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웰메이드 디스크 플레이어가 필요하다 - Metronome AQWO SACD Player & DAC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지난 2020년의 끝자락, 풀레인지 시청실에서 SACD/CD 플레이어를 하나 만났다. 프랑스 메트로놈(Metronome)의 AQWO다. ‘에이큐더블유오’로 읽어야 하나, ‘아큐워’로 읽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나중에 찾아보니, 이는 ‘듣는다’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akouo’에서 따왔다), 메트로놈 최초의 SACD 플레이어라고 해서 기대가 컸다. 더욱이 메트로놈이면 별도의 하이엔드 자매사 칼리스타(Kalista)를 거느린 곳이 아닌가.
메트로놈과 AQWO
메트로놈(Metronome Technology)은 1987년에 설립돼 주로 CD 플레이어와 DAC, 디지털 스트리머를 생산해오고 있는 프랑스 제작사다. 지난 2017년 창립 30주년을 맞아 30조 한정으로 내놓은 1억원짜리 CDT 드림플레이CD(DreamPlay CD)와 DAC 칼리스타 DAC(Kalista DAC) 세트가 순식간에 동이 났을 정도로 CD 재생에 관한 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메트로놈은 좀 더 접근가능한 가격대 제품을 생산하는 메트로놈 오디오(Metronome Audio)와 하이엔드 제품 위주의 칼리스타 오디오(Kalista Audio)로 나눠져 있다.
메트로놈 오디오의 제품 라인업을 보면, 크게 Classica 라인, DS 라인, 그리고 AQWO 라인으로 구분된다. 클래시카(Classica) 라인은 말 그대로 메트로놈의 터줏대감 같은 제품들이 포진했다. 엔트리 CD플레이어 겸 DAC로 Le Player 2S, CD트랜스포트로 Le Player 3, DAC로 Le DAC이 마련됐다. 지난 2012년에 출시돼 메트로놈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던 CD 플레이어 겸 DAC CD8S는 단종됐다. 필자의 경우 지난 2018년에 CD8S를 리뷰했었는데, 톱 로딩 방식의 트랜스포트에 CD를 올려놓자 그야말로 웬만한 CD플레이어나 DAC은 따라갈 수 없는 음이 나와 깜짝 놀랐다.
DS(Digital Sharing) 라인은 룬 레디(Roon Ready) 인증을 받은 DLNA 기반 유무선 네트워크 플레이어 DSC, 여기에서 DAC 파트를 생략한 순수 트랜스포트 DSS로 구성됐다. 그리고 마지막 AQWO는 메트로놈의 플래그십 라인으로 이번 시청기인 SACD 플레이어 겸 DAC AQWO, 트랜스포트 t|AQWO, DAC c|AQWO로 짜였다. 트랜스포트와 DAC 모델은 별도 리니어 전원부 일렉트라(Elektra PSU)와 쌍을 이룬다. 일체형 AQWO는 내부에 리니어 전원부가 들어가 있다.
한편 필자는 지난 2018년 3월 한국을 찾은 메트로놈 CEO 장 마리 크로젤(Jean Marie Clauzel)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 때 3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AQWO가 당초 CD8S의 후계기이면서 SACD를 플레이할 수 있는 제품으로 일찌감치 기획됐다는 것. 둘째, 메트로놈이 DAC 파트에 유독 AKM DAC 칩만을 쓰는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 셋째, 일부 애호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는 톱 로딩 방식과 트레이 방식에는 음질적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당시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올해(2018년) 5월 뮌헨오디오쇼에서 메트로놈 최초의 SACD 플레이어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모델명은 CD9으로 정했는데요, 회사 내부에서도 기대가 큽니다. DAC 파트 역시 DSD의 경우 최대 DSD512까지 지원합니다(당시 CD8S는 DSD256까지만 지원).”
“20년 전 메트로놈에서 처음 DAC을 개발했을 때부터 AKM 제품을 썼습니다. 이 칩이 가장 아날로그적인 사운드를 들려줬기 때문이죠. 이후 동일한 사운드를 유지하고 아날로그 사운드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AKM 제품만 쓰고 있습니다.”
“일부 애호가들이 톱 로딩 방식이 트레이 방식에 비해 음질이 더 좋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기계적인 차이밖에 없어요. 다만 저희 상위 모델이 처음부터 톱 로딩 방식을 채택해 계속 이 방식을 유지해오고 있을 뿐입니다.”
