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가해자 보호하는 ‘가정보호처분’…가정폭력 10명 중 3명만 형사처벌

지난해 중년 여성 ㄱ씨는 폭력 행위를 반복하는 남편을 경찰에 신고했다. 남편은 가정폭력으로 경찰에 입건됐지만,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돼 가정법원으로부터 의료기관에서 6개월 치료를 받는 처분을 받았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지만 남편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고, ㄱ씨는 다시 남편을 경찰에 신고했다. 이번에도 역시 남편은 형사 처벌 대신 ‘가정보호사건’으로 가정법원에 송치돼 보호관찰과 상담(10회) 처분만을 받았다. 두 번이나 가정폭력 신고를 해도 남편과 격리는 이뤄지지 않았고, 계속 멈추지 않는 남편의 폭력에 ㄱ씨는 더 이상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막막해 가정폭력상담소를 찾았다.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들은 가해자가 가정보호처분을 받고도 폭력을 멈추지 않아 피해가 반복되는 사례를 흔히 접한다고 했다. 지난해 부산 길거리에서 1살, 8개월짜리 아이를 안고 부인을 폭행해 상해 등 혐의로 형사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의 경우에도, 이전에 가정폭력으로 가정법원에서 가정보호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고 알려졌다.
이처럼 ‘가정보호사건’ 처리 뒤에도 폭력이 재발하는 사례가 많지만, 가정폭력 사범 10명 중 7명가량은 불기소되거나 가정보호 사건으로 가정법원에 넘겨지는 등 형사처벌을 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법원에서는 상담위탁 등 ‘솜방망이 처벌’이 다수여서 살인이나 중상해 같은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를 강화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경찰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1~8월까지 가정폭력 사건으로 검거된 3만3096명 중 ‘가정보호사건’으로 넘겨진 경우가 1만2176명(36.8%)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불기소 1만904명(32.9%), 기소 9316명(28.1%) 순이었다. 가정보호사건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에 따라 배우자나 부모, 자녀 등 가족 사이에 벌어진 폭행·상해·협박 등을 형사 처벌하는 대신 가정법원에서 처분을 내리도록 한 제도다
가정폭력 가해자 처벌의 ‘높은’ 문턱은 낮은 검거율에서도 드러난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18만4188건이며 검거율은 11.5%(2만1179건)였다.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2022년 22만5609건, 2023년 23만830건, 2024년 23만6647건으로 매년 늘고 있지만, 같은 기간 검거율은 19.9%에서 19.3%, 16%로 하락했다. 올해 1~8월 검거율(11.5%)은 2022년과 비교했을 때 40%가량 줄어든 수치다.
가정보호처분은 대부분 상담위탁·사회봉사 등으로 끝나며,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조치는 미미했다. 용혜인 의원실에서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1~6월 전국 가정법원에서 처리한 가정보호사건 8300건 중 가정보호처분이 내려진 건 4398건(53.0%), 불처분은 3833건(46.2%)이었다 가정보호처분 유형별로는 상담위탁(8호)이 24.7%(2046건)로 가장 많았고 사회봉사·수강명령(4호)이 11.8%(978건), 보호관찰(5호)이 5.8%순이었다.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1호) 처분을 한 경우는 0.3%(24건)에 불과했다. 가해자의 생활 장소를 피해자와 같은 주거지 대신 보호시설로 제한하는 감호위탁(6호)을 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가해자들이 맨 처음 경찰조사를 받을 때는 (처벌을) 두려워할 수 있으나 가정보호사건 처리 과정에서 ‘법원까지 가도 내게 별일 없구나’ 등 강력한 학습효과가 생겨 폭력을 멈추지 않고 피해자들이 더욱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들은 ‘경찰에 신고해도 별다른 소용없다’는 무기력감에 휩싸이며 보복 폭행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반복되는 가정폭력은 살인이나 중상해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기에,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을 ‘가정 유지’에서 ‘피해자 보호’로 전환하는 법 전면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이 2023년부터 올해 8월까지 발생한 살인(미수 포함) 사건 총 1966건을 분석한 결과, 살인에 앞서 가정폭력, 교제폭력, 스토킹 등 친밀관계폭력이 선행했던 사건은 모두 375건(18.8%)이었다. 이 가운데 살인(미수 포함)이 있기 전 가정폭력이 존재했던 경우는 230건(61.3%)으로, 교제폭력(27.7%, 104건)이나 스토킹(10.9%, 41건)을 더한 것보다 많았다.
용혜인 의원은 “경찰이 관계성 범죄 대응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가정폭력 범죄에 대한 미온적 대응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가정폭력처벌법상 보호처분을 폐지하고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 원칙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 의원은 또한 “가정폭력을 ‘사랑싸움’으로 치부해온 법 제도와 인식을 바꿔야 교제폭력·스토킹 등 친밀관계폭력 전반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도 가능하다”며 “가정폭력처벌법을 전면 개정해 법의 목적을 가정 회복에서 피해자 보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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