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감독 절반은 ‘외국인’...약일까 독일까

박강현 기자 2024. 4.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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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포커스] 프로배구·대표팀 외국인 감독 전성시대

한국 배구에 외국인 감독 ‘바람’이 거세다. 다음 시즌(2024-2025) 프로배구 남자부 7팀 중 외국인 사령탑이 이끄는 팀은 5곳. 역대 가장 많다. 지난 시즌엔 2팀이었는데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여자부는 1팀(흥국생명). 지난해 2팀에서 줄었다. 여기에 최근 남녀 국가대표팀 지휘봉도 모두 외국인이 잡게 되면서 외국인 감독 전성시대가 본격 열리고 있는 양상이다.

그래픽=김하경

◇리그·대표 감독 16명 중 절반 외국인

남자부 우리카드는 6년 동안 동행한 신영철(60) 감독과 결별하고 지난 17일 브라질 출신 마우리시오 파에스(61) 감독을 선임했다. 2008년 창단 후 첫 외국인 감독이다. 2016~2020년 일본 파나소닉에서 수석 코치로 활동하며 일본 리그 우승 2회 등에 기여했고 프랑스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동했다. 현대캐피탈은 필리프 블랑(64·프랑스), KB손해보험은 미겔 리베라(40·스페인) 감독 선임을 마쳤다. 성공적으로 팀을 이끌고 있는 대한항공 토미 틸리카이넨(37·핀란드) 감독과 OK금융그룹 오기노 마사지(54·일본) 감독을 합쳐 차기 시즌 V리그 남자부 외국인 감독은 5명으로 늘었다. 여자부(7팀)에선 마르첼로 아본단자(54·이탈리아) 흥국생명 감독이 계약 기간 마지막 시즌을 앞두고 있다.

마르첼로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오른쪽)과 김연경의 모습. /한국배구연맹

대한배구협회도 지난달 남녀 배구 국가대표팀을 이끌 지도자로 각각 이사나예 라미레스(41·브라질), 페르난도 모랄레스(42·푸에르토리코) 감독을 낙점했다. 프로배구와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 16개 중 절반에 외국인들이 포진하는 전례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2010-2011시즌 흥국생명에 일본 출신 반다이라 마모루 감독이 첫 외국인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래 지난 시즌 남녀 4팀으로 역대 가장 많은 외국인 감독이 활약했는데, 다음 시즌엔 6팀으로 더 늘었다.

◇선진 배구 접목·소통 약점 공존

외국인 지도자에게 기대하는 효과는 유럽·남미·일본식 ‘선진 배구’를 접목해 경쟁력을 키우고, 선수 기용에서 선후배 관계·구단 고위층 입김 등 악습을 차단하는 부분에 주로 있다. 외국인 감독들은 모두 국가대표나 해외 유수 리그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뒤 한국으로 넘어왔다. OK금융그룹 오기노 감독은 공격 중심 한국식 배구에 수비를 강화하고 범실을 줄이는 일본식 배구를 잘 조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국인 선수에게 공격을 일임하는 ‘몰빵 배구’도 지양했다. 초반엔 선수단과 갈등을 겪는 등 잡음이 있었지만, 팀을 8년 만에 챔피언 결정전 무대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OK금융그룹 관계자는 “일본의 배구와 한국 리그의 현실을 절충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틸리카이넨 감독도 탄탄한 선수층에 전술적인 ‘살’을 잘 붙여 4시즌 연속 통합 우승(리그 1위·챔피언 결정전 우승)이란 업적을 일궜다.

반면 여자부 페퍼저축은행은 삐걱댔다. 2023-2024시즌을 앞두고 선임한 아헨 킴(미국)은 개인 사유로 갑자기 그만뒀고, 후임 조 트린지(미국) 감독은 팀 연패(連敗) 기록(23연패)을 새로 쓰는 등 부진을 거듭하다 경질됐다. 소통에 어려움을 겪어 팀 내홍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페퍼는 지난달 내국인(장소연) 감독으로 선회했다.

대한항공 토미 틸리카이넨(왼쪽) 감독과 OK금융그룹 오기노 마사지 감독이 지난달 31일 챔피언 결정전 경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국내 배구계엔 위기이자 기회

외국인 감독이 점차 늘어나는 건 국내 배구인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는 걸 뜻한다. 국내 배구계 경쟁력에 위기 경보가 울린 셈이다. 문용관 전 남자 대표팀 감독은 “스포츠에는 결과론으로 어느 정도 접근할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 배구가 하락세를 보이고, 유럽·남미·일본 배구는 여전히 강세를 유지한다”면서 “새로운 매뉴얼과 시스템을 도입해보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한국적인 배구’가 무엇이냐는 물음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국내 지도자들이 국가대표팀 성적이 부진하다 보니 감독 자리를 ‘독이 든 성배’로 취급해 꺼리는 것도 외국인 지도자 도입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배구연맹(KOVO) 관계자는 “외국인 감독 성공 사례가 생기다보니 일종의 ‘유행’이 된 것 같다”면서 “그들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면 느슨해진 국내 배구판에 자극이 되면서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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