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연패 도전’의 꿈은 멀어졌다. 배드민턴 세계랭킹 1위 안세영이 또 한 번 '난적' 천위페이의 벽에 막히며 세계선수권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지난 2023년 대회에서 한국 단식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선수권을 제패했던 안세영은 올해 다시 한 번 정상에 도전했지만, 그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8월 3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아디다스 아레나. 2025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세계개인선수권대회 여자 단식 4강전이 열렸다. 상대는 천위페이. 중국을 대표하는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랭킹 4위, 그리고 무엇보다 안세영과의 통산 전적에서 13승13패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던 '숙적'이었다.
경기 초반부터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1게임은 사실상 천위페이의 페이스였다. 안세영이 첫 포인트를 따내며 기세를 올렸지만, 곧바로 흐름은 천위페이에게 넘어갔다. 강한 공격과 노련한 수비, 절묘한 타이밍의 템포 변화로 안세영을 끊임없이 흔들었다. 안세영은 긴 랠리에서 체력을 끌어올렸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실책과 허를 찌르는 공격에 점수를 내주며 15-21로 1세트를 내줬다.

2세트는 의외의 변수가 등장했다. 안세영이 5-3으로 앞서가던 중, 천위페이가 볼을 처리하다 발목을 접지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경기는 일시 중단됐고, 천위페이는 치료 후 코트에 복귀했다. 누가 봐도 컨디션이 온전하지 않은 상황. 그러나 그 뒤는 놀라웠다. 천위페이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부상을 투혼으로 끌어안고 경기 흐름을 자신 쪽으로 가져왔다. 7-10에서 11-11 동점을 만들더니, 이후엔 날카로운 스트로크와 각도를 활용한 셔틀콕 운영으로 안세영을 밀어붙였다. 결국 2세트도 17-21로 내주며 안세영의 도전은 여기서 멈췄다.
안세영은 이번 대회 64강부터 8강까지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으며 무결점 경기를 펼쳤다. 대표팀 동료인 심유진을 2-0(21-10, 21-6)으로 꺾는 등 기세가 하늘을 찔렀지만, 천위페이 앞에서는 그 기세가 꺾였다. 특히 5월 싱가포르 오픈에서 당한 유일한 패배의 기억이 남아있던 상대였기에 설욕의 의지도 강했지만, 이번엔 천위페이의 집념이 더 강했다.

천위페이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발목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며 투혼을 드러냈다. 천위페이는 결승에서 또 다른 '안세영의 숙적' 야마구치 아카네와 맞붙게 됐다. 일본의 야마구치는 2021~2022년 세계선수권 2연패에 빛나는 강자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과를 단순한 패배로 보지 않는다. 스포츠심리학자 이재훈 박사는 "천위페이의 부상 이후 안세영이 오히려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듯한 모습이 있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멘탈 측면에서 과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배드민턴 해설위원인 김성현 전 국가대표 코치는 "안세영이 주도권을 잡은 상황에서 공격 전개가 다소 단조로웠다. 천위페이의 발을 묶을 수 있는 다양한 코스 공략이 아쉬웠다"며 전략적인 유연성 부족을 지적했다.

하지만 안세영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23세. 세계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고, 이미 세계 최정상급 선수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번 패배는 분명 아쉽지만, 동시에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이번 대회를 통해 천위페이라는 '고비'를 다시 한 번 체감한 만큼, 향후 두 선수의 맞대결은 더욱 흥미진진해질 전망이다.
국내 팬들도 안세영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아끼지 않고 있다. SNS와 포털 댓글엔 "졌지만 잘 싸웠다", "이번엔 졌지만 다음엔 꼭 이기길", "투혼도, 실력도 최고다" 등의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 승부는 냉정했지만, 팬들의 마음은 여전히 안세영의 편이다.

안세영은 2025 시즌 초반 슈퍼 1000급 대회들을 석권하며 시즌 6승을 거둔 바 있다. 인도네시아 오픈에서 왕즈이(중국)를 상대로 2-1 역전승을 거두며 4년 만에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탄탄한 성적이 쌓였기에 이번 패배가 더욱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패배를 통해 더 강해지는 선수도 있다. 안세영은 그런 유형에 속하는 선수다. 세계는 지금 그녀가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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