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해설하는 노벨상] 인공지능과 물리학의 경계를 허물다

유창동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2024. 10. 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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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턴대 물리학과 교수,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위키미디어 제공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터대 교수와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영국 출신)에게 수여됐다. 두 교수 모두 인공지능 발전에 큰 공헌을 한 학자들인 만큼, 이들이 물리학 노벨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시선도 많다. 이번 수상이 물리학과 인공지능의 연결고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 것이다.

존 홉필드 교수는 프린스턴대 분자생물학 교수로, 고체물리학자로 경력을 시작해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는 특정 분야에 구애받지 않고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두며, 해결된 문제는 과감히 넘기는 연구 방식을 추구했다. 물리학, 인지 심리학, 인공지능에 깊은 관심을 가진 그는 뇌의 기억 회상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홉필드망(Hopfield Network)’을 제안했다. 

홉필드망은 신경 세포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안정적인 기억을 형성하고,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전체 기억을 복원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는 신경생물학과 분자물리학의 원리에 기반한 초기 인공신경망 모델로, 컴퓨터가 노드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기억하고 회상할 수 있음을 증명한 첫 사례이다.

홉필드망은 왜곡되거나 불완전한 이미지가 입력될 때 각 노드의 값을 업데이트하여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입력 이미지와 가장 유사한 저장된 이미지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홉필드망은 통계 역학, 반복 신경망, 인지 심리학, 물리학, 신경과학, 기계 학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힌턴 교수는 영국에서 인공지능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영국,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50년 이상 신경망 연구와 개발에 매진해왔다. 그는 딥러닝과 인공지능 분야의 선구자로서, AI 연구에 큰 공헌을 했으며 최근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2018년에는 인공지능 혁신을 이끌어낸 공로로 전산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튜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노벨 물리학상 수상은 기존의 틀을 벗어난 선택으로, 학계에서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힌턴 교수의 주요 연구 성과는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이곳에서 딥러닝 기술을 발전시키며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특히 제자인 알렉스 크리제브스키와 일리야 서츠케버와 함께 2012년 '이미지넷(ImageNet) 대회에서 딥러닝을 활용해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며 인공지능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이들은 GPU를 활용한 딥러닝 코드와 모델을 공개하여 인공지능 기술의 대중화와 발전을 가속화시켰다. 이후 서츠케버는 오픈AI(OpenAI)의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이 됐고 현재 챗GPT(ChatGPT)를 포함한 최신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힌턴 교수를 스승으로 모시며 그의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힌튼 교수는 종종 ‘역전파(backpropagation)’ 알고리즘을 최초로 소개한 인물로 알려졌지만, 본인은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이 알고리즘이 자신의 독창적인 발명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미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다루어진 방법이라는 점을 인정하며, 학계의 공정성과 역사적 진실을 중시하는 겸손한 연구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힌턴 교수는 자신의 회사가 구글에 인수된 후 구글에서 연구를 이어가다가, 2022년 돌연 퇴사했다. 퇴사 이유로 그는 인공지능 기술이 인류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며, 인공지능 연구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힌턴 교수는 인공지능의 발전 뿐만 아니라 그 한계와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하며, 기술의 책임 있는 사용을 고민하는 연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노벨상 수상은 인공지능과 물리학의 경계를 허물고, 두 분야 간의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힌턴 교수의 연구가 앞으로 인공지능의 윤리적 방향성과 사회적 책임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이는 단순한 학문적 성과를 넘어 인류의 미래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우리의 일상에 어떤 긍정적인 혁신이 일어날지, 그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필자 소개
유창동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공학응용학과를 졸업하고 코넬대와 메사추세츠공대에서 각각 전지공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통신(KT) 연구개발본부 선임연구원을 거쳐 KAIST에 임용된 뒤 비디오튜어링테스트인공지능센터 센터장, 인공지능공정성연구센터 센터장, 한국인공지능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유창동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n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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