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상 한강…세계가 주목한 이유는?
[EBS 뉴스]
서현아 앵커
보신 것처럼 한강 작가는 차분한 마음으로 집필에 몰두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와 우리에게 남은 과제에 대해서 오형엽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교수님 어서 오세요.
오형엽 교수 /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
안녕하세요.
서현아 앵커
우선 수상의 의미부터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노벨문학상 주최 측이 한강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또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했습니다.
이건 어떤 의미로 볼 수 있을까요?
오형엽 교수 /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문학상 선정 이후로 밝힌 이 표현은 주제, 형식, 문체 이 세 가지 측면에서 한강 작가의 문학적 탁월성을 농축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는 것은 광주 그리고 제주의 비극적 사건의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대면하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주제의식이라는 측면입니다.
두 번째는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이 주제를 정치적, 윤리적 담론이나 서사의 차원으로 서술하지 않고 내면의 심연으로 침잠시켜서 폭력성 그리고 야만성이라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으로 전환시킨다는 형식적인 측면입니다.
세 번째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표현인데요,
잔잔하고 부드럽지만 밀도 높고 강렬한 시적인 산문이라는 그런 문체적 특성입니다.
한강 작가의 탁월성은 이러한 주제의식, 형식적인 실험 그리고 미학적 문체 등의 영역을 종합해서 탁월한 문학적 성과를 얻었다는 데 있습니다.
서현아 앵커
주제와 형식, 문체 세가지 요소가 모두 탁월했다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 요소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짚어볼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 한강의 작품은 소설의 주제가 갖는 아주 무거움과 대비돼서 문체는 굉장히 섬세하다, 이게 극적으로 대비된다는 평가도 많습니다.
어떤 특징이 있는 겁니까?
오형엽 교수 /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
조금 전에 말씀드린 특성 중에서 역사적 사건의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대면하는 주제는, 무겁고 진중한, 때로는 어두운 특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서정적이고 시적인 문체는 부드럽고 잔잔하고 또 여성적인 그런 섬세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특성은 서로 이질적이기도 한데요.
한강 작가는 전통적인 리얼리즘의 재현 방식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미학적인 방법론까지 시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채식주의자'는 환상적 리얼리즘 그리고 그로테스크 미학을 보여주고요.
'소년이 온다'는 복수적 화자의 시선으로 사건을 입체적으로 조명합니다.
그리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주인공을 관찰자로 설정하고 사건에 관계된 인물들이 그걸 풀어나가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러한 주제의식, 형식적 실험, 미학적 문체 이러한 세 가지 요소가 대비적이기도 하고 또 이질적이기도 한데요.
이러한 요소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고 독자들의 내면에 강렬한 충격 효과를 주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서현아 앵커
그렇군요. 그런데 교수님 사실 한국에서는 수년째 노벨문학상 후보로 고은 시인이나 황석영 작가가 주로 거론이 돼 왔습니다.
그런데 이 한강 작가는 여기에 비해서는 상당히 젊은 데다가 여성이기도 합니다.
우리 문단에 주는 의미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오형엽 교수 /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
네 그동안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많이 거론된 시인이나 작가분이 계셨죠?
그분들과 비교해도 한강 작가는 연령이 상당히 젊고요.
노벨문학상 세계적인 수상자와 비교해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특수성이 있는데 연령이 젊다는 것 그리고 아시아 여성이라는 특수성이 있죠.
그래서 한림원이 '서구, 남성, 원로'라는 기존의 중심에서 벗어나서 '아시아, 여성, 젊은 세대'라고 하는 주변성을 다양성의 가치로 재인식하고 특히 한강 작가를 주목하고 높이 평가했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또 다른 의미 하나는 한국 문학계에 주는 의미인데요.
한강 작가의 탁월한 능력을 가능케 한 한국 문학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강 작가는 한국 문학의 뛰어난 문학 작품들로부터 영감과 자양분을 받으면서 성장해 왔고 그것을 자기 세계로 창조적으로 발전시켜서 이번에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서현아 앵커
사실 우리가 그동안 해마다 이맘때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다리면서 또 한편으로 좌절될 때마다 외국어로는 표현되기 힘든 한국어만의 표현과 정서를 원인으로 꼽고는 했습니다.
이번에 한강 작가가 세계적으로 공감을 얻은 이유는 어디에 있었다고 보십니까?
오형엽 교수 /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
예, 몇 가지 요소를 들 수 있겠는데요.
제가 생각할 때는 첫째는 한강 작가가 역사적 트라우마를 대면하고 또 애도하는 증언문학의 방향성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을 내면의 심연으로 ,인간 내면의 심연으로 깊이 침잠시켜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방향으로 그것을 전환시켰다라는 부분이 세계인의 공감을 얻었다 이렇게 볼 수 있고요.
둘째는 역시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고 계시는 번역의 힘인데요.
영국의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한강 작가의 작품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서구인들에게 매력적으로 읽힐 수 있도록 그러한 번역문을 번역했다, 이것이 또 한 가지 이유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번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번역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사실 개인적으로 번역가의 능력도 1차적으로 중요하겠죠.
그러나 또 한 가지는 그동안 한국문학 세계화를 위해서 우리 국책기관인 문체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 그리고 민간기관인 대산문화재단 같은 기관에서 수십년 동안 번역 지원 사업을 해왔습니다.
그 결실들이 2010년대 중반 이후에 계속 부커국제상이라든지 메디치상이라든지 또 캐나다의 그린피 문학상 같은 수상으로 이어졌고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그 정점을 찍었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서현아 앵커
정말 곱씹어볼수록 아주 기쁜 소식입니다.
교수님 저희가 이제 시간 관계상 마지막 질문드려봐야 될 것 같은데요.
외신들은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서 높아진 한국 문화의 영향력을 반영한 결과다, 이렇게 평가를 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문학 나아가서 우리 문화가 세계 속에서 자리매김하려면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할까요?
오형엽 교수 /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의 경사이고 대한민국의 자부심입니다.
지금 우리 국민 전체가 축제를 즐기고 있는데요.
이 축제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또 스치는 바람이 되지 않으려면 계속 유지되고 발전돼야 되는데 국가적, 민간적, 개인적 관심과 투자를 더 확대하고 미래를 대비해야 되겠습니다.
한국문학이 K-콘텐츠와 함께 더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제가 생각하는 중요한 지점이 두 가지인데요.
첫 번째는 한국 문학 뿌리내리기 차원에서 비평 담론의 활성화가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확산하기 차원에서 번역의 활성화가 중요합니다.
노벨문학 수상 이후에 번역 활성화에 대해서는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저는 비평 담론의 활성화에 대해서 강조해 보고 싶습니다.
비평 담론 활성화는 크게 나눌 때 국내 비평 활성화와 해외의 비평을 번역해서 전파하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는데요.
우선 중요한 것은 국내의 문학 생태계가 살아나고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 국내 문학 비평의 활성화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각계 각층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는 한국문학 작품만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이 비평도 같이 번역해서 해외 전파를 적극적으로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더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작품 창작이 제일 먼저고요. 그 다음에는 비평 창작이 뒤따라 가야 되고요.
작품 번역과 비평 번역이 이제 그 뒤를 잇고 그것이 해외 전파라고 하는 이 4개의 단계가 시스템화되어서 앞으로 한국 문학이 더 발전되기를 기대합니다.
서현아 앵커
좋은 작품이 나오려면 비평과 평론도 중요하다는 말씀이시겠죠.
우리도 차분하게 노벨문학상 수상을 남긴 과제를 하나씩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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