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머니톡'이 드러낸 법적 허점…"개인정보 지키려면 입법 시급"
고지 제도 미비, 피해자가 피해자인지 모르는 상황
소비자 기만해 수집한 정보로 수십억 원 수익
"과징금 미미해 실효성 없다…유사 사례 확산되고 있어"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EBS '머니톡' 방송으로 시청자 개인정보 3만여 건이 보험사로 넘어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개인정보보호를 둘러싼 법적 '허점'이 드러났다. 자신이 피해자인지 몰라 법적 소송이 어렵고 수십억 원 규모의 수익에 비해 과징금이 적어 재발방지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EBS 방송 이외에도 수십 건에 달하는 유사 사례가 확산돼 법적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4일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고영인 더물어민주당 의원,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산소비자단체협의회 공익소송추진단 주최로 '개인정보유출의 문제점과 제도개선 방안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2020년 4월 방영된 EBS '머니톡'은 재무설계 방송을 표방했지만 실상은 보험대리점업체 키움에셋플래너로부터 26억 원 협찬금을 약속받고 제작된 보험판촉 프로그램으로 드러났다. EBS는 홈페이지, 방송 중 전화번호 안내 자막을 통해 '무료 상담'을 받으며 개인정보를 키움에셋플래너에 넘기고도 이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

키움에셋플래너는 이후 해당 정보를 '금융 상품 판매' 등에 활용했고, 제공받은 개인정보 DB를 보험설계사들에 대량 판매했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2020년 10월 7일 해당 문제를 보도하자 2020년 4월부터 방영된 EBS '머니톡'은 6개월만에 폐지됐다. EBS와 키움에셋플래너엔 지난 2월 과징금이 부과됐다.
EBS '머니톡' 피해자 3만여 명…분쟁조정 신청자는 0명
하지만 피해자들은 자신이 피해자인지 알지 못한다. 안산소비자단체협의회(안산소협)가 지난 8월부터 공익소송을 위해 피해자들을 모으고 있지만 사례 접수는 미미하다. 단체가 나서지 않으면 피해자가 있음에도 소송으로 연결되기 쉽지 않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주관하는 분쟁조정 절차가 있지만 3만여 건이 넘는 머니톡 피해자 중 분쟁조정을 신청한 경우는 없다.

안산소협이 제기한 공익소송의 대리를 맡고 있는 김은경 변호사는 “피해 당사자도 자신이 피해자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이에 피해자를 파악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며 “분쟁조정 신청이 없는 것도 피해자가 피해자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불법행위를 입증할 만한 자료를 개인정보 수집 및 처리자가 가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번 EBS '머니톡' 사건의 경우 EBS는 개인정보 DB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혀 키움에셋플래너 측에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를 확보하고 불법 행위를 입증하기 위해 형사 절차를 통할 수밖에 없다. 형사 절차를 통하더라도 고발인 측에서 열람할 수 있는 자료가 제한돼 다수 피해자들이 민사소송, 구제 절차로 이어지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기종영으로 인해 EBS는 키움에셋플래너로부터 실제 13억 원 상당의 협찬금을 지급받았다. 키움에셋플래너는 3만여 건의 개인정보를 약 7~8만 원 가량에 판매해 수십억 원의 수익이 예상된다. 하지만 EBS에 내려진 과징금은 개인정보위와 방통위 과징금을 합해 7600여만 원, 키움에셋플래너의 경우 개인정보위 과징금 1억 5300여만 원에 불과하다. 당국의 과징금 규모를 두고 '솜방망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머니톡'과 유사한 보험상담 프로그램은 머니톡 폐지 이후에도 확산되고 있다. 정필모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20개사에서 23개의 유사 프로그램이 확인됐다. 김은정 변호사는 “관리·감독이 미흡해서 방송 TV 확보를 위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며 “당시 소속 설계사들에게 유상으로 제공된 DB에는 정보 주체의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거주지, 보험, 가입 내역, 건강 상태 등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의 내밀한 정보가 포함돼 있었다. 심지어 정보 주체에 고지한 보관 기간이 1년이었지만 1년 경과 이후에도 삭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 설계사가 DB를 매수할 경우, 이 매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소비자들에 보험 수당이 높은 보험이나 기존 보험을 해약하는 식으로 권유할 수가 있다. 개인정보가 넘어간 피해뿐 아니라 소비자 비용 부담도 늘어나는 어마어마한 피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 기만 멈추려면 입법 시급…외국에 비해 느슨하다”
결국 입법을 통해 개인정보처리 절차의 '허점'을 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보라미 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는 “개인정보 침해 사건의 대부분은 내 정보 처리가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업자가 의도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하지만 정확하게 내 정보가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알 수 있게 법이 되어 있지 않다. 충분한 고지 제도가 도입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럽 개인정보보호법에선 동의를 받지 않을 때에도 어떤 근거로 처리되는지를 고지하도록 돼있는데 그것이 입법화될 필요가 있다. 고지 절차는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통제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라며 “현행법에 따르면 정보 주체의 요구가 없을 때 EBS 머니톡처럼 피해자가 알 도리가 없다. 개인정보가 키움에셋플래너로 넘어가는 것에 동의가 없었어도 원래는 고지했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를 기만하는 '다크패턴(눈속임설계)'도 당국의 규제 대상 중 하나다. 머니톡처럼 EBS를 내세워 광고행위를 한 것이 대표적인 '다크패턴'이다. 소비자에게 '보험판매행위'라는 것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유럽 디지털 서비스 법안에 상당 부분 규제가 들어가 있지만 한국에선 다크패턴 규제가 조금 불분명하게 들어가 있다”며 “미국 연방거래위원회에서도 위장 광고, 중요한 정보 숨기거나 모호하게 하는 등의 경우에 엄정 감시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상태”라고 밝혔다.
당국의 조치가 실효성이 있으려면 '과징금 강화'도 시급한 문제다. 유엔 역시 같은 문제를 한국에 지적한 바 있다. UN프라이버시 특별보고관은 지난해 '한국 방문조사에서의 프라이버시 보고서'에서 “전세계 매출액의 4~5%로 행정벌금을 부과할 것을 국제 표준으로 권장한다”고 했다. 한국에선 과징금이 전체 매출액 기준이 아닌, '관련' 매출액 기준으로 계산된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너무 낮은 수준이라 억제력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국회에서 시급히 들여다 봐야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방송에서 이러한 유사 프로그램들이 근절이 안 되는 것을 볼 때 관련 규정을 좀 더 엄격하게 보완할 필요성을 느낀다”며 “행태 정보를 수집해 짜깁기 하면 개인의 어떤 선호도같은 것들이 다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사적 정보를 이용해 광고,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은 강한 규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씀해주신들 사안들을 의정 활동에 잘 참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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