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장형진 소유 에이치디씨, 400억 추가 확보..지분 경쟁 자금줄?

해방 후 70년 동안 갈등없이 이어지던 영풍그룹에서 3세 경영 체제를 맞아 '전운'이 감돌고 있다. 두 가족은 지난 8월 한차례 지분 경쟁을 벌였다. 현재 소강 상태로 보이지만, 작은 변화도 계열분리를 추동할 '단초'가 될 수 있다. 과연 두 가문은 3세 경영 체제에서 '따로 또 같이' 갈 수 있을까.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왼쪽),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사진=각사)

고려아연은 '한지붕 두가문' 체제인 영풍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지난해 매출은 10조원에 육박했으며, 영업이익은 창사 후 처음으로 1조원을 넘었다. 영풍그룹 내에서 가장 알짜인 고려아연을 두고, 지난해 두 가문은 갈등에 휩쌓였다. 최창근 고려아연 회장을 필두로 한 '최씨 일가'가 지난 8월 한화그룹을 백기사로 앞세워 지분 경쟁을 벌였다는 관측이 나왔다.

지난 8월 한화임팩트의 미국 투자 회사인 'Hanwha H2 Energy USA Corp'는 고려아연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6.88%를 확보했다. 그러자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 등 '장씨 일가'는 계열사 코리아써키트와 에이치씨를 활용해 0.03%의 지분을 매입했다. 장씨 일가는 3년 만에 고려아연 지분을 늘렸다.

이후 두 달 가까이 두 가문은 고려아연의 지분을 직접적으로 추가 매입하지 않았다. 고려아연을 둘러싼 지분 경쟁은 소강 상태에 들어간 것일까. 재계에 따르면 최씨 일가와 장씨 일가와의 지분 경쟁은 이제 시작이다. 양측 모두 고려아연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실탄'을 준비하고, 우호 주주를 확보하기 위한 싸움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형진 영풍 회장, 본인 소유 회사에 400억 '무이자 대출'...고려아연 지분 매입 자금?

지난 4일 에이치씨는 이사회를 열고 장형진 회장으로부터 400억원을 차입했다. 차입 목적은 운영자금이며, 만기는 2032년 10월7일이다. 에이치씨는 장 회장으로부터 무이자로 400억원을 빌렸다. 10년 동안 무이자로 400억원을 빌릴 수 있었던 것은 에이치씨가 장 회장 본인 소유의 회사였기 때문이다.

에이치씨는 지난 1월 6일 설립된 회사로, 사업 목적은 △경영 컨설팅 △부동산 매매 △투자 자문 등이다. 에이치씨는 장 회장이 지분 100%를 갖고 있으며, 법인 이사로 장 회장이 등재돼 있다.

(자료=금융감독원)

시장은 에이치씨가 장 회장으로부터 400억원을 빌린 배경에 관심을 두고 있다. 에이치씨는 지난해 설립 후 유상증자와 차입, 주식 매입 등 수차례에 걸쳐 재무 활동을 해왔다. 컨설팅보다 투자자금을 확보해, 투자를 했다. 지난 8월 최씨 일가와 장씨 일가가 고려아연의 지분 확보 경쟁을 벌였을 당시 에이치씨는 고려아연 주식 800주를 매입했다. 장 회장이 직접 소유한 에이치씨가 '참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에이치씨의 이번 차입이 고려아연 지분 매입을 염두해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에이치씨는 지난해와 올해 2차례에 걸쳐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지난해 3월 15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했고, 장 회장이 참여했다. 에이치씨는 지난 7월 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는데, 이번에도 장 회장이 자금을 투입했다. 그리고 3달 후 장 회장은 에이치씨에 400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줬다. 장 회장이 2년 동안 에이치씨에 투자한 자금은 750억원에 달한다.

