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 삼성과의 경기가 6-3 승리로 끝난 뒤 1회부터 9회까지 안방을 지켰던 김태군은 “안타 하나 치기 어렵다”면서 웃었다.
최근 10경기 성적을 보니 김태군의 말이 이해가 됐다.
이날 김태군은 5-2로 앞선 8회 1사 3루에서 삼성의 추격 의지를 꺾는 적시타를 기록했다.
지난 6일 한화전에서 기록한 3루타 이후 11타석 만에 기록된 안타였다.
최근 10경기 성적을 봐도 21타수 2안타. 김태군에게는 귀한 안타였다.
포지션상 수비가 우선 되는 포수지만 그는 타석에서는 공을 때려야 하는 타자이기도 하다.
김태군은 “선수가 1군에서 경기를 뛰게 되면, 왜 라인업에 있는지 증명해야 한다. 그것만 계속 신경 쓰면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수 겸 8번 타자. 김태군은 그 두 가지 역할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프로는 증명하는 자리다.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KIA의 지금까지 모습은 프로답지 못했다.
물론 핑계는 있다. 개막전부터 전력의 핵심 김도영이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다시 또 김도영은 전력에서 이탈했다.
시작은 함께였지만 ‘주장’ 나성범 역시 다시 또 전력에서 사라졌다.
나성범을 대신했던 김선빈도 두 번째 종아리 부상으로 박찬호에게 임시 주장을 넘겨주고 자리를 비웠다.
마운드에도 악재가 이어졌다.
지난 시즌 부지런히 마운드에 올랐던 좌완 곽도규가 팔꿈치 수술로 일찍 시즌을 마무리했다.
황동하는 치열한 경쟁 끝에 선발 경쟁의 승자가 됐지만 숙소 앞 횡단보도를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이래도 되나 싶은 부상의 연속이기는 하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한다고 해도 너무 무기력하거나 또는 2%가 부족한 아쉬운 패배들이 쌓이면서 KIA이름은 순위표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시즌을 준비하면서 많은 이들은 KIA의 2025시즌을 놓고 ‘핑크빛 전망’을 내놓았다. 개막을 하기 전까지는 모든 게 완벽해 보였으니까.
‘불펜의 마당쇠’ 장현식의 이적이 있었지만 KIA는 결국 조상우를 품에 안으면서 빈틈을 채우는 것 같았다.
“이래서 또 우승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차고 넘칠 정도로 KIA의 겨울도 따뜻했다. 우승팀의 자부심으로 연패를 향한 의지는 확고했다.
그리고 연패의 전제 조건으로 꼽히던 ‘부상’도 남의 이야기 같았다.
스프링캠프 막판 나온 이창진의 햄스트링 부상을 제외하면 부상 관리도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 같았다.
이의리도 완벽하게 스프링캠프에서 재활 단계를 소화했기 때문에 KIA는 수월하게 순위 싸움을 펼쳐갈 것 같았다.
그러나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시즌이 흘러왔고, 이제는 증명을 해야 하는 지점까지 왔다. 64경기를 치렀고, 80경기가 남았다.
시즌 전 많은 이들이 ‘예스’를 말할 때 ‘노’를 외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태군이다.
KIA의 군기 반장으로 통하는 ‘길라잡이’를 자처하고 있는 김태군은 캠프에서도 쓴소리를 했다. 지금도 김태군은 기꺼이 쓴소리를 한다.
“칭찬은 다른 사람이 많이 해줄 것이니까”라는 게 그의 설명이기도 하다.
김태군은 ‘눈높이’라는 단어를 자주 말한다. 자기 스스로를 보는 눈높이를 이야기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내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준비했는지가 자신을 보는 ‘눈높이’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눈높이를 낮춘다고 해서 그라운드에서의 자신감까지 내려놓으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눈높이에 맞춰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이게 성장의 동력이 된다는 게 김태군의 이야기다.
외국인 투수 제임스 네일에게도 가장 오랜 시간 KIA 불펜을 지키고 있는 전상현에게도 김태군은 ‘눈높이’를 말한다.
김태군은 “네일이 본인이 해야 할 몫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 그 부담감을 내려놓으면 좋겠다. 자기 눈높이를 너무 많이 올려서 눈높이를 낮추라고 이야기한다. 편하게 던지라고 한다”고 말했다.
