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여고에서 '화제'였던 이 '학생'의 정체

'선의의 경쟁' 상위 1% 학생들이 다니는 채화여고에 전학 온 3학년생 우슬기(정수빈). 이전 학교에서 전교 1등이었다는 그는 보육원에서 자라났다. 아이들은 그런 그를 멀리한다. 하지만 채화여고 전교 1등으로 모든 것을 갖춰 아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인 유제이(이혜리)만은 다르다. 유제이는 우슬기에게 친밀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어딘가 불편함이 감돈다.

사진제공=U+모바일tv

최근 마지막 방송을 공개한 OTT 드라마 '선의의 경쟁'은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진심인 듯, 집착인 듯 우슬기(정수빈)에게 다가가는 유제이(이혜리)와 유제이의 타깃이 된 우슬기의 특별한 관계성을 그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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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기쁨으로"
배우 정수빈.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둘 이상의 사람이나 집단이 무언가를 놓고 겨루는 일.' 경쟁(競爭)이란 단어를 사전적 정의로 풀어낼 때, 꼭 포함해야 하는 필수 조건이 있다. 혼자가 아닌 둘 이상. 이는 절대 변하지 않는 전제다. 드라마 '선의의 경쟁'과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로 교복을 다시 입은 배우 정수빈은 치열하고 살벌한 경쟁이 있는 고등학교의 한복판으로 기꺼이 들어갔다. 졸업한 지는 몇 해나 흘렀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의 경쟁을 다시 배우고 익혔다.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두 작품 속 정수빈이 연기한 '선의의 경쟁'의 슬기와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괜찮아')의 나리는 비슷한 정서를 공유한다. 지향은 다르지만 무언가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념 아니 독기로 삶을 지탱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괜찮아'는 2021년에 촬영된 작품이지만, 공교롭게도 개봉 시기가 늦어지면서 필모그래피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 붙어있게 됐다.

슬기는 전교 1등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 나리는 서울국제예술단의 센터 자리를 지키려 애쓴다. 압박에 짓눌리더라도 어떻게든 해내려는 굳은 의지가 배어 나온다. 인터뷰로 만난 정수빈에게도 좋은 의미에서의 은근한 집념이 느껴졌다. 한 단어, 한 단어 차분하게 뱉어내 조합된 문장 안에는 특유의 또렷함이 응축되어 있었다.

레이스 위에서 앞만 보고 달려가던 슬기와 나리에게, 제이(이혜리)와 인영(이레)이란 친구가 생겼듯이, 두 작품은 정수빈에게 좋은 동료들과 '함께'하는 기쁨을 얻는 경험이 됐다. "돌아보니, 연기하는 한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공동 작업을 하면서 함께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정수빈은 초석을 잘 다지면서 좋은 의미의 경쟁과 협력으로 배우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선의의 경쟁'에서 우슬기를 연기한 정수빈. 사진제공=U+모바일tv

● '선의의 경쟁'으로 이끄는 믿음이란 추동력

고등학교 3학년, 중요한 시기에 슬기는 채화여자고등학교로 전학을 결정했다. 과거 어린이집 현장체험학습으로 바닷가를 놀러 갔다가 미아가 되어 보육원에서 자란 슬기는 중학교 때 보육원 출신이라고 괴롭힘을 당하면서 공부만이 자신을 보호할 유일한 길임을 알게 된다.

"전작들에서 상처가 많은 친구들을 연기하다 보니 반드시 그 아이들만이 가진 예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정수빈은 "슬기를 처음 마주했을 때 마냥 힘들고 어두운 인물로 표현하려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새까만 도화지보다 깨끗하고 큰 벽을 상상했다"면서 "슬기는 고민에 갇힌 인물이 아니라 해결책을 찾아 이겨낼 줄 아는 예쁜 아이다. 평소 캐릭터를 준비할 때 꽉 막힌 공간에서 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산책을 하고 많이 걸으면서 환기하는 배움을 슬기에게서 배웠다"고 이야기했다.

