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위스키 5
안녕, 위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져 즐거운 글렌이다. 나이 많은 아저씨들의 술이라는 인식이 엷어지고 젊은 세대의 사랑을 받으며 국내 위스키 시장은 최근 몇 년 새 크게 성장했다. 국내에서 고급 위스키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발렌타인 모델이 정우성, 이정재에서 작년 주지훈과 민호로 바뀐 것만 봐도 위스키를 즐기는 이들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더 다양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인기가 높아진 만큼 수입되는 위스키의 종류는 더 다양해졌다. 위스키 전문 몰트바가 많아졌고, 무엇보다 취미를 나눌 사람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만큼 가격이 오르고, 비싼 가격을 감수하더라도 구매가 도통 어려워진 위스키들도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나는 원주민의 심정을 체감하는 요즘이다.
위스키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오픈런을 해야 살 수 있는 위스키도 생겼다. ‘언제 어디에 무슨 위스키가 입고된다’는 공지가 SNS에 뜨면 가게가 문을 열기도 전에 줄이 길게 늘어선다. 심지어는 전날, 전전날부터 대기자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시계나 명품 브랜드에서 보던 일이 위스키의 세계에서 벌어진다. 도대체 어떤 위스키길래 사람들이 오픈런까지 하는 걸까? 요새 가장 핫하다 할 수 있는 ‘오픈런 유발 위스키’ 5종을 알아보자.
[1]
이제는 명품이 되어버린 그 이름, 맥캘란
오픈런 유발 대표 주자로 이 위스키를 빼놓을 수 없다. 현시점 세계 위스키 시장에서 가장 인기 많은 맥캘란이다.
맥캘란의 인기는 가격이 증명한다. 2019년 위스키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던 맥캘란 한 병의 가격은 22억 원이었다. 매년 아들의 생일에 그 해 나온 맥캘란 18년을 선물했더니, 아들의 나이가 28세 되던 해에는 선물 받은 맥캘란 전체의 값어치가 주택도 살 수 있을 금액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맥캘란의 가격은 해가 갈수록 올라 수익성이 뛰어난 투자 상품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맥캘란은 글렌드로낙, 글렌파클라스와 함께 셰리 캐스크 숙성 위스키 삼대장으로 꼽힌다. 줄여서 ‘셰리 위스키’로 부르는 이 스타일의 위스키는 스페인의 주정 강화 와인인 셰리 와인을 담았던 오크통에 숙성을 한 위스키를 말한다. 와인에서 연상되는 베리류의 달큰하고 화사한 느낌, 견과류의 너티함이 셰리 위스키에서 연상되는 전형적인 풍미다. 맥캘란의 진가를 맛보기 위해서는 여러 라인 중 셰리 오크 캐스크 라인을 추천한다.
맥캘란 라벨을 보면 숙성 년수를 의미하는 숫자 밑에 오크통이 그려져 있다. 오크통이 하나면 셰리 오크 캐스크, 두 개면 더블 캐스크 라인을 의미한다. 보기 드물지만 세 개가 그려진 트리플 캐스크 라인도 있다. 오크통의 수는 맥캘란 위스키를 숙성하기 위해 몇 가지 오크통을 사용했는지를 의미한다. 이 중에서도 유러피안 셰리 캐스크에서 숙성시킨 원액만 사용하는 셰리 오크 캐스크에서 가장 전형적인 셰리 위스키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있다.
더블, 트리플 캐스크 제품은 셰리의 전형적인 풍미보다는 더 달고 부드럽다. 분명 서로 다른 매력이지만 셰리 삼대장으로서의 맥캘란 매력을 알고 싶다면 셰리 오크 캐스크를 추천한다.
[왼쪽이 셰리 오크 캐스크, 오른쪽이 더블 캐스크 라인]
매년 가격이 가파르게 올라 위스키 애호가 사이에서는 애증의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같은 12년 숙성 엔트리급 위스키와 비교했을 때 글렌드로낙이 10만 원 초반인데 비해 맥캘란은 10만 원 후반 정도로 가격 차이가 난다.