영업활동이 전무한 에이치씨가 계속 해서 자금을 확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5월 에이치씨가 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에이치씨의 자산총계는 367억원에 달한다. 이중 유동자산이 170억원, 비유동자산이 197억원으로 집계됐다. 유동자산은 ㈜영풍의 주식(3만90주)으로 추정되며, 비유동자산은 부동산일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차입한 400억원까지 합산하면 유동자산은 57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고려아연 주식 매입해 활용한다고 가정하면 9만4370주(0.5%)를 추가로 매입할 수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코리아써키트까지 활용하면 재원은 상당하다. 올해 2분기 기준 코리아써키트의 현금성자산은 3031억원에 달한다. 장씨 일가는 언제든 두 회사가 지분 경쟁에 나설 수 있게 '실탄'을 비축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장 회장이 고려아연 인수를 위해 에이치씨를 설립했다는 관측도 있다.

'최씨 가문'의 카드는...

장씨 일가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은 31.57%에 달한다. 고려아연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은 46.17%(8월30일 기준)에 달하는데, 절반 이상을 장씨 일가가 소유하고 있다. 장씨 일가가 보유한 지분이 최씨 일가(14.8%)보다 16.77% 포인트 가량 많다.

만약 고려아연의 자사주(6.3%)가 우호적인 투자자에 매각될 경우 의결권이 부활하며, 최씨 일가는 약 19%까지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한화임팩트 등의 우호 지분까지 합하면 최씨 일가의 고려아연 지분은 27.78%로 늘어난다. 양측의 지분 격차가 5% 미만으로 좁혀지는 것이다.

장씨 일가가 고려아연의 지분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씨 일가가 우호 주주를 추가로 활용할 경우 고려아연의 지분 경쟁이 삽시간에 불붙을 수 있다.

(자료=금융감독원)

최씨 일가의 우호주주로는 한화그룹이 있다. 재계에 따르면 최윤범 고려아연 부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오랜 기간 두터운 친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려아연은 한화임팩트의 해외 자회사로부터 투자를 받은 게 "재생에너지 및 친환경 에너지의 시너지 효과"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화의 투자로 장씨 일가의 지분은 낮아지고, 최씨 일가의 지분이 높아진 점을 볼 때 '사업적 협력' 이상의 목적이 있다는 관측이 많다.

고려아연은 최근 LG화학과 다양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 5월 고려아연 계열사 켐코와 LG화학이 양극재의 중간 소재인 전구체 합작사(한국전구체)를 설립했다. 황산니켈 제조사인 켐코는 2017년 설립됐다. LG화학은 켐코의 지분 10%를 갖고 있다. '전동화전환(electrification)'에 따라 2차전지 및 관련 소재 산업의 성장이 빨라지면서 두 회사의 협력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고려아연은 배터리용 원료인 니켈을 생산하고 있으며, 음극재 소재인 동박 생산을 준비 중이다. 고려아연은 폐배터리 리싸이클 분야에도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회수한 원료를 재가공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고려아연과 LG화학은 공고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까지 고려아연은 장씨 일가가 압도적인 지배력을 갖고 있지만, 향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고려아연은 과거 아연 등 비철금속 생산을 주로 해왔지만, 배터리 소재(니켈, 전구체, 동박) 분야로 밸류체인을 육성하고 있다. 이렇듯 3세인 최윤범 부회장 체제를 맞은 고려아연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장씨 일가는 고려아연의 이 같은 변화를 상당히 경계하는 분위기이다.

영풍그룹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을 둘러싼 갈등은 결과적으로 지분 싸움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결국 어떤 가문이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는지가 핵심이다. 현재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최씨 일가는 배터리 소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데, 장씨 일가의 경영 개입이 부담스러울 터. 장씨 일가 또한 그룹 내 최대 캐시카우인 고려아연이 최씨 일가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볼 수만은 없다.

두 가문은 70년 가까이 잡음없이 공동경영을 했지만, 3세 체제에서 고려아연의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실적 또한 개선돼 더욱 탐나는 계열사로 부상했다. 두 가문이 고려아연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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