AQWO 본격 탐구
AQWO는 기본적으로 SACD와 CD를 재생할 수 있는 톱 로딩 방식의 디스크 플레이어이자, PCM은 32비트/384kHz까지, DSD는 DSD512까지 컨버팅할 수 있는 DAC이다. 픽업 메커니즘은 일본 D&M 홀딩스 제품을 커스텀했으며, DAC 파트는 일본 아사히카세이(AKM)의 AK4497 칩을 채널당 1개씩 썼다. 전원부는 토로이달 트랜스를 포함한 리니어 구성이며, 출력단은 기본 솔리드 버퍼단 외에 옵션으로 진공관 버퍼단을 추가할 수 있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우선 외관. 이렇게 보는 눈맛이 좋은 디스크 플레이어가 얼마만의 일인가 싶을 만큼 크고 매끈하게 잘 빠졌다. 가로폭이 425mm, 높이가 130mm에 달하는 풀 사이즈 플레이어다. 전면 알루미늄 패널 두께는 20mm, 무게는 15kg에 달한다. 6.5인치 디스플레이는 터치 스크린. 플레이와 멈춤, 빨리 감기, 되감기 등은 물론 입력선택까지 터치로 할 수 있다. 상판에는 톱 로딩 방식의 픽업 메커니즘이 장착됐는데, 커버를 뒤로 밀고 CD나 SACD를 올려놓은 다음, 자석식 델린(Delrin) 클램프로 단단하게 고정해주면 된다.
후면 역시 근사하다. 그레이 패널 위에 수놓은 짙은 하늘색 글자들이 묘하게 매력적이다. 이것이 소위 프랑스 감성인가 싶다. 어쨌든, 디지털 입력단은 AES/EBU 2개, 동축 2개, 광 2개, USB-B 1개가 마련됐다. 디지털 출력단(AES/EBU, 동축, 광)가 있어서 더 좋은 DAC과 연결할 수도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SACD I2S라고 표시된 HDMI 단자. SACD를 DSD 신호로 외부에 디지털 출력할 수 있다. 아날로그 출력단자는 XLR 1조, RCA 1조가 마련됐다.
내부를 보면, 전면에 3점 지지의 커다란 디스크 트랜스포트가 있고 오른쪽에 리니어 전원부, 왼쪽에 DSP 및 DAC 파트와 아날로그 버퍼단이 마련됐다. 전원부의 경우 기본은 4개의 토로이달 트랜스와 정류단, 평활단, 레귤레이터 구성이지만, 옵션으로 진공관 버퍼단을 추가하면 2개의 토로이달 트랜스와 기타 파워서플라이가 2층으로 쌓인다. 솔리드와 진공관 회로 모두 클래스A로 작동한다.
트랜스포머로 커플링되는 진공관 버퍼단은 3극관 6922을 채널당 1개씩 쓰는 것이 핵심인데, 이 진공관은 메트로놈이 옵션 아날로그 출력보드에 즐겨 투입해왔다.
“6922은 진공관이지만 진공관 특유의 벙벙거리는 소리가 없습니다. 아주 중립적인 소리를 내어주는, 그야말로 완벽한 진공관이죠. 커플링 트랜스포머는 룬달 제품을 쓰는데, 6922 진공관과 매칭이 매우 좋아 선택했습니다.“(장 마리 클로젤)
DAC 칩은 AKM 벨벳(Velvet) 시리즈의 4세대 모델인 베리타(Verita) AK4497을 썼다. 메트로놈이 2017년에 선보인 네트워크 플레이어 DSC1에도 투입된 바로 그 칩이다. 32비트/768kHz, DSD512 사양의 이 칩은 2019년 말까지 AKM의 플래그십 DAC 칩이었으나 이후 베리타 AK4499에 바통을 넘겼다. 참고로, CD8S에서는 32비트/768kHz, DSD256 사양의 이전 모델 AK4490EQ 칩을 썼었다. 한편 USB 수신칩은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XMOS 대신에 아마네로(Amanero) 칩을 썼다.
시청
풀레인지 시청실에서 진행된 AQWO 시청에는 오디아플라이트의 인티앰프 FLS10과 베리티오디오의 레오노레(Leonore) 스피커를 동원했다. 또한 AQWO의 USB 입력 및 DAC 성능을 알아보기 위해 오렌더의 네트워크 뮤직서버 A30로부터 스트리밍 음원을 USB로 출력, AQWO로 들어봤다.
처음 음이 치고 나가는 기세부터가 남다르다. 이것이 바로 피지컬 미디어가 갖고 있는 다이내믹스라는 것이다. 여기에 정숙도는 놀랍고, 픽업 메커니즘과 AK4497 칩이 함께 한 해상력은 거의 극강의 수준. 그야말로 음의 윤곽선에서 일체의 색번짐이 없다. 배경은 블랙, 음은 스프링 그 자체. 전체적으로 선명하고 깨끗하며 색채감이 좋은 음이 계속된다. 트럼펫의 고음은 기분이 상쾌할 정도로 잘 뻗는다. 확실히 미국 ESS 칩과는 다른 성향의 AKM 칩이다. 좀 더 정신이 번쩍 나는 음이랄까, 보컬에 좀 더 카랑카랑한 맛이 깃들어있다고나 할까. 어쨌든 음영대비가 확연하고 다이내믹 레인지가 널은 음을 만끽했다. 음끝이 지저분하지 않고 시종 단단하게 느껴진 점, 작고 여린 음이 어디에도 묻히지 않고 활개를 피고 다닌 점도 좋았다.