그렇지만 맥캘란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가장 기본인 12년 셰리 오크 캐스크를 비롯해 18년,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25년 이상의 고숙성 제품까지 입고되자마자 금세 매진되는 경우가 많다. 맥캘란이 눈앞에 있다면 가격 때문에 망설여질지 모른다. 하지만 슬프게도 어쩌면 그게 가장 저렴한 가격일지도 모르겠다. 맥캘란의 가격은 매년 오르고, 가격이 올라갈수록 더 잘 팔리는 명품 반열에 오른 위스키다.
[2]
인기 스타가 되어버린 내 친구, 발베니
예전엔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발베니 대표적이다. 발베니는 우드 피니시 기법을 가장 먼저 도입한 증류소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우드 피니시 기법이란, 위스키를 한 캐스크에서만 숙성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다른 캐스크로 옮겨 숙성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런 숙성 과정을 통해 복합적인 풍미를 가진 위스키가 만들어진다.
발베니의 기본 라인인 12년 더블우드는 11년 6개월간 버번 캐스크에서 숙성하고, 이후 6개월간 셰리 캐스크에서 숙성하는 피니시를 거쳐 만든다. 두 가지 캐스크를 사용한 덕분에 풍부하면서도 균형 잡힌 풍미가 특징이며, 꿀 같은 달큰함과 꽃향기가 연상되는 향긋함이 조화롭다. 심지어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고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편이어서 싱글몰트 입문자에게, 혹은 마시기 편한 데일리 위스키로 추천되던 위스키다.
그랬던 발베니가 몇 년 전부터 가치가 급상승했다. 대중적인 위스키인 만큼 대형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위스키였는데, 최근 들어 발베니가 입고되는 날이면 오픈 전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고, 많은 물량이 입고돼도 하루면 소진되곤 한다. 위스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대표적인 입문용 위스키인 발베니의 인기 또한 함께 늘어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전에는 10만 원 이하였던 가격도 최근에는 10만 원 초중반 정도로 올랐다. 이런 변화에 위스키 애호가들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출처 : 발베니 증류소 공식 홈페이지]
위스키 입문자라면 발베니는 반드시 경험해 보아야 하는 위스키인 건 맞다. 하지만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술이 오픈런 해야 구할 수 있는 술이 된 것에 많은 생각이 든다. 매일 붙어 다니던 친구가 길거리 캐스팅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이제는 스크린으로만 볼 수 있는 사이가 된 기분이랄까. 친구의 성공이 기쁘지만 전만큼 자주 볼 수 없음에 아쉽기도 하다.
마시기 편한 부드러운 풍미가 발베니의 특징인 만큼, 어찌 되었든 너무 힘주어 마시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고생 끝에 구한 대단한 위스키’라는 생각보다, ‘누구나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만인의 친구’ 같은 편한 이미지가 발베니에 더 어울린다.
[3]
갓성비 버번의 추억,
러셀 리저브 싱글배럴
옥수수를 주재료로 하는 미국 버번 위스키는 몰트를 주재료로 하는 스카치 싱글몰트 위스키에 비해 직관적인 단맛이 잘 느껴지는 게 특징이다. 몰트 위스키가 복잡 미묘한 풍미의 조화를 추구한다면, 버번 위스키는 돌직구 같달까. 이런 이유로 위스키에 입문하는 이들은 스카치 싱글몰트 위스키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라도 버번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가 많다.
버번 위스키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 많은 이른바 버번 삼대장으로 와일드 터키, 버팔로 트레이스, 메이커스 마크가 꼽힌다. 40도 중반의 무난한 도수와 전형적인 버번의 풍미를 가진 이 세 가지 위스키를 마셔보고 좋았다면, 다음으로 추천할 만한 위스키가 바로 러셀 리저브 싱글배럴이다. 와일드터키 증류소의 최고 책임자인 마스터 디스틸러 지미 러셀, 에디 러셀 부자의 이름을 딴 위스키다.
