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 IP 품은 레진스낵, 'K-숏드라마' 도전장 [인터뷰]

이달 10일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키다리스튜디오 사옥에서 만난 허흥범 레진엔터테인먼트 겸 키다리스튜디오 대표/사진 제공=키다리스튜디오

콘텐츠 소비의 ‘호흡’이 달라지고 있다. TV와 OTT가 주도하던 롱폼(Long-form) 중심 구조에서 모바일 기반 숏폼(Short-form)이 빠르게 일상화되고 있다. 북미 숏드라마 앱 매출은 분기당 5000억원에 육박하고, 중국 숏드라마 시장은 2024년 기준 10조원 규모를 돌파했다.

이 흐름 속에서 레진엔터테인먼트가 숏드라마 전문 플랫폼 ‘레진스낵(Lezhin Snack)’을 공식 론칭하며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단순한 신규 서비스가 아니다. 3만여 개 웹툰 지식재산권(IP), 글로벌 7000만 누적 가입자, 10년간 축적한 결제 데이터와 팬덤 분석 역량을 결합해 ‘K-숏드라마’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트렌드가 바뀌었다”…10년 데이터로 IP 선별

레진이 숏드라마 시장에 진입한 배경에는 콘텐츠 소비 패턴의 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있다.

이달 10일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키다리스튜디오 사옥에서 만난 허흥범 레진엔터테인먼트 겸 키다리스튜디오 대표는 “콘텐츠 트렌드가 롱폼에서 숏폼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느꼈다”며 “웹툰 시장 역시 지난해 다소 둔화 흐름을 보였는데 소비 축이 '숏폼'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말했다.

레진은 레진코믹스와 봄툰을 통해 3만여 개 IP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일본 등 8개 언어, 10개 플랫폼을 운영하며 누적 가입자 7000만명을 확보했다. 북미 플랫폼 ‘레진US’는 누적 가입자 2400만명을 기록했고, 2024년 결제액 200억원을 넘긴 데 이어 2025년에는 25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일본 여성향 특화 플랫폼 ‘벨툰JP’는 2025년 결제액 80억원을 돌파했다.

이 같은 글로벌 팬덤 기반은 숏드라마 IP 선별의 핵심 토대가 된다. 레진은 단순 조회수가 아니라 이용자가 어느 지점에서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결제를 결심하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숏드라마화 적합 작품을 가려낸다.

허 대표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선별한다”며 “팬덤의 크기와 충성도를 기반으로 숏드라마 포맷에 최적화된 IP를 추린다”고 밝혔다.

이어 정재욱 영상콘텐츠사업본부장은 “다양한 장르를 먼저 시도하고 반응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확장성을 실험하고 있다”며 “로맨스, 미스터리, 학원물, BL·GL 등 다채로운 장르를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숏드라마는 1~2분 내외의 초단편 형식이다. 기존 10~15분 분량의 웹드라마가 ‘미드폼’에 가깝다면 숏드라마는 호흡 자체가 다르다. 레진은 원작의 핵심 감정선을 유지하되 숏폼에 맞게 재구성해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레진스낵은 이달 4일 한국과 미국, 일본 3개국에서 동시에 서비스를 시작했다./사진 제공=키다리스튜디오

제작부터 플랫폼까지...'K-서사' 담는다

레진스낵 출시는 단순한 플랫폼 확장에 그치지 않는다. 제작과 유통을 한 축으로 묶는 수직 구조에 가깝다. 레진의 모회사인 키다리스튜디오가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이 같은 ‘IP 밸류체인’ 전략의 연장선이다.

키다리스튜디오는 그간 영화 투자·배급과 콘텐츠 제작을 통해 경험을 축적해왔다. 이번 숏드라마 프로젝트에도 직접 제작사로 참여했다. 허 대표는 “IP 홀더로서 원작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며 “제작 과정에 전략적으로 관여해 원작 훼손 리스크를 줄이고 완성도를 통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정재욱 영상콘텐츠사업본부장은 “중국 숏드라마를 처음 접했을 때 자극적이고 반복적인 구조가 많았다”며 “그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K-콘텐츠 특유의 서사와 연출을 담은 ‘우리만의 숏드라마’를 만들자는 것이 출발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제작진 라인업도 눈길을 끈다. 영화 ‘극한직업’,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이병헌 감독을 비롯해 K-콘텐츠를 대표하는 감독들이 참여했다. 론칭과 함께 공개되는 오리지널 작품 ‘애 아빠는 남사친’과 레진코믹스 인기 IP 기반의 ‘남고소년’이 대표작이다.

레거시 미디어 환경이 위축된 상황에서 숏드라마는 제작자에게 또 다른 실험 무대가 되고 있다. 영화 한 편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1~2년이 걸리는 구조와 달리, 숏드라마는 제작 리드타임이 짧아 시장 반응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정 본부장은 “기성 감독과 신예 인력이 함께 참여해 새로운 제작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며 “숏드라마가 단순히 가벼운 콘텐츠가 아니라 밀도 있는 서사를 담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레진스낵은 월 구독 기반 모델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플랫폼과 제작을 동시에 보유한 구조를 통해 콘텐츠 투자 회수 속도를 높이고, 흥행이 검증된 IP를 다시 중대형 콘텐츠로 확장해 2차 수익을 창출하는 전략이다. 단기 조회수 경쟁이 아니라 IP의 장기 가치 축적에 방점을 찍겠다는 설명이다.

(왼쪽부터) 손국환 IP커머스사업본부장, 허흥범 대표이사, 정재욱 영상콘텐츠사업본부장 등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키다리스튜디오

한·미·일 동시 출격…‘IP 밸류체인’ 전초기지

레진스낵은 이달 4일 한국, 미국, 일본에서 동시 출시됐다. 웹툰 플랫폼으로 이미 경쟁력을 입증한 1티어 시장을 우선 공략했다는 전략이다. 향후 1~2년 내 글로벌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손국환 IP커머스사업본부장은 “웹툰이 10년간 약 20배 성장했다면, 숏드라마 시장은 그보다 더 큰 잠재력을 지닌 분야”라며 “웹툰과 숏드라마는 포맷이 다를 뿐 본질적으로 같은 IP 비즈니스”라고 말했다.

레진이 그리는 구조는 명확하다. 웹툰으로 팬덤을 형성하고, 숏드라마로 IP의 시장성을 빠르게 검증한 뒤 이를 다시 중대형 드라마·애니메이션·게임 등으로 확장하는 ‘글로벌 IP 밸류체인’이다. 레진스낵은 이 선순환 구조의 전초기지 역할을 맡는다.

회사는 숏드라마 사업을 단순한 신사업이 아닌 산업 전환 프로젝트로도 바라보고 있다. 손 본부장은 “숏드라마는 투자 규모가 크고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사업”이라며 “웹툰 역시 5년 이상 적자를 감내하며 글로벌 확장을 이뤘다. 숏드라마도 시간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레진스낵은 ‘볼수록 맛있는 숏드라마’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접근은 가볍지만 즐길수록 깊이가 느껴지는 콘텐츠를 지향한다는 의미다.

허 대표는 “웹툰이 10년 전 새로운 산업이었던 것처럼 숏드라마도 지금 그 지점에 와 있다고 본다”며 “레진스낵을 통해 원천 IP의 가치를 확장하고 K-콘텐츠의 다음 성장 축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최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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