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이란 없습니다'…에베레스트 여성 최단기록 14.5시간만에 등정한 싱글맘

네팔의 여성 산악인 푼조 라마가 베이스캠프에서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도달하는 덴 15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네팔의 여성 산악인 푼조 장무 라마(32)는 쾌활하게 웃으며 “사람들은 내게 세계 신기록 달성을 위해 질주했냐고 묻곤 한다. 그럼 난 세상의 정상에선 질주할 수 없다고 답한다”며 말을 꺼냈다.

라마는 최근 베이스캠프에서 에베레스트산 정상까지 14시간 31분 만에 등반하며 여성 최단 시간 등정 신기록을 세웠다.

라마는 “정상에 서서 기쁘긴 했지만, 엄청난 기쁨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등반에 성공한 지 1주일이 지난 지금도 라마의 얼굴엔 검은 얼룩이 남아 있다. 극심한 추위에 노출된 흔적이다.

싱글맘이기도 한 라마는 최근 네팔 카트만두 소재 BBC 사무소를 찾아 자신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라마는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닌 적도 없으며, 특별한 야망도 없었다고 한다

2살에 어머니를 여읜 라마는 할아버지 손에 자랐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라마는 8년간 히말라야가 자리한 고르카 지역에서 야크를 방목하며 자랐다.

어린 시절 라마에겐 특별한 야망도, 꿈도 없었다. 그러다 13살이 되던 해에 언니를 따라 여승이 되겠다며 수도 카트만두로 이주하게 된다.

하지만 언니와 며칠간 함께 살아보니 이러한 삶은 자신에게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저는 산을 뛰어놀며 자랐습니다만, 수도원에선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후 오빠가 돈을 보태준 덕에 라마는 정식으로 네팔어와 영어를 배우게 됐고, 몇 년간 미국에서 살았다.

귀국한 라마는 네팔 여성 최초로 헬기에 연결된 줄로 부상당한 등산객을 구조하는 롱라인 구조대원이 됐다.

첫 기록

라마는 지난 2018년 여성 등반가로서 최단 시간 등반 기록을 세웠다

“동료 중에 이미 에베레스트산에 다녀온 이들이 제게 ‘왜 도전해 보지 않냐’고 하더군요.”

또한 라마는 앞으로 여성 산악 가이드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봤다.

그렇게 에베레스트산에 오르기로 결심하게 된다.

2015년, 라마의 첫 에베레스트산 등반 시도는 네팔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중단됐다. 당시 등반가 22명을 포함해 9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라마는 “지진 발생 당시 베이스캠프에 있었다”고 한다.

이후 2016년, 라마는 알래스카 소재 북미 최고 봉우리인 디날리산과 네팔의 초오유산을 등반하는 데 성공했다. 초오유산은 세계에서 6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에베레스트에서 서쪽으로 약 30km 떨어져 있다.

그리고 마침내 2018년, 라마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제 가이드는 호주 출신 여성이었습니다. 등반 적응 기간 저는 가이드에게 캠프 2에서 에베레스트산 정상까지 바로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22시간 안에 하고 싶었는데 가이드가 그만 사고를 당했습니다.”

구조 작업으로 인해 등반 시간이 늦어지게 됐고, 라마는 39시간 6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 최단 시간 등정 신기록이었다.

에베레스트산 정상까지 여정

그러나 2021년, 홍콩 출신 등반가 장인헝이 25시간 50분 만에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에 성공하며 이 기록을 깼다.

친구와 동료들은 라마에게 또 한 번 도전해 보길 권유했고, 라마는 에베레스트산을 17번 등반한 노련한 등반가이자 가이드인 텐디 셰르파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셰르파는 “라마는 강한 팀원을 찾고 있었다”면서 “우리는 라마에게 최고의 훈련, 산소, 텐트, 신발 등을 지원했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셰르파는 각각 21번, 6번 에베레스트 정상에 가본 적 있는 가이드 2명도 데려갔다.

신기록

라마는 등반이 순조롭고 아름다웠다고 기억했다

베이스캠프에서 2주간의 적응과 훈련을 마친 라마는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셰르파는 해발 8000m 이상 되는 ‘사우스 콜’ 지역 ‘캠프 4’에서 라마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라마는 “몇분 간의 대화 끝에 서둘러 에베레스트를 향해 길을 떠났다”고 한다.

사우스 콜과 에베레스트산 정상 간 거리는 약 1.7km에 불과하지만, 무척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그렇기에 셰르파는 라마가 정상에 오르기까지 적어도 20시간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정상에 도달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라마가 다른 등반가들이 이 혹독한 환경으로 인해 겪는 난관을 마주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라마는 “해발 6000m에 도달하니 숨을 쉬기도, 정상적으로 먹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고도가 높아지면 공기 중 산소 농도가 낮아지기에 달리기와 같은 신체 활동이 무척 어렵다.

“캠프 4로 가는 길에 약간 긴장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산악인들로 인해) 길이 막혔거든요. 1분 1초가 매우 중요했기에 기다리는 동안 무서우면서도 초조했습니다.”

“1시간 동안이나 오도 가도 못했습니다. 그것만 빼면 전반적으로 순조롭고 아름다운 등반이었습니다.”

라마는 5월 23일 정상에 도달했다

그녀는 2024년 5월 23일에 정상에 올랐다.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기도 했다. 네팔 현지의 셰르파족 및 구르카족은 에베레스트산을 성소로 여긴다.

라마는 “(이번 등반은) 제겐 좋은 업보”라고 말했다.

라마는 내려가기 전 부처가 그려진 깃발을 꽂고 기도를 올렸다.

“베이스캠프에서 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언젠가 자신이 제 기록을 깨겠다고 하더군요.”

12살 난 딸은 당시 TV를 통해 이미 엄마의 성공 소식을 알고 있었다.

라마는 누구나 에베레스트산에 오를 수 있으며, 자신의 기록이 곧 깨지길 바란다고 했다

기록을 세워도 등반가들은 인생을 바꿀만한 큰돈을 만지지 못한다. 라마 또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평범한 사람이죠. 특별하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누구나 무언가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불가능이란 없다고요. 그래서 전 산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등반은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스릴 넘치는 스포츠다.

네팔 당국에 따르면 올해 등반가와 셰르파를 포함해 600여 명이 정상에 올랐으며, 이 기간 등반가 5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됐다고 한다. 그리고 실종자들이 살아서 발견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설명이다.

한편 텐디 셰르파는 “에베레스트는 거대한 산이다. 체력도 좋고, 팀원들이 훌륭히 지원해 줘야 하며, 날씨도 좋아야 하고, 등반 조건도 좋아야 한다”면서 앞으로 누군가 라마의 기록을 깨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 계획, 행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팀은 라마가 등반 중 마주칠 수 있는 다른 등반가들, 날씨, 눈사태 가능성 등을 평가하고 필요한 지원이 무엇일지 계획했다.

한편 남자 등반가의 경우 지난 2003년 락파 젤루 셰르파가 세운 10시간 56분의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 기록이 여전히 유효하다.

텐디 셰르파와 라마 모두 이번 라마의 기록이 언젠가는 깨질 것이라 믿는다. 관건은 ‘언제’이다.

라마는 활짝 웃으며 “누군가 내 기록을 깬다면 멋진 일이다. 나는 정말 기쁠 것”이라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