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로 건너가 추장이 된 전설의 한국인 정체

'영화,드라마로 만들어 주세요!' - 아프리카로 건너가 추장이 된 한국인 정체

가끔 뉴스와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되면 그런 생각이 들것이다.

와! 이거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면 딱이겠다!"

라고…

필더무비가 이번에 만든 코너인 '만들어 주세요!'는 우리가 뉴스와 우연한 일로 접하게 된 기가막힌 사연과 정보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실화를 소개하는 코너로 이를통해 혹시나 영화,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기적(?)같은 일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만들게 되었다.

혹시나 새로운 소재를 찾고있는 영화,드라마 업계 관계자라면 이 코너를 앞으로 쭉 참고하셨으면 한다.

지식의 날개

오늘 첫 소개할 소재는 바로 아프리카로 건너가 실제 부족 추장이 된 한국인의 이야기다. 그 주인공은 육종학자 인 한상기 박사다. 1933년 8월 12일 출생한 그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다 1971년에 나이지리아로 건너가게 되고, 이 나이지리아 행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게 된다.

카사바 (위키백과)

당시 나이지리아는 심각한 식량난으로 수많은 국민과 부족들이 어려움에 처하고 있었고, 정부는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도저히 방법을 찾을수 없었다. 당시 나이지리아에 식량난이 발생한 이유는 이들의 주식인 카사바가 박테리아, 바이러스에 감염해 생산량이 80%에 가까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한상기 박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이를 확인한 한상기 박사는 카사바의 원종이 있는 브라질로 직접 가서 카사바 원종의 씨앗을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이 시앗을 바로 심었다가는 또 카사바가 바이러스로 죽을수 있기에 한박사는 이를 통해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도 높은 슈퍼 카사바를 개발하게 된다. 이 슈퍼 카사바는 이름 그대로 기존 카사바보다 크기도 엄청났다.

그런데 문제는 개발은 성공했지만 나이지리아 정부가 보급은 자기들이 할 일이 아니라 손을 놓고있자, 한박사는 연구소 직원들과 현지의 뜻잇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농민들을 대상으로 직접 보급하기로 결정한다. 어떻게든 나이지리아와 아프리카의 굶고있는 사람들을 구하는게 우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상기 박사가 키운 제자들 파일

이러한 방식으로 보급이 널리 퍼지게 되자, 나이지리아를 시작으로 현지에 카사바를 주식으로 삼고있는 아프리카 41개국에서도 슈퍼 카사바가 보급되었다. 여기에 한박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얌, 바나나 같은 작물도 개량하였으며, 아프리카의 농업기술이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현지의 제자들도 길러내며 이들의 자립을 돕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후기에 따르면 이 제자들중 일부가 르완다, 콩고 등 아프리카 내전으로 인해 사망했으며, 이로인해 한박사는 슬픔에 빠졌다고 한다.

세계은행 총재와 함께

이러한 업적에 힘입어 그는 국제적 명성을 얻었고, 세계은행은 식량문제를 해결한 그를 두고 '아프리카 조용한 혁명의 기수'라고 칭했으며, 1982년에는 영국 기네스 과학공로상을 받기에 이른다.

그리고1983년에 외국인 최초로 현지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요루바족의 대왕에게 정식 추장으로 봉작되었는데, 그가 받은 칭호는 '세리키 아그베(Seriki Agbe)'로 농민의 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추장은 단순한 마을 이장 혹은 명예직이 아닌 수만명을 다스리는 군수나 시장에 더 가까운 존재라고 한다. 한상기 박사가 분봉받은 이키레(Ikire)라는 지역은 2022년 기준으로 인구가 22만 명에 달하는 지역으로 규모가 큰 곳이다.

추장이 된 한상기 박사와 아내

추장이 된 이후에도 연구 활동에 매진한 그는 현재 구순에 이르렀고, 한국으로 돌아와 과학계에서 은퇴했다. 타지에서 함께 고생했던 아내는 2013년부터 치매를 앓다가 2020년 먼저 떠나게 되었다. 자신의 순수한 재능으로 인류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이 한국인 과학자의 이야기는 좋은 소재의 영화와 드라마로 완성해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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