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 사는 게 지친다.." 아침 일찍 메모한장 남겨놓고 어머니가 집을 나간 이유

주말마다 자식들이 온다는 연락이 오면 나는 며칠 전부터 마음이 바빠졌다. 아들네가 온다고 하면 며느리가 좋아하는 나물부터 손주가 잘 먹는 잡채까지, 냉장고 한 칸을 통째로 채워야 마음이 놓였다. 딸네가 온다고 하면 사위 입맛에 맞춰 짭짤한 반찬 몇 가지를 더 만들어뒀다. 자식들은 늘 도착하기 전에 전화로 이것 좀 해달라, 저것 좀 해달라 부탁했고, 나는 늘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문제는 이상하게도 정작 다 같이 모이는 그 시간에 나는 늘 부엌에 있었다는 거다. 거실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리고 다들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는 반찬 그릇을 채우고 설거지를 하느라 그 웃음소리를 문 하나 사이에 두고 들어야 했다. 결혼하고 처음 시댁 반찬을 만들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목이 아파도 반찬통을 채웠다

며칠 전 병원에 다녀왔다. 손목이 계속 시큰거려서였다. 의사는 무리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이번 주만 지나면 좀 쉴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번 주만 지나면 또 다음 주가 오지 않느냐고.

그날 저녁 식탁에 앉아 반찬통 목록을 적고 있는데 손목이 또 욱신거렸다. 남편이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더니 물었다. 당신, 이걸 이렇게 매주 혼자 하는 거 힘들지 않냐고. 나는 40년 가까이 해온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대답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내가 적어둔 목록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남편이 내민 기차표

다음 날 저녁, 남편이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안에는 기차표 두 장이 들어 있었다. 날짜를 보니 이번 주말, 자식들이 오기로 한 바로 그날이었다. 나는 남편을 쳐다보며 애들 오는데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남편은 그러니까 가자는 거라고, 이번엔 당신도 좀 쉬라고 했다.

결국 그날 밤 나는 평소처럼 반찬 재료를 씻고 다듬어 밑간까지 해두었다. 다만 완성해서 그릇에 담아두는 대신, 손질만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식탁 위에 메모 한 장을 남겼다. 재료는 다 손질해뒀다, 나머지는 너희가 만들어 먹어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정적

토요일 아침, 나는 40년 만에 처음으로 알람 없이 늦잠을 잤다. 기차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우리 도착했는데 왜 집에 아무도 없어?" 뒤이어 냉장고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들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이거 다 재료만 있고 반찬이 하나도 없는데?"

식탁 위 메모를 발견한 며느리 목소리도 들렸다. 아들이 다시 물었다. "엄마, 지금 어디야?" 나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여행 왔어. 나도 이번엔 좀 쉬려고." 전화기 너머가 한동안 조용했다. 그러다 아들이 그래도 미리 말은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나도 십몇 년 넘게 너희가 온다는 말만 듣고 전부 내가 준비해놨지, "이번엔 내가 할게" 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

전화를 끊고 나니 손끝이 떨렸다. 남편이 내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나는 그저 창밖 풍경만 바라봤다. 집에서는 그날 난리가 났다고 한다. 아들과 며느리가 휴대폰으로 반찬 만드는 법을 검색해가며 하루 종일 부엌에서 씨름했고, 결국 저녁이 되어서야 볼품없는 상 하나를 겨우 차려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딸에게 전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