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가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는 순간부터, 한화 이글스의 시계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상선수다. FA 시장에서 누군가를 놓쳤을 때 따라오는 이 제도는 늘 아쉽고 번거롭지만, 동시에 판을 다시 짤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김범수 이적은 단순한 전력 손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화 불펜에서 오랜 시간 버텨온 좌완 한 축이 빠져나갔고, 김경문 감독 체제에서 ‘마지막으로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카드’가 눈앞에 놓였다.

이번 보상선수는 확정된 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여러 조건과 흐름을 차분히 놓고 보면, 한화가 어떤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은지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다. 핵심은 단 하나다. 이 보상선수는 미래를 위한 로또가 아니라, 2026시즌을 바로 채워 넣을 수 있는 실전 카드여야 한다는 점이다.
김범수는 B등급 FA로 KIA와 3년 총액 20억 원 계약을 맺었다. 규정상 한화는 두 가지 선택지를 갖는다. 보상금 200%를 받고 끝내거나, 보상금 100%와 함께 KIA의 보호선수 25인을 제외한 선수 1명을 데려오는 방식이다. 구단 운영 현실과 전력 상황을 고려하면, 한화가 ‘현금만 받고 물러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당장 1군에서 쓸 수 있는 선수를 얻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전제부터 짚어야 한다. 자동 보호 선수들은 논외다. 양현종, 조상우, 이준영, 홍민규, 이태양 같은 이름들은 보호 여부를 고민할 필요조차 없다. 규정상 한화의 선택지에 올라오지 않는다. 이 말은 곧, 한화가 바라보는 판은 ‘그 아래층’이라는 뜻이다. 스타 플레이어가 아니라, 실무형 자원. 이름값보다는 쓰임새가 기준이 된다.

KIA의 보호명단을 구성하는 방향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다. KIA는 지금 당장의 핵심 전력과 미래 자산을 함께 지켜야 하는 팀이다. 자연스럽게 보호 명단의 상당수는 투수, 그중에서도 주축 자원에 쏠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보호 명단에서 빠질 가능성이 높은 쪽은 비교적 역할이 제한적인 불펜 자원이나, 포지션이 겹치는 외야 백업 쪽으로 좁혀진다. 여기서부터 한화의 계산이 시작된다.
한화의 현실적인 니즈는 명확하다. 첫째는 불펜이다. 김범수가 빠졌고, 한승혁도 팀을 떠났다. 젊은 투수들이 성장하고 있지만, 시즌을 통째로 맡기기엔 여전히 부담이 따른다. 김경문 감독이 가장 선호하는 유형은 ‘지금 계산이 서는 투수’다. 구위가 엄청나지 않아도,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역할이 분명한 선수. 이런 기준에서 보면, 좌완 불펜이 최우선 후보로 올라오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래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름이 곽도규다. 젊고, 좌완이고, 불펜에서 바로 쓸 수 있다. 한화 입장에서 김범수 공백을 가장 직관적으로 메울 수 있는 카드다. 다만 문제는 KIA 역시 이 가치를 모를 리 없다는 점이다. 곽도규는 끝까지 보호하려 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 경우 한화는 ‘플랜 B’를 준비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거론되는 성영탁은 김경문 감독 스타일과 잘 맞는 유형이다. 폭발적인 구위보다는 안정감, 즉시 투입 가능성, 캠프 합류 후 바로 테스트할 수 있는 점이 강점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시즌을 운영하는 데 꼭 필요한 선수다. 황동하는 조금 결이 다르다. 불펜과 스팟 선발을 오갈 수 있는 자원으로, 한화 투수 운용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 확실한 고정 역할은 아니지만, 시즌이 길어질수록 이런 자원의 가치는 올라간다.

불펜이 아니라면 외야다. 손아섭 영입으로 공격 쪽은 숨통이 트였지만, 수비와 기동력은 여전히 숙제다. 중견수 자원은 특히 애매하다. 이원석, 이진영, 최인호 모두 장단점이 분명하고, ‘확실한 주전’이라는 느낌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재현이나 박정우 같은 수비형 외야 자원이 보호 명단에서 빠진다면, 한화로서는 충분히 고민해볼 만하다. 공격 생산력은 제한적이지만, 대수비와 대주자로 바로 쓸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매력이다.

다만 이번 보상선수의 성격을 생각하면, 한화가 외야 쪽으로 크게 기울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불펜은 시즌 초반부터 바로 체감되는 포지션이지만, 외야는 기존 자원으로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김경문 감독 체제 마지막 시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모험보다는 확률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보상선수는 대박을 노리는 판이 아니다. 유망주를 데려와 몇 년 뒤를 보는 선택지도 아니다. 조건은 단순하다. 당장 1군에서 쓰일 수 있는가, 캠프에서 바로 평가가 가능한가, 시즌 중 계산이 서는가.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쪽으로 선택은 좁혀질 것이다.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여전히 투수다. 그중에서도 좌완 불펜이 최우선, 그 다음이 즉시 전력 우완 불펜, 마지막으로 외야 수비 자원이다. 이름값보다 확률, 잠재력보다 활용도. 한화는 이번만큼은 ‘잘 될지도 모르는 선수’보다 ‘쓸 수 있는 선수’를 고를 가능성이 크다.
아마미오시마에서 시작해 한국을 거쳐 호주 멜버른으로 이어지는 스프링캠프 일정은 누구에게나 고된 여정이다. 그 길의 끝에 서게 될 보상선수는 단순히 FA의 부산물이 아니다. 2026년 한화 이글스가 다시 한 번 위를 바라볼 수 있을지 가늠하는 작은 조각이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다만 흐름은 분명하다. 한화는 이번 선택에서, 모험이 아니라 확률을 택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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