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푸른 하늘, <썸머 워즈>의 계절 배경 그 자체, <늑대아이>의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씨 등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을 보면 자연스럽게 여름이 떠오른다. 여름을 배경으로 한 이유가 무엇인지라는 질문에 그는 “뜨거운 에너지를 받고 한 단계 더 성장하는 주인공을 그리고 싶었다”고 답한 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보고 싶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들을 살펴보자.
시간을 달리는 소녀 (2007)

아마도 호소다 마모루 감독을 한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게 한 실질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츠츠이 야스타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주인공 마코토가 우연히 시간여행 능력을 얻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원작과는 설정과 세계관을 같이 할 뿐, 주인공도 서사도 다르다)
호소다 마모루의 여름 사랑이 무척 느껴지는 작품이다. 티 하나 없이 맑은 하늘, 땡볕에서 야구를 하는 인물들, 영화 러닝 타임 내내 자극하는 매미 소리 등, “미래에서 기다릴게”라는 이 작품 최고의 명대사가 나왔던 저녁 무렵의 시간 등 여름 자체를 애니메이션으로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마코토가 시간 여행을 하면서 선택의 책임을 느끼고, 성장하는 모습을 여름 하늘과 연결시켜 메시지를 강화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 깊다. 원작 소설을 단순히 영상화한 것 이상으로, 새로운 주제와 소재로 만든 점도 대단하다. 그런 연출력을 인정받으며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했고, 한국에서도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엄청난 극찬을 이끌어냈다.
썸머 워즈 (2009)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메가 히트 뒤로 나온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차기작.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 전 <디지몬 어드벤처>의 극장판(<디지몬 어드벤처: 우리들의 워 게임!>)도 연출했는데, <썸머 워즈>는 마치 그때의 상상력과 컨셉을 자신만의 오리지널 작품으로 다시 내놓은 모습이다. 가상 현실 OZ가 해킹 당하면서 오프라인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 이를 막기 위한 켄지와 나츠키, 진노우치 가문의 고군분투를 담았다.
<썸머 워즈>라는 제목답게 여름을 배경으로, 켄지와 나츠키의 썸(?)과 성장담을 유쾌하면서도 밀도 있게 그려낸다. 특히 구성원 모두가 개성 넘치는 진노우치 가문 사람들이 그동안의 오해를 풀고 하나가 되는 모습은 찐한 가족애의 감동도 함께 건넨다. 가상 현실 OZ에서 벌어지는 여러 모습 등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구현한 부분도 흥미롭다. 여담으로 <썸머 워즈> 개봉 당시 LG텔레콤에서도 OZ라는 모바일 서비스를 홍보하고 있었는데, 그런 우연 덕분에 <썸머 워즈> 국내판 예고편에서 LG텔레콤의 광고음악 ‘World of OZ’가 삽입되기도 했다.
늑대아이 (2012)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 워즈>까지 연이은 히트작을 내놓은 호소다 마모루. 신작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부담감도 많았을 듯하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다음 작품에서 감동 대작을 만들어내며 많은 애니메이션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작품이 바로 <늑대아이>다.
<늑대아이>는 늑대인간과 인연을 맺은 평범한 대학생 하나가 두 아이 유키(눈)와 아메(비)를 키우는, 조금은 남다른 육아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크게 두 파트로 진행되는데, 늑대인간과 사랑에 빠진 하나의 이야기, 그리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은 후반부로 나눠진다. 이야기의 진짜 핵심은 후반부에 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각기 다른 선택을 하는데,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모성애의 힘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제목은 <늑대아이>이지만, 영화는 <늑대아이>의 어머니를 향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 작품 이후로 호소다 마모루 감독 작품 세계에 작은 변화가 발견된다. ‘가족’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인데, 그런 모습들이 향후 <괴물의 아이>와 <미래의 미라이>까지 이어진다.
괴물의 아이 (2015)

<괴물의 아이>는 평범한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판타지를 주로 그렸던 호소다 마모루 감독 작품 중에서도 성격을 달리하는 영화다. 애당초 이 작품의 주요 세계는 현실이 아닌 괴물들이 사는 세계라는 판타지를 무대로 한다. 그럼에도 지금 현실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들, 가령 우정, 가족애, 특히 부성애의 의미를 강조하며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가 목소리를 참여해서 많은 화제를 낳았다. 주인공 큐타의 친구이자 스승, 더 나아가 유사 아버지로 존재감을 가진 쿠마테츠 역을 맡아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이 밖에 미야자키 아오이, 소메타니 쇼타, 쿠로키 하루, 히로세 스즈 등 호소다 마모루 감독 작품 중 가장 화려한 보이스 캐스팅을 자랑한다.
미래의 미라이 (2019)

<늑대아이>에서부터 부쩍 가족의 의미를 강조한 호소다 마모루. 이중 <미래의 미라이>는 그의 최근 경향을 가장 많이 반영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한창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4살 쿤에게 여동생 미라이가 생긴다. 부모님의 사랑도 당연히 동생에게 쏠리는데, 이에 위기감을 느낀 쿤. 그러던 어느 날 미래에서 온 동생 미라이를 만나면서 뜻밖의 모험을 떠난다.
<미래의 미라이>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개인사와 많이 연관되어 있다. 실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첫째가 어떻게 동생을 받아들일까?”라는 흥미로운 질문에서 영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극중 몇몇 에피소드는 두 아이들에게 있었던 일을 넣기도 했다고. <미래의 미라이>는 형식적인 면에서도 조금 독특한 구성을 지녔다. 기승전결의 이야기가 아닌, 단편 소설처럼 개별 에피소드와 각각의 주인공이 존재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뭉쳐 큰 그림이 되고, 무엇보다 하나의 가족으로 탄생하는 모습을 의미 있게 보여준다.
용과 주근깨 공주 (2021)

<늑대아이>로부터 <미래의 미라이>까지, 가족의 이야기를 주로 담아냈던 호소다 마모루. 그의 최신작 <용과 주근깨 공주>는 오랜만에 <썸머 워즈> 스타일로 돌아와서 반가움을 더한 작품이다. 제작 초기부터 <미녀와 야수>를 모티브로 했다는 이 작품은, 엄마의 죽음으로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법을 잃은 소녀가 가상의 공간에서 자신의 재능과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을 깨닫는 과정을 담았다.
매 작품마다 기대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주지만, <용과 주근깨 공주>는 전작들과 차원이 다른 스케일과 이미지를 선사한다. 가상의 세계 U를 배경으로 상상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듯한 작화와 구성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노래가 중요한 소재인 만큼,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연출력 또한 돋보인다. 여러모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다양한 도전을 엿볼 수 있는 작품. <시간을 달리는 소녀>이후 오랜만에 10대 주인공의 성장담을 그린 점도 반갑다. 특히 엄마의 죽음이라는 가슴 아픈 시간을 받아들이고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흐뭇함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한다. 이 작품 역시 여름의 이미지가 군데군데 보인다. “뜨거운 에너지를 받고 한 단계씩 나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는 그의 여름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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