싱글배럴에서 ‘배럴’은 위스키를 숙성하는 오크통을 의미한다. 오크통을 뜻하는 단어로 스코틀랜드에서는 주로 캐스크를, 미국에서는 주로 배럴을 사용한다. 나라마다 위스키 오크통에 대한 규정이나 주로 사용하는 나무 등이 달라 배럴과 캐스크는 엄밀히 말하면 의미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위스키를 넣고 숙성시키는 오크통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위스키는 보통 여러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원액을 블렌딩해서 만든다. 싱글몰트라면 몰트로 만들어진 원액만을, 블렌디드라면 몰트가 아닌 다른 곡물로 만들어진 원액을 추가로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블렌딩’은 균형감 있고 일관된 풍미를 만들기 위해 기본적으로 거치는 과정이다.
싱글배럴이란 블렌딩을 하지 않고 하나의 오크통에서 나온 원액만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여러 원액을 섞어 맛을 새로 만들어 낼 수 없으니 싱글배럴은 특히 맛 좋은 오크통만을 선별해 만든다.
[출처 : rarebird101.com]
55도의 한 단계 높은 도수에서 오는 타격감, 카라멜 바닐라가 연상되는 달큰함, 풍미의 깊이를 더하는 스파이시함은 버번 특유의 매력을 잘 드러낸다. 또한 아세톤 같은 거친 향은 절제되어 있어 도수에 비해 자주 마시기에도 부담스럽지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위스키의 매력은 가격이다. 아니, 가격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7~8만 원대에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던 이 위스키, 보통 4~5만 원 정도 하는 버번 삼대장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매력적인 가격대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맛에 비해 가격은 저럼했으니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인기가 높아지는 건 당연했다.
요즘엔 10만 원 초중반 정도로 가격이 올랐고, 당분간 오름세가 계속될 것 같다. 이전처럼 가성비가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맛 자체로는 여전히 추천할 만하다. 다만 입고 되자마자 오픈런을 하는 게 아니면 구하기 쉽지 않은 편이다. 잔 당 가격이 비싸지 않으니 우선 바에서 잔으로 접해보자.
[4]
섬세하고 절제된 일본 위스키의 매력, 히비키
일본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와 더불어 세계 5대 위스키 생산국으로 꼽힌다. 세계적인 위스키 평론가 짐 머레이가 산토리 야마자키 위스키를 2015년 세계 최고의 위스키로 꼽으면서 본격적인 재패니스 위스키 붐이 일어났다. 현재는 일본 내 여러 위스키 증류소가 있지만 그 역사는 산토리의 야마자키 증류소로부터 시작되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양조를 공부하고 온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 타케츠루 마사타카와 사업가 토리 신지로가 1923년 세운 일본 최초의 위스키 증류소다.
산토리 위스키는 초창기부터 창업주 토리 신지로의 의견에 따라 로컬 입맛에 맞는 대중적인 위스키를 만들고자 했다. 반면 정통 스카치위스키 스타일을 추구한 타케츠루 마사타카는 이런 견해의 차이로 훗날 독립해 닛카 위스키를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로컬 입맛에 맞는 위스키를 추구한 산토리가 세계 시장에서 80%가량을 차지하는 스카치위스키와 비교해 독특한 풍미를 보였고, 그 결과 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2019년 방문했던 산토리 야마자키 증류소]
히비키는 산토리의 블렌디드 위스키다. 히비키는 일본어로 ‘울리다’라는 뜻으로 병에는 ‘울릴 향’ 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교향악’ 할 때 그 ‘향’이다. 수많은 악기 소리가 어우러져 만드는 심포니라니, 여러 곡물로 만든 원액을 블렌딩해 조화로운 맛을 추구하는 블렌디드 위스키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 이름답게 히비키는 섬세하고 복합적인 풍미가 훌륭하다. 맛과 향이 튀는 구석 없이 절제되어 있는데 심심하기보다는 섬세하고 묘하다.
