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8개월 아토피 걸렸는데… 보호자는 “강아지 분리해야 되나”

최혜승 기자 2023. 6. 5.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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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서울 시내 폐업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연합뉴스

어린 자녀가 중증 아토피피부염을 앓고있는 데도 아이와 반려견을 분리시키지 못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부모의 사연이 전해졌다.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지난달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환아 치료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의사의 치료 계획에 순응하겠다는 보호자의 올바른 태도”라며 이 같은 일화를 전했다.

이 전문의에 따르면, 올해 초 생후 8개월 환아와 보호자가 내원했다. 아이는 한눈에 봐도 아토피 피부염이 상당히 심한 상태였다. 의사는 알레르기 등에 사용되는 항히스타민제를 짧게 먹이고 스테로이드 연고와 보습제로 치료를 할 것을 권했다. 또한 음식과 환경이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아이의 알레르기 검사(CAP)도 진행했다고 한다.

알레르기 검사 결과, 아이의 호산구 수치가 높게 나왔다고 한다. 의사가 “특히 개털 수치가 상당히 높은데 (아이가) 아토피 피부염이 심하니 동물은 안 키우실 거고”라고 말하자, 이 보호자는 갑자기 “출산 전부터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고 있다”는 말을 꺼냈다고 한다.

이에 의사는 보호자에게 검사 결과를 보여주며 “아이가 개털로 고생하고 있다”며 “아토피 피부염 치료 이전에 무조건 아이와 개를 분리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치료는 원인 회피와 동시에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진단에도 보호자는 “친정집에 보낸다든지 잠깐만 분리하면 안 되나” “인터넷을 찾아보니 어릴 때부터 같이 키우면 아토피가 예방된다더라” “강아지를 더 자주 목욕시키면 안 되나” “아이를 항히스타민제로 관리할 순 없나” 같은 말을 하며 반려견과 자녀를 분리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의사는 재차 “개를 분리하지 않는 한 약 처방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조언했다. 이 보호자는 말없이 진료실을 나갔다. 진료실 밖에선 이후 “약만 좀 받으러 왔는데 의사가 잔소리만 늘어놓는다”는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이 의사는 “이런 불만스러운 태도를 나타내는 엄마들은 1년에 5~6명 이상 만날 수 있다”며 다른 사례들을 전했다. 급성 폐색성 후두염으로 즉시 스테로이드 주사를 권했는데, 보호자가 스테로이드는 독약이라며 거부하고 갔다가 다음 날 새벽에 아이가 응급실에 실려와 고생했다는 것이다. 단순 감기에도 보호자가 책임지겠다며 무조건 항생제를 달라고 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이 아이는 위막성 대장염으로 입원했다.

이 의사는 아동학대를 정의하며 “돌도 안된 아이가 진물이 가득하고 피부엔 상처가 한가득인 아이를 보호자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방치하면 그건 바로 뭘까요”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소아청소년과 최고의 비극은 의대생들의 낮은 지원율도 대학병원 소아응급실의 몰락도 아닌 이기적인 어른들의 방조로 피해는 죄 없는 아이들이 본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의사들의 소아청소년과 기피로 문 닫는 소아과가 늘면서 소아과 의료 공백은 현실이 되고 있다. 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의 표시과목별 의원 수 현황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전국 의원 수는 3만5225개다. 2013년 말의 2만8328개와 비교해 24.3% 늘었다. 대부분의 과목에서 동네의원 수가 늘었으나,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만 개원보다 폐원이 더 많았다. 소아청소년과는 10년 사이 2200개에서 2147개로 53개 줄었다.

지난 3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폐과’까지 선언하고 나섰다. 저출산, 낮은 수가, 수입 감소 등이 원인이었다. 폐과 선언 이후 온라인에선 환아와 보호자를 상대해야 하는 소아과 의사들의 어려움이 주목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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