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자 ‘아노라’의 결혼 난장판…씁쓸한 웃음의 종착역은?
미국 뉴욕의 스트리퍼 클럽에서 일하는 우즈베키스탄계 여성 ‘아노라’(미키 매디슨)는 우연히 러시아 재벌의 아들 ‘이반’(마르크 예이델시테인)을 만난다. 아노라는 이반에게 돈을 받고 일주일 ‘섹파 여친’이 된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아노라와 이반은 즉흥적으로 결혼한다. 이반의 부모는 아들과 성노동자의 결혼 소식에 격노해 부하 삼인방 ‘토로스’(캐런 캐러글리안), ‘가닉’(바체 토브마샨), ‘이고르’(유리 보리소프)를 보낸다. 이반은 겁에 질려 혼자 도망치고, 아노라는 삼인방에게 결혼 무효를 강요당한다.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 <아노라>(2024)가 11월6일 극장 개봉한다. 올해 제77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경력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다. 미국 영화로는 테런스 맬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2011)에 이어 13년만에 황금종려상이란 쾌거를 이뤘다. 베이커 감독은 성노동자, 이민자, 빈민, 트랜스젠더 등 미국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삼아왔다. 성노동자 캐릭터는 전작인 <스타렛>(2012) <탠저린>(2015)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등에서도 등장했다.
아노라는 숙련된 성노동자다. 그가 남성을 성적으로 흥분시키는 기술은 ‘전문적’이다. 하지만 성노동자의 전문성은 ‘장인’이라는 찬사가 아니라 ‘걸레’라는 혐오의 대상이다. 성매매가 불법인 한국에선 물론이고 성매매가 합법인 국가에서도 성노동자는 떳떳한 직업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베이커 감독은 성노동을 유쾌한 코미디로, 미국의 밤거리를 현란한 리듬으로 연출했다. 아노라와 부하 삼인방의 ‘대환장 난장판’에 객석에선 웃음이 폭죽처럼 터졌다.
아노라는 이반의 부모가 보낸 부하 삼인방에게 거침없이 주먹을 날릴 정도로 당당한 여성이다. 성매매로 생계를 꾸리지만 ‘창녀’ ‘매춘부’라고 불리면 불같이 화를 낸다. 누가 자신을 우즈베키스탄 이름인 ‘아노라’라고 부르면 ‘애니’라고 부르라고 수차례 정정한다. 아노라는 이름에 의미 따윈 두지 않는 강인한 미국 여성 ‘애니’로 자신을 정체화했다. 아노라는 애니로서 아무렇지 않은 척, 상처받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살아간다.
아노라의 결혼은 적법했다. 결혼 무효는 부당한 모욕이다. 하지만 누구도 아노라와 이반의 결혼이 ‘사랑해서 한 결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노동자의 결혼은 ‘철없는 놀이’거나 ‘꽃뱀의 사기’라고 윽박지른다. 러시아의 올리가르히(신흥 재벌)와 미국의 가난한 스트리퍼는 절대적인 계급의 격차가 있다. 아노라는 남편 이반에게, 토로스는 이반의 부모에게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으려 발악한다. 아노라의 동물적인 사나운 태도는 계급 격차에 주눅들지 않겠다는 안간힘으로 보인다.
아노라를 위로하는 유일한 인물은 부하 삼인방 중 한 명인 이고르다. 하지만 아노라는 이고르에게 싸늘한 표정으로 욕설을 퍼붓는다. 이고르의 위로, 호의, 배려는 사회의 혐오, 멸시, 모욕을 괜찮은 척 견뎌왔던 아노라를 작고 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고르의 따뜻한 위로는 사랑일까. 아노라가 남성과 맺어왔던 모든 관계는 거래였고 쾌락이었다. 아노라는 대가 없는 사랑을 받는 방법을 모른다. 아노라가 무너지는 마지막 장면의 무심한 자동차 와이퍼 소리는 마음을 아리게 흔든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와이퍼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마음의 진동이 오래도록 멈추지 않았다.
베이커 감독은 ‘성매매의 비범죄화’를 주장하며 ‘성노동’을 분명하게 지지해온 인물이다. 그는 지난 5월 칸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성노동은 직업이자, 생계수단이자, 경력이며 존중받아야 한다. 성노동자의 몸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그들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영화의 의도가 있다면 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며 “이 생계(성노동)에 대한 낙인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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