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 인사이드] 솔루스첨단소재, 동박과 '헤어질 결심'...선택과 집중

솔루스첨단소재 분당사옥 /사진 제공=솔루스첨단소재

솔루스첨단소재가 인공지능(AI) 반도체 가속기 수요 확대로 호황을 누리던 동박(회로박)사업부를 매각했다. 회사는 전지박 사업의 투자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 차원의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글로벌 특허분쟁, 적자누적, 해외법인 투자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대주주에 '3014억' 받고 매각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솔루스첨단소재는 최근 자회사 볼타에너지솔루션이 보유한 서킷포일룩셈부르크(CFL) 지분 100%를 처분했다. 인수자는 솔루스첨단소재의 최대주주인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지분율 41.06%)가 운영하는 펀드이며 거래금액은 3014억원이다.

CFL은 1996년 배터리용 동박을 최초로 개발한 룩셈부르크 소재 기업이다. 2014년 두산전자에 인수된 후 2020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가 솔루스첨단소재를 인수하면서 소속이 변경됐다.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는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세운 사모펀드다.

회사는 사업부문 효율화와 전지박 투자재원 확보를 위해 매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매각절차는 지난달 28일 마무리됐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SK넥실리스 등 국내 경쟁업체들은 인수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배터리 시장 위축에도 동박은 '귀한 몸'이 됐다. AI 데이터센터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 확대로 고성능 인쇄회로기판(PCB)의 핵심 소재인 동박적층판(CCL) 공급난이 심화되면서다. CCL은 절연판 위에 얇은 동박을 입힌 소재로 AI서버·데이터센터·자율주행·고성능반도체 기판의 핵심 부품이다. 일부 PCB 업체들은 평소 사용량의 수배에 달하는 CCL 물량을 선발주하고 있으며 납기를 맞추기 위해 항공운송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3월 CCL 수입단가는 t당 2만728달러로 사상 처음으로 2만달러를 돌파했다. 전년동기 대비 74.5% 급등한 액수다. 고사양 AI 반도체용 PCB 수요가 폭증하면서 CCL 업체들이 한정된 생산라인을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재편한 영향이다.

솔루스첨단소재도 혜택을 누렸다. 회사는 지난해 사업보고서에서 'AI 시장 확대에 따른 동박사업부의 고부가 제품 판매 증가가 매출 성장을 견인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매출은 6161억원으로 전년 대비 7.9% 증가했다. 이 중 동박사업부의 매출은 3065억원으로 56.2% 급증했다.

솔루스첨단소재 관계자는 "동박이 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고 기업가치도 높게 평가될 수 있는 적기에 매각이 이뤄졌다고 본다"며 "확보한 재원은 전지박 사업에 투입해 사업 간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송·적자·CAPEX 부담…매각 불가피

솔루스첨단소재이 CFL을 매각한 배경에는 실적부진이 있다. 회사는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연간 영업손실 규모는 △2022년 497억원 △2023년 732억원 △2024년 544억원 △지난해 733억원 등이다. 순손실은 지난해 1384억원으로 확대됐다.

적자의 주된 원인은 전지박 사업의 부진이다.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지박 사업은 글로벌 전기자동차 수요 둔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의 전기차 세액공제 축소와 배터리 업체들의 재고조정 등이 겹치면서 고객사 가동률이 하락했고, 이는 곧 전지박 출하 감소와 고정비 부담 확대로 이어졌다.

지난해 전지박 사업의 매출은 1837억원으로 전년 대비 26% 감소했다. 그러나 외형이 축소된 상황에서도 헝가리·캐나다 생산거점 구축을 위한 대규모 설비투자(CAPEX)는 지속했다. 회사의 지난해 연결기준 CAPEX 액수는 2335억원으로 3년 연속 2000억원대를 기록했다.

회사의 사업구조도 영향을 미쳤다. 사업부문은 매각 이전에 전지박·동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첨단소재로 구성됐다. 이 중 동박은 슈퍼사이클 초입에 진입했지만 전지박은 고객사 재고조정의 영향으로 현금흐름을 잠식했다. 이에 회사는 현재 수익성과 미래 투자 사이에서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SK넥실리스와의 글로벌 특허·영업비밀 소송전도 진행되고 있다. 양사는 현재 한국과 미국, 유럽에서 다수의 소송을 벌이고 있다. 2023년 SK넥실리스가 미국 텍사스 동부연방법원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한 후 양측은 국내와 해외에서 맞소송을 이어가며 분쟁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유럽 통합특허법원(UPC)과 미국 법원에서 영업비밀 침해 이슈로 소송 규모가 확대됐다. 동박처럼 제조공정 특허 비중이 높은 산업은 기술검증 기간이 길고 패소할 경우 생산·판매 제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솔루스첨단소재는 해외 대형로펌을 선임하며 소송 대응 비용을 지속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통상 특허 소송은 장기전이라 부담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국내 특허심판원에서 솔루스 측의 특허 일부가 무효 판정을 받은 것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이번 거래를 리스크 격리 차원으로도 해석한다. 동박 사업을 사모펀드 체제로 옮겨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법적·재무적 충격을 일정 부분 완화하려 했다는 해석이다.