일본 위스키가 큰 인기를 끌게 되면서 원액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 위스키는 긴 숙성 기간을 필요로 하다보니 수요가 많아진다고 해서 공급을 즉각 늘리기 힘들다. 그래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는 증류소에서는 숙성년수를 표시하지 않는 NAS(None Aging Statement) 제품을 많이 내놓는다. 히비키 하모니 역시 12년, 17년 등 숙성 년수가 표기된 제품을 찾아보긴 힘들고, 현재는 ‘재패니스 하모니’라는 NAS 위스키가 주력 제품이 되었다. 가격은 10만 원 중후반 정도인데 이마저도 워낙 생산되는 양 자체가 적다 보니 구하기가 쉽지 않아 오픈런의 주요 공략 대상이 되곤 한다.
최근 국내에서 ‘위스키 하이볼’이 큰 인기를 끌면서, 하이볼용 위스키로 널리 알려진 ‘산토리 가쿠빈’ 역시 산토리에서 만드는 위스키다. 산토리의 가장 저렴한 위스키 중 하나인 가쿠빈 역시 요즘 국내에서는 오픈런을 할 정도니 히비키의 인기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 있다.
[5]
수집 욕구 자극하는 한정판,
글렌알라키 10년 배치 시리즈
싱글몰트 위스키에 관심 많은 당신이라면 ‘빌리 워커(Billy Walker)’라는 이름을 들어 보았을지도 모른다. 위스키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최고의 마스터 디스틸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벤리악, 글렌드로낙 등 지금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여럿 위스키 증류소의 성공 신화를 이끌었다. 그런 그가 글렌드로낙 증류소를 떠나 2017년 글렌알라키 증류소를 인수하면서 전 세계 위스키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 글렌알라키는 10년 배치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한정판 위스키들을 내놓고 있다.
‘배치’는 위스키를 한 번에 생산하는 단위를 의미한다. 보통 위스키는 여러 오크 통에서 숙성한 원액을 섞어서 내놓는다. 이렇게 블렌딩되어 만들어진 한 단위를 ‘배치’라고 하며, 같은 배치끼리는 같은 맛을 갖는다. 반대로 배치가 달라지면 맛도 달라진다. 사실상 모든 위스키는 이런 ‘배치’ 단위를 갖게 마련인데, 일반적으로 접하는 많은 위스키들은 굳이 배치를 따져가면서 마시지 않는다. 일반적인 위스키 경우 배치가 달라져도 일관된 맛을 내도록 마스터 블렌더가 관리를 하기 때문이다. 반면 글렌알라키 10년 배치 시리즈와 같이 한정판 성격으로 나오는 위스키들은 말 그대로 한정판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배치’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배치가 다르면 맛도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글렌알라키 10년 배치 시리즈는 ‘캐스크 스트렝스(Cask Strength)’ 위스키이기도 하다. 보통 ‘CS’라고 줄여서 부르는 이 위스키들은 물을 타지 않은 위스키 원액을 그대로 병입했음을 의미한다. 숙성을 마친 위스키 원액은 보통 50도 후반에서 60도 초반의 도수를 갖게 되는데, 우리가 마시는 대부분의 위스키들은 여기에 물을 타서 40도 정도로 도수를 낮춘 다음 병입한다. 원액 그대로는 도수가 너무 높기도 하고, 물을 타는 만큼 양도 늘어나니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경제적이다. 반면 CS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가격은 더 비싸지만, 원액 그대로의 높은 도수와 강렬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애호가가 선호한다. 원액 그대로이기 때문에 58.6도, 62.3도 등 뒷자리가 딱 떨어지지 않는 소수점으로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한정판 배치 시리즈에 CS이기까지 해 특별함을 더한 글렌알라키 10년 배치 시리즈는 배치 1부터 시작해 최근 배치 8까지 출시되었다. 이 시리즈는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배치 5, 6 정도부터는 오픈런을 하지 않고서는 구하기 힘들 정도였다. 나도 배치 7을 구하기 위해 매장 오픈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섰는데 60병을 판매하는 데에 54번으로 아슬아슬하게 구입에 성공했다.
[직접 참여했던 글렌알라키 10년 배치 7 오픈런. 매장 오픈 전부터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초콜릿도 나눠줬다.]
