 근본적 숙고보다는 찬반 여론에 따른 ‘악인’ 한 명을 제거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구독자 수와 조회수 등이 수익과 직결돼있고, 연예 기사 댓글이 제한된 포털사이트와 달리 노골적인 댓글을 달기 쉬운 SNS 특성상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은 사과를 강요받는 압박에 시달리기 쉽다.

유튜브 ‘싱글벙글’ 캡처
유튜브 ‘싱글벙글’ 캡처

유튜브 채널 ‘싱글벙글’은 올 6월 “안마기가 좋으면 뭐 하니, 군대 가면 쓰지를 못하는데”라며 웃는 영상으로 ‘군인 조롱’ 논란을 샀다. 그러나 이는 군인 처우 개선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진 못한 채 채널 측의 사과와 영상 삭제에 그쳤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최근 디지틴은 합리적 의견 대립이 아닌 집단적 몰아가기 양상을 띠면서 오히려 본질적 문제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 되고 있다”며 “정치, 사회적으로 중대한 문제를 향해 의견을 냈을 때 개진이 어려운 사회구조로 인해 사소한 문제에도 과격하게 결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가 유명인에게 유독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한다는 시각도 있다. 하재근 사회문화평론가는 “서구권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대중의 도덕적 잣대가 엄격한 나라 중 하나”라며 “정답과 오답을 가르기 급급한 입시교육의 영향,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집단주의적 사고 등 영향으로 인해 사실관계를 면밀히 따지고 실수 만회를 지켜보기보다는 심판부터 하려는 경향이 크다”고 했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마저 부정하는 분위기는 건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평론가는 “경중에 따라 실수를 용인하고 만회할 기회를 제공해야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며 “지나친 자기검열로 이어진다면 개개인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기 어려운 사회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