오케스트라 대편성곡을 만나서도 당황하지 않고 ‘팍’ 음을 뿌려준다. 미세한 음들이 오히려 잘 부각되고 있는 것은 배경이 워낙 칠흑이고 SN비가 높기 때문이다. 무대는 뿌연 기색이 전혀 없이 깨끗하고 투명한 것이 마치 비 내린 다음날 먼 산 풍경을 바라보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음들 하나하나는 묵직한 상황. 또 하나 놀란 것은 무대에 등장한 금관악기들의 위치. ‘이렇게나 높은 곳에 있었나?’ 싶을 만큼 이미지의 높낮이 구현이 장난이 아니다. 해당 정보에 대한 손실이 그만큼 적다는 반증이다. 입자감이 아주 고운, SACD의 매력이 철철 넘친 재생이었다. 모터 회전의 매끄러움, 인터페이스의 고급스러움, 내장 DAC의 타고난 성능 등 디스크 플레이어로는 거의 끝판왕이지 싶다.
과연 DAC으로서 성능은 어떨까. 타이달에서 고른 ‘오스칼립소’를 들어보면, 소릿결은 CD 재생 때와 비슷하지만 상대적으로 정숙한 맛에서 디스크 재생에 밀린다. 묵직한 맛도 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럼 림 플레이의 선명한 음과 트럼본의 미끈한 감촉, 베이스와 피아노의 계속되는 존재감 등에는 크게 감탄했다. 여기에 무대감과 공기감까지 놓치는 부분이 거의 없다. 특히 트럼본과 색소폰의 음색 구분이 싱거울 정도로 잘 이뤄지는 것을 보면 AQWO의 배음 정보 처리능력은 최상위권이라 할 만하다. SN비가 무척 높고 음이 단단하며 색번짐이 사라진 점이 계속해서 포착되는 AQWO의 사운드 시그니처다. 악기들 말고는 그 어떤 잡내나 잡소리가 없다. 드럼 솔로 대목에서는 스피커에 실제 드럼이 처박혀 있는 것 같았다.
음원을 계속해서 들을수록, USB 입력으로 들은 스트리밍 음원과 픽업 메커니즘을 이용해 들은 디스크 음원의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어진다. 어느 것이 주전이고 어느 것이 후보인지 도저히 나눌 수가 없다. 그냥 투 트랙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어느 경우든 평소 접하던 디스크 플레이어나 웬만한 단품 DAC의 재생음에 비해서는 그 수준이 몇 곱절 위라는 것. 이 곡에서도 평소보다 합창단원 수가 대폭 늘어났고 성부마저 보다 다채로워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요즘 테스트 음원으로 자주 듣는 스팅의 ‘Shape of My Heart’에서는 초반 무대에 울려펴지는 기타 현의 생생한 질감에 소름이 돋았다. 그야말로 정신이 번쩍 날 만큼의 생동감 만점의 음이다.
총평
AQWO처럼 웰메이드 디스크 플레이어를 듣다보면, 아무리 세상이 스트리밍 음원이 대세가 되었어도 15g짜리 디스크의 유효기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음의 무게감이나 배경의 정숙감에서 몇 걸음 앞서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에 들었던 CD8S도 어디 빠지지 않을 재생음을 들려줬는데, 이번에 들은 AQWO는 업그레이드된 DAC 칩 덕분인지 음들을 보다 타이트하게 조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가성비를 생각하면 비록 단종이 되긴 했지만 CD8S도 무척 탐이 나는 플레이어다.
메트로놈 홈페이지에 보면 ‘Le Son Vrai’(르 송 브레), 즉 ‘진짜 소리’라는 슬로건이 늘 따라 붙는다. 장 마리 클로제씨 표현을 빌리자면, 그 ‘진짜 소리’는 ‘LP 재생 때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아날로그적인 사운드’이자 ‘선명하고 탁 트였고 섬세한 사운드’다. 어쩌면 이번에 들은 AQWO가 메트로놈이 추구하는 르 송 브레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인지 모른다. 오디오 마니아보다는 많은 CD와 SACD를 컬렉션해놓은 음악 애호가들이 더욱 반가워할 제품이다. 진지한 청음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