슬기는 근 10년 만에 아버지의 부고를 듣게 된다. 채화여고의 교사이자, 수능출제위원이었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슬기의 발걸음을 그곳으로 향하게 했다. 상위 1%가 다니는 채화여고에서 전교 1등, 보육원 출신인 슬기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제이만은 다르다. J메디컬 센터 원장의 딸이자 화려한 외모, 전교 1등의 타이틀까지 가지고 있는 제이는 슬기에게 호의를 베푼다. 뭉뚱그려 '친구'라는 단어로 묶여있지만, 두 사람은 소유하고 지배하고 이용하고 당하는 오묘한 관계로 아슬아슬한 감정을 넘나든다.

"구태여 슬기와 제이의 관계를 정의 내리지 않아서 더 재밌게 흘러가고 풍부하게 담긴 것 같아요. (제이를 연기한)혜리 언니와도 따로 '이런 관계다'라고 정해놓지 않았어요. 슬기 입장에서는 제이의 애정이 낯설고 불편하지만 차츰 적응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물론 상실감을 주기도 하지만, 참 다행인 것은 슬기는 회피하지 않고 그 이유를 직접 물어보는 친구라서 둘의 관계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선의의 경쟁'은 학교의 치열한 입시와 환경을 집중하지만, 동시에 바깥의 문제를 끌어와 충돌시킨다. 아버지의 의문사를 추적하는 슬기와 자신의 손아귀에서 통제하려 드는 아버지 밑에서 숨 막힌 제이, 바쁜 엄마 밑에서 채워지지 않는 애정을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는 최경(오우리), 명품이란 화려함으로 감추지만 지워지지 않는 어두움을 지닌 주예리(강혜원)까지. 각자가 지닌 사정에 따라 상처를 주고받던 네 사람은 조금씩 약점을 드러내며 이해하고 돕는다.

"외부의 갈등이 내부 공간으로 들어와 다 같이 뭉치게 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바깥에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위협이 있으니까요. 사실 '선의'와 '경쟁'이라는 단어가 나란히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죠. 그치만 경쟁의 상태에 놓이려면,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더라고요. 나 혼자서만 할 수는 없잖아요. 서로를 이기기 위해 짓밟는 것이 아니라, 장점을 배우고 나아가는 게 선의의 경쟁 아닐까요?(웃음)"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의심과 확신의 반복

고등학교 2학년, 서울국제예술단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해 무용수를 꿈꾸는 나리는 자신의 어깨 위에 있는 짐들이 버겁다. 엄마의 못다 이룬 꿈을 이뤄주려고 시작했지만 힘에 부친다. 잘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함께 연습하는 친구들은 모두 이겨야 하는 대상이다. 그 와중에 보호자가 없는데도 꿋꿋한 인영의 해맑음이 나리에게는 못마땅하다.

"생각해 보니 인영은 의외로 슬기와 닮아있고, 나리는 제이와 닮아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정수빈은 "다른 경쟁을 하고 있지만 너무 열심히 살고 있는 아이들이라고 느껴진다"고 이야기했다. 한국무용을 다루기에 육고무부터 소고, 검, 북, 부채 등의 다양한 안무를 배우고 익혔다는 그는 "배우로서 누군가의 삶을 표현할 때 정말 최선을 다하자, 누가 되지 말자는 마음으로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연습했던 것 같아요. 오디션으로 캐스팅된 이후 춤을 배웠죠. 단원으로 함께 출연한 친구들은 한두 살 차이가 나는 또래고, 20명~30명씩 연습에 참여했죠. 그들이 없었다면 아마 해낼 수 없었을 것 같아요. 그때의 그 배움이 초석으로 단단히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혼자서만 춤추려고 했던 나리가 함께일 때의 행복을 알게 되잖아요. 저 역시 함께 하는 시간 동안 기쁨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이죠."

의심하고, 확신하고 또 꺾이기를 반복하는 슬기와 제이의 관계처럼 연기를 해나가는 과정은 손에 잡히지 않는 형태지만 정수빈은 그럼에도 자신만의 동력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이전에 출연한 드라마 '트롤리'의 김현주 선배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인물을 시작하는 지점은 사랑으로부터다' 미움에 대한 감정도, 그 밑바탕에는 좋아하니까 생기는 거잖아요. 많은 인물들에 애정을 갖고 접근하고 있죠. 처음 연기를 한 것은 너무 행복해서였는데, 아직까지 그게 꺾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받은 애정들을 혼자만 쓰지 않고 돌려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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