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 진출 김가영은 왜 2세트를 11-3으로 내줬어도 흔들리지 않았나

3쿠션 당구에서 세트를 크게 내주는 것은 단순한 점수 손실이 아니다. 상대의 리듬을 살리고, 본인의 집중력을 시험하는 구조적 위기다. 5월 18일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리금융캐피탈 LPBA 챔피언십 2026 32강전, 김가영은 2세트를 3-11로 대패했다. 1세트를 11-6으로 가져간 직후의 일이었다. 분위기 반전의 조건은 충분했다. 그러나 김가영은 3·4세트를 연속으로 닫았다. 최종 세트 스코어 3-1. 질문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2세트 참패 이후 3·4세트를 어떻게 지배했는가.

이 경기는 김가영에게 시즌 개막전부터 이어온 우승 도전의 연장선이다. 현재 LPBA 통산 18회 우승을 보유한 김가영은 이번 시즌 19번째 우승컵을 향해 대회를 소화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번 대회 128강과 64강을 각각 25-10, 25-13으로 여유 있게 통과했다. 상대 장혜리는 달랐다. 64강에서 16-15의 1점 접전 끝에 올라온 상태였다. 체력과 집중력의 소모 측면에서, 32강에 오는 두 선수의 궤적은 명확히 달랐다.

두 선수의 이전 맞대결 전적도 이번 경기의 긴장감을 높인 배경이었다. 2023-24시즌 월드챔피언십에서 장혜리는 김가영을 3-0으로 완파했다. 32강 상대로서 쉽지 않은 선례였다. 이후 2024-25시즌 월드챔피언십 16강에서 김가영이 3-0 역전을 만들었다. 1승 1패. 세 번째 만남이자 정규투어 첫 맞대결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32강 이상의 의미가 붙어있었다.

경기 흐름에서 핵심 구간은 2세트 직후다. 장혜리는 2세트를 11-3으로 가져가며 단순한 역전이 아니라 김가영의 리듬 자체를 흔드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3세트였다. 3쿠션 경기에서 분위기가 한 선수에게 완전히 기울었을 때, 되돌리는 것은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트 운영 방식, 이닝당 점수 안배, 상대 공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김가영은 3세트를 11-8로 마쳤다. 압도가 아니라 관리였다. 상대의 반격 흐름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페이스로 경기를 되돌린 결과다.

4세트 11-9는 이 경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수치다. 장혜리는 끝까지 따라붙었다. 2점 차까지 좁혀지는 순간이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상황에서 경기를 닫은 것은 기량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압박 상황에서의 결정력 차이다. 역대 맞대결에서 장혜리가 김가영을 3-0으로 꺾은 경기가 있었던 만큼, 이번 4세트의 접전은 단순히 상대가 약했기 때문에 이긴 승리가 아님을 방증한다.

이번 32강 통과가 갖는 시즌 맥락도 짚어야 한다. 김가영은 이미 직전 시즌 8개 투어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새 시즌에서 통산 19번째 우승을 추가하기 위한 여정은 단순한 숫자 추가가 아니다. 새 시즌의 출발점에서 경쟁자들의 적응이 빨라진 가운데, 16강 이상에서 어떤 선수들과 맞부딪히느냐가 변수다. 장혜리를 상대로 3·4세트의 접전을 경험한 것 자체가,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실전 데이터다.

남은 16강 이후 대진에서 더 강한 상대가 기다리고 있다. 김가영이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2세트를 내준 뒤 3·4세트를 잡아낸 오늘의 경기 운영 방식이 상위 라운드에서도 유지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통산 18회 우승의 선수에게도 토너먼트는 매 경기 다시 시작된다. 오늘 김가영이 보여준 건 화려한 득점이 아니라, 흔들린 뒤에도 무너지지 않는 세트 관리 능력이었다. 그것이 LPBA에서 이 선수가 계속 우승하는 이유에 가장 가까운 설명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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