운영자금 지원·채무보증 단행

이번 딜은 일진머티리얼즈 사례와도 비교된다. 동박 사업을 하는 일진머티리얼즈는 재무 압박으로 2022년 경영권 지분을 2조7000억원에 롯데케미칼에 매각했다. 이에 대해 대규모 CAPEX 부담을 독자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일진머티리얼즈는 매각 이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로 사명을 변경했다.

솔루스첨단소재는 수익성이 좋은 동박 사업만 떼어내 최대주주 측 펀드에 넘기는 방식을 택했다. 외부 자금 조달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대규모 유상증자 대신 자산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면서도 지배력 희석은 최소화했다.

매각대금 중 일부는 해외 생산거점 운영자금에 투입됐다. 회사는 헝가리에 위치한 전지박 생산법인 '볼타에너지솔루션헝가리 Kft(VESH)'에 398억원의 현금출자를 결정했다. VESH의 지난해 매출은 2748억원, 당기순손실은 399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480억원), 2024년(-185억원)에 이어 적자가 누적돼 가동률 정상화 이전까지 운영자금 공급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채무 부담도 상당하다. 솔루스첨단소재의 채무보증 총액은 지난달 말 기준 1조2080억원으로 자기자본(9456억원)의 127.7%에 달한다. 특히 VESH와 캐나다법인(VESC)에 보증이 집중돼 있으며, 캐나다법인 관련 보증 규모만 6000억원에 달한다.

매각 이후 회사는 VESH의 ING은행 차입금 345억원에 대한 만기연장과 지급보증을 결정했다. 해외법인의 운영자금 지원과 차입 보증을 이용한 책임경영 차원의 결정으로 풀이된다.

솔루스첨단소재 관계자는 "경쟁사만큼 자본여력이 충분하지 않아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며 "헝가리 공장은 유럽 내 유일한 전지박 양산 레퍼런스를 보유하고 있고, 고객사 포트폴리오를 지난해 4곳 추가해 총 8곳까지 늘리는 등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지박 사업 흑자전환 가능할까

회사로서는 전지박 사업 반등이 절실하다. 동박 사업을 매각해 단기 현금을 확보했지만 안정적인 현금창출원은 포기한 만큼 전지박 사업의 실적개선 여부가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솔루스첨단소재는 올해를 고객사 수요 회복과 신규 고객사 공급이 동시에 가시화되는 원년으로 삼았다. 회사는 전기차 중심이던 전지박 수요처를 에너지저장장치(ESS)와 휴머노이드로봇 등으로 다변화할 계획이다.

회사는 2분기부터 전지박 출하량이 월평균 1000t을 넘어서고 하반기에는 2000t까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북미 ESS 시장 확대를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증가하며 ESS 설치 주문도 빠르게 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OLED 소재 사업 역시 수익성을 방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회사는 신규 공장 증설로 OLED 소재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 사업은 10% 중반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향후 관전 포인트로는 △헝가리법인 상각전영업이익(EBITDA) 흑자전환 여부 △북미 ESS용 공급 확대 속도 △SK넥실리스와의 소송 리스크 추이 △캐나다 공장 가동 정상화 여부 등이 꼽힌다.

투자 업계 관계자는 "솔루스첨단소재의 이번 딜은 생존을 위해 시간을 산 것에 가깝다"며 "전지박 사업이 예상대로 올라오지 못하면 이번 매각은 구조조정으로 간주되겠지만, 북미 ESS 시장이 본격 성장하면 선제적인 체질개선으로 재평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솔루스첨단소재 관계자는 "유럽 현지에 양산 안정성을 갖춘 전지박 공장을 운영하는 곳은 자사가 유일하며, 캐나다 공장도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며 "동박 매각으로 확보한 재원은 유럽과 북미 생산거점의 대응력을 높이는 데 투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종원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