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영화다 혹평 듣던 '왕의 남자' 반전 비하인드

2005년 말, 한국 영화계에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거대한 폭풍이 몰아쳤다.
개봉 전까지만 해도 “소재가 너무 파격적이라 망할 것”이라는 혹평을 들었던 영화 ‘왕의 남자’가 그 주인공이다.

언론 시사회 당시의 싸늘한 분위기를 딛고 대한민국 영화사상 세 번째 천만 관객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우기까지, 그 극적인 반전의 과정을 되짚어본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서울극장에서 열린 최초의 시사회 현장은 축제보다는 장례식장에 가까웠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장항준 감독은 과거 송은이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씨네마운틴’에 출연해 “시사회 분위기가 정말 당혹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으나, 객석에서는 감탄도 환호도 없었으며 단 한 명도 박수를 치지 않는 싸늘함이 감돌았다.

남성 간의 묘한 감정선과 광대라는 낯선 소재, 연극적인 연출 방식은 평단과 관계자들에게 강한 ‘비대중성’을 심어주었다.
현장의 숨 막히는 공기에 당황한 장항준 감독은 정문으로 나가면 연출을 맡았던 이준익 감독을 마주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까 봐, 결국 감독을 피해 뒷문으로 도망가려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망치던 중 뒷문 구석에서 홀로 풀이 죽은 채 담배를 피우고 있던 이준익 감독과 딱 마주쳤고, 이준익 감독은 어두운 표정으로 “어땠냐, 잘될 것 같냐”며 극심한 불안감을 내비쳤다.
투자자들의 노골적인 우려 속에서 이준익 감독은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을 정도로 극에 달한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사실 이 영화는 제작 단계부터 난항의 연속이었다. 조선 남녀 상열지사를 다룬 파격적인 내용과 막대한 비용이 드는 사극이라는 이유로 국내 메이저 투자사들이 전부 투자를 거절했다.
그러나 시나리오의 가치를 알아본 충무로의 대표 승부사 강우석 감독이 경영진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30억 원의 제작비 투자를 과감히 결정하면서 가까스로 빛을 볼 수 있었다.

캐스팅 단계에서도 주연 배우가 군 입대로 하차하는 악재를 겪었으나, 감우성, 정진영, 강성연 등 베테랑 배우들의 열연과 300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신인 이준기라는 원석의 발견이 시너지를 냈다.
정식 개봉과 동시에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화려한 블록버스터 사이에서 낮은 자세로 출발한 ‘왕의 남자’는 관객들의 폭발적인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인간의 고독과 권력의 비극을 깊이 있게 다룬 스토리가 전 세대의 공감을 얻었다.
특히 이준기가 연기한 ‘공길’ 캐릭터는 대한민국에 ‘예쁜 남자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한 관객이 무려 56번이나 관람할 정도로 강력한 N차 관람 열풍이 불었던 이 영화는 개봉 45일 만인 2006년 2월 11일, 전국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 흥행사를 새로 썼다.
시사회장에서 고개를 갸웃했던 이들은 결국 관객들의 선택 앞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파격적인 소재를 예술적 가치로 승화시킨 이준익 감독의 뚝심과 대중의 마음을 읽어낸 광대들의 한판 놀음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영화계의 가장 전설적인 역전극이자 성공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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