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746] <라이스보이 슬립스> (Riceboy Sleeps, 2022)
글 : 양미르 에디터

1990년, '소영'(최승윤)은 유일한 가족, 아들 '동현'(황도현)을 데리고 모든 것이 낯선 캐나다로 떠난다.
아시아인이 거의 없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직장 내 성희롱'을 당차게 경고하던,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준 '소영'이지만, '동현'의 적응 문제로 인해 '소영'은 신경이 쓰인다.
'소영' 손에 이끌려 학교에 간 '동현'은 백인 중심의 아이들이 있는 교실 분위기가 낯설었고, 담임 교사도 '동현'을 어떻게 불러줘야 할지 고민한다.
학교에서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라고 권유하고, '동현'은 차라리 '마이클 조던'이 되겠다고 어리광을 부린다.
하지만 '소영'은 '마이클', 아니면 '조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서 '성'을 포기하는 것만은 막으려 한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동현'은 점심시간에 '소영'이 싸준 김밥 도시락을 이상한 음식인 듯 구경하고 놀리는 급우 때문에, 먹지도 못한 도시락을 모두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리고 집에 돌아온다.
'동현'은 한식으로 구성된 저녁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소영'에게 도시락을 다른 아이들이 먹는 음식으로 싸달라고 부탁한다.
쌀밥을 먹기 때문에 '라이스보이'라고 놀림을 당하고, 아마 그들로부터 배웠을 '눈 찢는 제스처'를 자신도 몰래 하던 '동현'은, '소영'으로부터 "두 유 노 '태권도'?"라면서 차라리 한 대 치라고 가르침을 받는다.
그런 가르침을 받은 '동현'은 자신을 놀리던 아이들을 때려 혼내주지만, 학교는 '동현'에게 정학 조치를 내린다.

학교의 호출을 받은 '소영'은 말도 안 되는 조치라면서, 같이 싸운 아이들은 징계받지 않는 것에 대해 인종차별적인 태도라고 지적한다.
이 모습들을 지켜보던 '동현'은 눈물을 흘리지만, '소영'은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운다면서 오히려 강인해지라고 말한다.
어리고 여린 '동현'이 상처받지는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이곳을 '집'으로 살아가야 하는 '동현'이 마주할 쉽지 않은 세상을, 함께 경험 중인 '소영'은 아이의 행복을 위해 더욱 단단해지려 애를 쓴다.
9년이 흐른 후, '동현'(이든 황)은 눈에 파란색 렌즈를 꼈고, 노란색 머리로 염색하면서, 자유분방한 사고방식과 개방적인 문화를 즐기는 10대 소년으로 성장한다.
하루는 교사가 내준 가계도를 그려오라는 숙제에, '동현'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아버지에 관해 묻는다.
이에 '소영'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로 인해 대답을 피하고, 아버지와 한국에 대한 '동현'의 궁금증은 커진다.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1986년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1994년 가족들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로 떠난 이민 2세 '앤소니 심'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감독 역시 '동현'처럼 수줍음이 많았던 인물로, 감독의 어머니는 수줍음을 극복해 내기 위해 고등학교 연극반 활동을 권유했다고.
스토리텔링에 대한 내면의 열정을 발견한 앤소니 심 감독은, 이후 수십 편의 영화, TV, 연극, 성우 더빙 일을 하면서 필모그래피를 넓혀갔다.

비중 있는 배역은 아니지만, <스타트렉 비욘드>(2016년)와 같은 블록버스터에도 출연했던 감독은, <도터>(2019년)라는 영화로 장편 연출을 마쳤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로 두 번째 장편 <라이스보이 슬립스>를 연출했다.
심지어 그는 이번 작품에서 '소영'에게 위로를 주는 연인 '사이먼'으로도 출연했는데, '사이먼'은 극에서 백인 가족 아래에서 자란 '입양아' 출신으로 설정됐다.
앤소니 심 감독은 "학교에서 나는 마치 외계인 같은 취급을 받았고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호기심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라면서, "백인이 주를 이뤘던 커뮤니티에서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심지어 생각하려고 노력했다"라고 밝혔다.
심지어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 문화, 심지어 가족까지 남들 앞에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했었다.
그것들을 잘 숨겨야만 주류 사람들이 자신을 다른 존재로 바라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
안소니 심 감독은 "그런데 놀랍게도, 그와 동시에 한국적인 것에 대한 깊은 감사함과 진실된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나를 괴롭게 만들었던 끝없는 호기심이 은밀하게 자라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성인이 된 감독은, 자신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야 '한국인'과 '캐나다인'이 충돌하는 문화 속에서 자란 노동자 계급, 이민자 부모의 산물인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정이삭의 <미나리>(2020년), 저스틴 전의 <푸른 호수>(2021년) 등 최근 '한국계' 감독들이 '한국계'의 다양한 삶을 담아내면서 영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것도, '두 가지가 섞인 인물'이 지닌 내면과 외면의 갈등을 탁월하게 묘사했기 때문이었다.
앤소니 심 감독은 "나는 완전한 한국인도, 캐나다인도 아닌 '한국계 캐나다인'이지만, '~계'라는 단어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라면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는, 독특한 우리만의 문화와 전통, 역사가 있다는 뜻"이라고 언급했다.
그렇게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북미뿐 아니라, 해외 여러 나라(한국도 대상이 될 수 있다)에서 '~계 사람'으로 비슷한 투쟁과 고통을 겪은 이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영화가 됐다.
2023/04/24 메가박스 더 부티크 목동현대백화점
- 감독
- 앤소니 심
- 출연
- 최승윤, 황이든, 황도현, 앤소니 심, 강인성, 헌터 딜런, 이용녀
- 평점
-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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