올 시즌 애를 태우고 있는 전상현에게도 “농담식으로 너는 4점대 투수니까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한다. 그러니까 조금 더 강하게 던지는 것 같다. 물론 본인이 답답하고 속상할 것이다. ‘괜찮아, 괜찮아’ 주변에서 많이 해줄 것이다. 나도 그렇게 해주고 싶지만 냉정하게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던 김태군, 결과는 각자의 몫이라고 말한다.
김태군은 “본인들이 준비한 만큼 결과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준비한다고 하면 늦었고 스스로 잘 알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KIA에 쏠리는 시선, 그 부담감을 덜어내고 결과로 증명하는 것. 그것이 김태군이 말하는 KIA 선수들의 역할이기도 하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인기 구단이자 ‘1위 후보’였던 만큼 기대의 시선은 더 차가운 시선이 됐다.
“인기팀이라면 그걸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인기팀 1군에서 시합을 뛰는 것이다. 어떻게 매일 사람이 잘하겠나. 일희일비하겠지만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감내할 수 없는 선수가 감내할 수 있는 정도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선수와 똑같이 하고 있으면 답답하다. 본인이 느껴야 한다. 감독님이 원하시는 게 왜 본인이 1군에서 시합을 뛰어야 하는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증명을 위해 필요한 것은 ‘기본’과 ‘최선’이다.
김태군은 “나가서 기본적인 것을 할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다칠까 봐 조절하는 것은 1군에서 하는 게 아니고 2군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조절은 감독님이 교체해 주면서 하는 것이다. 그런 것 생각하지 않고 야구장에서는 야구만 하면 좋겠다. 결과가 나야 선수도 살고 팀도 산다”고 말했다.
말로만 하는 말은 아니다.
6월 7일 한화와의 홈경기에서 김태군은 2-2로 맞서 9회 2사 2루에서 타석에 섰다. 김태군의 방망이에 따라 경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중요했던 타석.
한화의 투수는 마무리 김서현이었다.
이날 경기에서도 김서현은 연달아 강속구를 뿌렸다. 그리고 예상하는 장면들도 나왔다. 포수가 몇 차례 몸을 날려 공을 잡아내기도 했고, 오선우는 볼넷을 얻어 출루했다. 폭투까지 기록되면서 KIA가 2사 2루의 끝내기 상황을 만들었다.
김서현이 김태군에게 던진 초구도 154㎞의 볼이었다. 김태군의 몸쪽으로 공이 향하면서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정작 김태군만 놀라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150㎞넘는 돌덩이가 날아온다고 상상해 보자. 본능적으로 사람들을 몸을 피할 것이다. 하지만 김태군은 오히려 맞아서라도 나가겠다는 듯 자리를 지켰다.
“상대한테 약해 보이면 안 된다”라는 게 김태군의 설명이었고, 기싸움에서 김태군이 승자가 됐다.
김서현은 꿈쩍도 하지 않은 김태군을 상대로 이후 연달아 슬라이더를 던졌지만, 이마저도 뜻대로 존에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김태군은 허벅지에 공을 맞고 걸어나갔다.
김태군의 살신성인에도 아쉽게도 후속타가 나오지 않았고, 경기는 2-3 패배로 끝났지만 ‘말이 아닌 행동’으로 김태군은 보여줬다.
“아프지 않냐”라는 질문에 김태군은 “아프죠”라면서 웃었다.
“팀의 마무리가 올라오면 어떻게든 괴롭혀야 한다.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덕아웃에 있는 팀 동료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있는 것 같다. 피하면 상대는 더 거칠게 들어오고, 반대로 우리는 압박을 받을 것이다. 약해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쓴소리를 이어온 김태군이지만 기대하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불펜 안정화와 따뜻한 날씨가 김태군이 기대하는 부분이다.
1주일에 무려 3번의 연장전을 치렀던 지난주 KIA는 4승 2패를 거뒀다. 아쉬웠던 패배들은 있었지만 불펜의 반등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른 개막으로 움츠러들었던 선수들은 기온이 오르면서 더 과감한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됐다.
팀의 위기가 선수 개인의 기회이기도 하다. 준비된 자들의 예상치 못한 활약도 기대할 수 있다. 성영탁이 1군에 있어야 할 이유를 보여준 것처럼.
과정이 나빠도 결과가 좋을 수 있고, 과정이 좋아도 결과가 나쁠 수 있다. 과정도 좋고 결과도 좋다면 최상.
하지만 지금까지 KIA는 최악으로 과정도 결과도 나빴다.
어떤 쪽에서든 이제는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