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 니코틴' 틈새시장 노린 BAT, 비상계엄 사태로 입법 공백에 '방긋'
BAT가 합성니코틴 액상담배를 출시하며 합성니코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지난달 출시된 노마드 싱크 5000 /사진=BAT로스만스
글로벌 담배회사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 그룹이 합성니코틴을 담배로 규정하지 않는 국내법의 '틈'을 노리고 합성니코틴 전자담배를 출시했다. 업계에서는 합성니코틴도 담배에 포함해야 한다는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비상계엄 선언의 후폭풍으로 정국이 마비되며 입법공백 상태가 길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BAT가 합성니코틴 전자담배를 세금회피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10일 BAT코리아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달 25일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 '노마드 싱크 5000'을 출시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크게 천연니코틴 제품과 합성니코틴 제품으로 나뉘는데, 노마드는 후자에 속한다. BAT코리아는 전 세계 가운데 한국에서 처음으로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를 내놓았다.
BAT의 합성니코틴 제품 출시는 합성니코틴을 담배로 분류하지 않는 규제의 사각지대를 노린 것이다. 현행 담배사업법은 연초 잎, 천연니코틴을 원료로 한 담배만을 규제한다. 따라서 궐련담배와 궐련형 전자담배, 천연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에 포함되지만 연초 잎 대신 화학물질을 합성해 만든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에 해당하지 않는다. 즉 합성니코틴은 담배가 아니기 때문에 세금에서도 자유롭고 경고문구나 그림 등을 부착할 의무도 없다. 또 온라인 판매와 판촉도 가능하다.
업계는 BAT가 이러한 허점을 이용해 합성니코틴 전자담배를 세금회피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담배 시장은 세금 부담이 큰 산업이다. 연초담배 기준으로 판매가격(4500원)의 약 70%가 세금 및 부담금이며, 액상담배에도 1㎖당 1800원의 담뱃세가 붙는다. 10㎖ 용량인 노마드가 합성니코틴이 아닌 천연니코틴 제품이라면 개당 18000원의 세금이 부과된다. 업계 관계자는 "합성니코틴을 담배로 분류하지 않아 연간 1조6000억원의 세수손실이 발생한다"고 전했다.
BAT 입장에서는 합성니코틴 시장이 세금을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업계의 양대산맥인 KT&G와 필립모리스가 진출하지 않은 '틈새시장'이기도 하다. BAT는 지난 1990년 한국에 진출해 '던힐' 브랜드 등으로 30년 이상 공략해왔지만 여전히 업계 3위에 머물러 있다. 특히 전자담배 시장에서는 KT&G와 필립모리스가 양강구도를 이루며 점유율 90%를 나눠 가졌으며 BAT의 점유율은 10% 미만이다. 기존 전자담배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BAT는 틈새시장인 합성니코틴 액상 전자담배로 눈을 돌려 활로를 찾고 있다. 합성니코틴 시장은 주요 담배기업들 대신 소규모 사업자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BAT 측은 올해 5월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합성니코틴 액상담배와 천연니코틴 액상담배에 서로 다른 법을 적용하는 국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다"며 “규제가 없는데 출시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합성니코틴 담배에 일반담배와 동일한 규정이 적용돼야 한다는 데 깊이 공감하며 합당한 규제 도입을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계기로 업계서는 합성니코틴을 담배에 포함해야 한다는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달 2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1차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논의됐다. 또 22대 국회에 합성니코틴 규제와 관련된 담배사업법 개정안만 10건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이달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뒤 후폭풍으로 정국이 마비되며, 이러한 논의들은 중단됐다. 이달로 예정됐던 ‘담배사업법 공청회’는 무기한 연기됐으며 법 개정은 사실상 내년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입법 공백이 길어질수록 BAT의 수혜도 연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규제가 계속되는 동안 BAT는 합성니코틴 시장의 '메기'가 돼 시장을 독식할 가능성이 크다. 또 향후 합성니코틴이 담배에 포함돼 세금이 부과되더라도, 영세한 소규모 사업자들보다는 대기업인 BAT가 가격과 제품력 면에서 경쟁력을 갖춰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권재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