글렌알라키는 셰리 캐스크의 풍미를 잘 살리기로 유명하다. 이번 배치 8은 PX, 올로로소 두 종류의 셰리 캐스크, 리오하 와인 캐스크, 이전에 술을 담지 않았던 버진 오크 캐스크에서 각각 숙성한 원액을 블렌딩 했다고 한다. 화사하고 달큰향 셰리 특유의 기분 좋은 맛과 향이 느껴지는 위스키다. 보통 셰리 뉘앙스가 강렬한 경우에 꾸덕하다고 표현을 하는데, 꾸덕함까진 아니지만 가볍지 않은 질감에 피니시도 꽤 오래 남는 편이다. 특히 많은 위스키 애호가로부터 좋은 평을 받은 배치 5와 비교한다면, 풍미의 방향성이 많이 달라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배치 5 못지않게 맛있었다.
[왼쪽부터 배치 5, 7, 8]
기본적으로 한정판이다 보니 위스키 애호가들의 소장 욕구를 강하게 자극하는 위스키다. 나 역시 배치 5, 7, 8, 총 세 병을 소장 중이다. 배치마다 평가가 엇갈리긴 하지만 초기에 나왔던 배치는 희소성으로 가격이 이미 많이 올랐다. 글렌알라키 증류소는 배치 시리즈뿐만 아니라 12년, 15년 숙성 같은 오피셜 라인, 여러 캐스크를 활용한 다양한 라인을 출시하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다음 출시될 배치 9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오픈런이 일어날 정도로 위스키가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것에, 위스키를 열렬히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반갑고 기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생각되는 여러 모습이 나타나 걱정도 된다.
1)우선 인기 많은 몇몇 위스키 브랜드에서 저숙성 제품일수록 특히 맛이 떨어져 간다는 평이 있다. 저숙성 제품에는 고숙성 원액을 일부 섞어 풍미를 내는데, 고숙성 원액이 부족해짐에 따라 저숙성 제품에 들어가던 고숙성 원액 비율이 줄어든 탓이다. 이런 이유로 12년 정도의 엔트리급 위스키들의 맛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이 많다.
2)또 NAS 제품에 대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NAS 위스키는 원액이 부족한 증류소들에게 숙성 년수 기준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는 합리적인 해결책으로, 숙성 년수에 얽매이지 않고 마스터 블렌더가 자유롭게 역량을 발휘해 제품 개발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NAS 제품으로서 끌어내야 하는 장점보다는, 맛에는 특별한 풍미가 없이 패키징만 화려한 제품들이 쏟아져 겉만 번지르르하다는 평이 많아 NAS 위스키 제품에 대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3)마지막으로 위스키를 두고 벌어지는 ‘인질 사태’다. 인기 많은 위스키에는 보통 인질이 함께 붙어있다. 누구나 구하고 싶은 핫한 위스키를 사려면 원하지 않는 다른 위스키도 함께 세트로 사야 하는 식이다. 그리고 이 인질 위스키는 보통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해 재고 처리가 어려운 위스키인 경우가 많다. 인기가 없다고 해서 꼭 맛없는 위스키인 것은 아님에도, 원치 않게 구입하게 된 이 위스키에는 좋은 인식을 갖기가 어렵다.
위스키 가격이 치솟고 오픈런까지 생기게 된 데에는 위스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탓도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공급망에 차질이 생긴 탓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공급망 이슈는 코로나 유행이 잦아듦에 따라 함께 해소되어 가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공급이 정상으로 돌아온 시점에도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위스키를 즐기고 시장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가 더욱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위스키 입고 정보를 발 빠르게 얻을 수 있는 맥케이브 인스타그램 계정을 소개한다. 인기 많은 위스키를 구하기 위해서는 정보력이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위스키의 입고 소식을 입수했다면 남은 것은 최대한 일찍 그 매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위스키 발매 소식을 빠르게 전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맥케이브 @maccave_news. 출처=맥케이브]
트렌드와 유행을 좇는 것은 즐겁다. 하지만 유행만 좇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나만의 위스키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트렌디한 위스키는 좋은 시작점 정도로, 혹은 누구나 한 번쯤 들렀다 가는 유명 관광지 정도로 생각하면 좋겠다. 나만의 취향이 무럭무럭 커갈수록 위스키가 주는 즐거움도 함께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