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증권의 회사채 공모에 당초 목표액을 14배 이상 웃도는 2조원의 뭉칫돈이 몰렸다. 공교롭게도 삼성증권이 기관투자가 대상의 수요예측에 나선 당일은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을 받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무죄가 최종 확정된 날이기도 했다.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에 발목을 잡혀 발행어음을 내놓지 못했던 삼성증권이 비로소 신사업의 첫발을 뗄 수 있게 되면서 투자심리에도 불이 붙고 있다.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최근 총 3000억원 규모로 회사채를 발행했다. 신용등급 AA+에 만기구조는 3년물과 5년물로 나눠 진행됐고, 각각 2000억원과 1000억원으로 최종 확정 발행됐다. 대표주관은 △SK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이 맡았다.
최초 희망 모집액은 1500억원이었지만 수요예측에서 이를 크게 웃도는 2조1200억원의 주문이 확인되며 증액 발행됐다. 3년물에 1조1700억원, 5년물에 9500억원 등 대거 주문이 몰리면서 경쟁률은 각각 11.70대1과 19.00대1에 달했다.
뜨거웠던 반응 덕에 금리는 수익률을 크게 밑도는 언더발행이 됐다. 삼성증권은 3년물과 5년물 모두 민간채권평가사가 평가한 개별 민평금리에 ±30bp(1bp=0.01%p)를 가산한 기준 수익률을 제시했지만 각각 -10bp와 -13bp 조건으로 발행됐다.
삼성증권의 이번 회사채 발행은 이 회장의 무죄 판결과 맞물려 더욱 주목을 받았다. 삼성증권이 이달 17일 오전9시부터 오후4시30분까지 기관을 대상으로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한 가운데 같은 날 오전11시15분 대법원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 회장이 재판에 넘겨진 지 4년10개월 만이자 2심 선고 이후 5개월여 만에 나온 결론이었다. 법원은 이 회장이 안정적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각종 부정거래와 회계부정을 저질렀다는 검찰 측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 중 일부는 위법하게 수집됐고, 이 같은 물증도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있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등의 고등법원의 판단이 그대로 인정됐다.
이는 그룹 오너의 사법 리스크 해소라는 상징성을 넘어 삼성증권에는 실질적인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소식이었다. 삼성증권은 수년 전 초대형 투자은행(IB) 라이선스를 획득하고도 가장 큰 메리트인 발행어음 사업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이 회장의 유죄 가능성이 족쇄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은 이미 8년 전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등과 더불어 초대형 IB로 지정된 상태다. 초대형 IB는 적극적으로 모험자본을 공급할 수 있는 대형 금융사를 육성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추진한 정책으로,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인 증권사가 대상이다.
초대형 IB가 누릴 수 있는 최대 장점으로는 발행어음이 꼽힌다. 은행 같은 수신 기능이 없는 증권사에 새로운 자금조달 창구가 마련되는 셈이라서다.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초대형 IB는 자기자본의 200% 이내에서 만기 1년 이내의 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하지만 삼성증권은 다른 초대형 IB들과 달리 아직도 발행어음 사업 인가를 받지 못했다. 이 회장의 재판이 이어지면서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제기된 탓이었다. 자기자본 등 정량적 요건은 이미 충족한 지 오래였다.
그러나 이 회장의 무죄 확정으로 삼성증권에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증권은 이 회장이 2심 무죄 선고를 받은 뒤 발행어음 사업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이는 삼성증권에 대한 투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삼성증권의 발행어음 개시 가능성은 회사채 투자자들에게도 호재"라며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는 점도 반길 만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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