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보다 조금 더?"…성과급 사각지대의 삼성 임원들 '술렁'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내부 /사진 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의 임금협상이 마무리된 뒤에도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그동안 보상 사각지대에 있던 임원들 사이에서 반발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사측이 대외 여론과 주주 반응 등을 고려해 임원 보상 규모를 보수적으로 책정하려 하면서 반도체 사업을 맡은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임원들이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반도체 핵심 기술과 생산 노하우를 직접 개발·관리하는 기술직 임원들의 박탈감이 커지면서 핵심 인력이 이탈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 단기적으로 기술경쟁력이 약화되는 문제를 넘어 과거 중국 등 해외로 핵심 기술을 빼돌렸던 사태와 같은 국가적 자산 손실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52시간·노조 보호막 없는 '1년 계약직'…'부장급 처우'설에 냉소

18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임금협상을 마친 삼성전자 내부에서 여전히 성과급 문제로 사업부 간 이견이 상존하는 가운데 협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임원들까지 성과급 책정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사측이 직원들에게 파격적인 성과급을 약속한 후 주주와 대외 여론이 악화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임원 보상을 축소하는 지침을 내린 것이 도화선이 됐다. 최근에는 임원 성과급 수위를 고연차 부장급 수준으로 낮춰 조율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며 상무·부사장급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노동조합이라는 단체협상 창구가 있는 일반직원과 달리 임원은 개별 고과평가를 기반으로 성과급이 책정되며 회사의 보상 방침을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 회사의 결정을 견제하거나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통로가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구조다.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을 내려놓고 1년 단위 계약직으로 전환되는 임원들에게 성과급은 신분의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대가나 다름없다. 임원은 주52시간제나 연장근로 수당 등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노동조합에도 가입할 수 없다. 위험과 책임은 무겁지만 보상은 부장급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냉소가 나오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현장 리더들의 동기부여만 약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하이닉스 9억 vs 삼성 7.4억…현실이 된 '보상 역전'

/그래픽=장소희 기자

이 같은 내부 불만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양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사업과 기술개발을 지휘하는 삼성전자 미등기임원의 평균 보수는 이미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역전당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주도권을 선점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한 SK하이닉스의 미등기임원 평균 연봉은 9억원까지 치솟은 반면 삼성전자는 7억4000만원선에 머물렀다. 두 회사 임원의 보상 격차는 1억6000만원에 달한다. 이는 같은 기간 양사 직원의 평균 연봉 격차(SK하이닉스 1억8500만원, 삼성전자 1억5800만원)인 2700만원과 비교하면 무려 6배에 이른다. 이에 일반직원보다는 상무·부사장급인 미등기임원들이 체감하는 보상 역전이 훨씬 더 가파르고 깊다.

특히 이 공시보수액에는 기본급과 현금 성과급뿐 아니라 당해연도에 반영된 주식연계보상(장기성과급)까지 합산돼 있다. 이는 미래 보상가치인 주식배분액까지 더하고도 삼성전자가 경쟁사에 크게 뒤처졌다는 의미다.

더욱 심각한 점은 삼성전자 미등기임원들의 지난해 평균 연봉이 실적이 양호했던 스마트폰 등 디바이스경험(DX)부문까지 합산된 전사 평균이라는 사실이다. HBM 시장 선점으로 성과 보수가 극대화된 SK하이닉스 임원진과 달리 시장의 기대치를 밑돌며 상대적 부진을 겪어온 DS부문 임원들의 실제 처우는 공시된 평균치인 7억4000만원을 크게 밑돌 것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경쟁사는 임원진에 확실한 당근을 주며 결속력을 다지는 반면 삼성은 오히려 반도체부문의 핵심 리더들을 방치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급할 이유 없다" 사기 꺾인 현장…'기술 유출' 리스크 다시 고개

이 같은 보상 불균형에 따른 후폭풍은 개별 임원들의 처우에 대한 불만에 그치지 않고 조직 전체의 생태계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고위직 처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엔지니어들에게까지 확산되면 장기적으로 삼성 반도체를 지탱해온 핵심 인재 풀이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 엔지니어들의 종착지인 임원 자리가 매력을 잃으면서 젊은 연구원들 사이에도 기를 쓰고 진급할 이유가 없다는 패배주의가 퍼질 수 있다.

핵심 인력들이 가진 독보적인 기술 노하우가 유출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리스크다. 반도체 제조공정 및 설계 부문의 핵심 기술임원들은 미세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공정 노하우, 차세대 패키징 기법, D램 설계도면을 직접 다루고 통제한다. 처우에 실망한 이들이 이탈할 조짐을 보이면 글로벌 경쟁사들은 은밀하게 유혹의 손길을 뻗칠 수 있다.

최근 해외 경쟁사나 중국계 자본은 강력한 국내 사법 감시망을 피하고기 위해 직접고용 대신 제3국의 유령회사를 통해 우회적인 자문 계약을 맺고 기술 노하우만 흡수하는 지능적인 수법까지 쓰고 있다. 규제가 느슨한 국내 중소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에 먼저 취업하도록 우회경로를 열어준 뒤 간접적으로 기술을 빼내는 방식도 동원된다.

실제로 반도체 업계와 헤드헌팅 시장에서는 일부 고위인력들이 조심스럽게 이직 가능성을 타진하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이들의 이탈이 개인의 공백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위급 인사가 움직이면서 기존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전 직장의 유능한 엔지니어들을 팀 단위로 대거 영입하는 '패키지 이탈'이 이어질 수 있고, 이는 곧 기업이 가진 기술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

업계와 시장 전문가들도 눈앞의 재무지표나 대외 여론을 의식한 보상통제 정책이 결국 기업의 핵심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투자 업계 연구원은 "글로벌 경쟁사들이 파격적인 처우를 제시하며 인재를 영입하는 상황에서 보상 매력도가 떨어지면 잠재적인 기술유출 위험도 커진다"며 "단기적인 재무지표를 개선하려 하거나 여론을 의식해 통제하는 기조가 HBM 시장의 주도권 회복과 파운드리 수율 안정화라는 본원적 미래 경쟁력을 잠식하는 모순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반도체는 결국 사람이 만드는 기술집약적 사업"이라며 "리더들의 사기를 꺾는 보상정책은 대만 TSMC나 SK하이닉스와 격차를 좁혀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내부 동력을 스스로 상실하는 자해행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소희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