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 손재일 체제 시험대…초고속 성장 이면 안전경영 성공했나

조재범 기자 2026. 6. 2. 11:1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업이익 3조 돌파 이면엔 ‘반토막’ 안전 예산
해외 M&A에 수천억원 쏟는 동안 현장 안전은 뒷전
고속 성장 이끈 손재일 대표, 중대재해 리스크 발목
[출처=연합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노동자 5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지난 2022년 9월 취임해 외형 성장을 이끌어온 손재일 대표의 경영 능력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방산 수출을 앞세운 초고속 성장 이면에 안전경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손재일 대표는 1987년 입사 이후 방산 계열사 통합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그룹 내 입지를 탄탄히 다져왔다. 2024년에는 한화시스템 신임 대표이사까지 겸직하며 그룹 방산 분야 전반을 주도하고 있다.

손 대표 취임 이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승승장구했다. 품질을 높이는 노력을 통해 폴란드 등 주요국에 수출하는 성과를 보이며 한국 방산산업을 이끄는 대표 기업으로 우뚝섰다. 그 결과 2024년 매출 11조2000억원, 영업이익 1조7000억원을 달성한 데 이어 2025년에는 연결 기준 3조34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번 대전사업장 참사는 화려한 경영 성과 이면에 감춰진 리스크 관리 역량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이번 폭발 사고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그간 안전 체계 마련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과거 화약 부문 사업장에서 발생한 중대 사고를 교훈 삼아 안전경영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고 있지만 재차 사고가 발생하면서 성장과 안전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M&A 광폭 행보에도 반토막 난 현장 안전 예산
[출처=연합]

업계에서는 현장의 안전보건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난해 책정한 국소배기장치 유지보수 등 안전보건 예산은 68억원 수준이다. 이는 2025년 영업이익의 0.2%에 불과한 수치로, 향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공개될 실제 집행액은 이보다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2024년에도 노후 설비 교체와 위험공정 무인화 등을 위해 76억원의 안전보건 예산을 수립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 집행된 금액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5억원에 그쳤다. 2023년 방폭설비 설치 등에 72억원을 투입했던 것과 비교하면 1년 만에 안전 투자가 반토막 난 셈이다.

반면 외부 기업 인수합병과 지분 투자에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었다. 2024년 이후 미국 액화천연가스 기업 넥스트디케이드에 1803억원, 싱가포르 해양설비 제조업체 다이나맥에 8625억원을 투입했다. 호주 오스탈조선소에도 2699억원의 브라운필드 투자를 단행하며 해외 확장에 속도를 냈다.

국내 시장에서도 한국항공우주산업 지분을 지속적으로 매입해 지분율을 7.22%까지 늘렸다. 여기에 1조5000억원 안팎으로 평가받는 풍산 탄약사업부 인수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위해 수천억원을 지출하면서도 정작 내부 현장 안전 관리에는 소홀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외형 확장에 집중하는 동안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용 비중도 하락세를 보였다. 2023년 9% 수준이던 해당 비중은 2024년 7.9%로 떨어졌다. 2025년에는 3.9%까지 급감하며 현장의 근본적인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스마트 공정 및 기술 인프라 투자가 위축되는 흐름을 보였다.

반복되는 중대재해에 노동계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2일 오전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참사가 노동자의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한 결과로 빚어진 '사회적 타살'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방위산업의 특수성이 현장의 안전 사각지대를 키웠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국가 보안 시설이라는 이유로 고용노동부 등 감독 기관의 접근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보안을 명분으로 노동조합의 안전 점검 활동까지 가로막히면서 노후화된 설비의 위험성이 방치됐다는 분석이다.

손재일 대표는 최고경영자 자격으로 환경안전보건경영 지침에 직접 서명하며 '안전문화 내재화'와 '시스템 운영 강화'를 공언한 바 있다. 해당 지침에는 임직원이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선제적 위험 관리와 공정한 안전 문화 정착을 도모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여기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중대재해 유발 고위험 요인을 식별하는 프로세스를 도입해 전 사업장의 위험도를 80% 감소시켰다는 자체 평가도 내놨지만 이번 사고로 선제적 안전 관리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화약을 취급하는 방산 공정 특성상 단 한 번의 실수나 설비 결함도 대형 인명 피해로 직결된다. 무기체계 조립과 탄약 제조 전 주기에 걸쳐 완벽한 무결점 안전망 구축이 요구되는 이유다. 손 대표가 추진해 온 생산 라인 증설과 공정 속도 개선 작업의 실효성 및 안전성도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외 신뢰도 타격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납기 준수가 생명인 방산 수출 프로젝트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환경·안전·보건 경영 시스템을 완벽히 구축하고 실행력을 입증해야 한다.

취임 이후 4년 차를 맞은 손재일 체제는 가장 엄중한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단순히 이번 사고를 수습하는 차원을 넘어 방산 현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이뤄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았다. 이익보다 생명을 중시하는 진정한 '안전경영' 실현 여부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속가능성을 결정지을 최종 평가 기준이 될 전망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한화그룹은 사고 수습을 위해 전사적 역량을 투입키로 한 상태다. 여승주 부회장이 직접 특별대응 테스크포스를 이끌며 원인 규명과 수습 과정을 총괄 지휘한다. 손 대표를 비롯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경영진은 현재 사고 현장에 상주하며 사태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업무에 최선을 다 하던 직원들이 숨지고 다쳤다는 소식에 애통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다"며 "유명을 달리한 직원들에게 최선의 예우를 하고, 유가족 지원 및 부상자 치료 등 피해 수습을 정성을 다해 신속하게 실행하라"고 당부했다.

Copyright © EB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