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자격'받고 살인·마약…범죄자 못 쫓아내는 낡은법

장서우 2024. 10. 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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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난민법 개정 착수
지난해 난민심사 2만건 육박
무분별한 수용에 경계 목소리
"안보·공공질서 해칠 땐 자격박탈"
행정소송 42%가 난민 소송
판사들도 "재신청 제한해야"
10년 넘은 난민법 손질 목소리 커
2021년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국내로 이송하기 위해 카불공항에 도착한 한국 공군 수송기에 난민들이 탑승하고 있다. 한경DB


지난해 말 울산에서 몰래 대마를 재배해 상습적으로 흡연해온 20대 러시아인 A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해항 국제여객선터미널로 입국해 난민 자격으로 체류 중이었다. 오피스텔 베란다에서 은밀하게 대마를 키우면서 단속을 피하려고 주변에 탈취용 숯을 설치하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법무부는 A씨 같은 이들의 난민 자격을 철회·취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에 나섰다. 이 개정안은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여러 근거 조항에 국가안보나 공공질서를 해쳤거나 해칠 위험이 있는 경우를 추가하는 게 핵심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장관이던 2023년 12월 제출된 이 개정안은 지난달 19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돼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등의 장기화로 수년 내 난민 신청자가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커 난민법의 구멍을 메울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법무부에 따르면 한국이 난민 인정 심사 업무를 시작한 1994년부터 난민법을 제정한 2012년 이전까지 난민 신청 건수는 총 5069건이었다. 그러다 2015년 5711건의 신청이 이뤄져 법 제정 이전 누적 건수를 처음으로 넘어섰고 2018년 1만 건(1만6173건)을 돌파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잠시 주춤하다 지난해엔 2만 건에 육박하는 1만8837건을 기록했다.

한국은 1992년 아시아 최초로 유엔 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에 가입했고, 역시 아시아 최초로 2012년 난민법을 제정·시행했다. 국제사회 일원으로 난민 보호의 책임을 나눠 지겠다는 취지였다. 이를 기점으로 난민 신청 건수가 급증했고, A씨와 같이 난민 자격을 얻었거나 난민 신청을 한 상태에서 ‘중대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늘었다. 지난 6월 강원 춘천에선 필로폰 등 마약을 유통한 동남아시아 출신 난민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법무부는 난민 자격을 요구하는 외국인 대부분이 보호 필요성이 높지 않은 국가에서 오고 있어 무분별한 수용을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전 세계 난민 발생 상위 5개국(2 023년 기준)은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베네수엘라, 우크라이나, 남수단 순이다. 그러나 한국에 난민 자격을 신청한 외국인 국적 상위 5개국(1994~2024년 기준)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중국, 파키스탄, 인도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1.7%(올해 7월 기준) 수준인 난민 인정률을 유럽 등과 단순 비교해선 안 된다고 했다. 미얀마(58.8%), 부룬디(53.6%), 에티오피아(30.2%), 콩고민주공화국(26.6%) 등 난민 보호 필요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나라에 대한 난민 인정률은 결코 낮지 않다는 점에서다.

난민 심사는 사법부 최대 골칫거리인 ‘재판 지연’의 한 요인이기도 하다. 2024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행정소송 사건 중 상고심까지 간 3526건의 41.8%(1475건)가 난민 소송이었다. 우리 난민법은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이의 제기와 함께 행정심판, 행정소송 등을 통해 최대한도로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론 절차가 종결될 때까지 국내 체류를 보장한다. 문제는 확정판결 이후 난민이 되지 못한 이들의 재신청조차 막을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인권 단체에선 국가안보와 공공질서를 해친 경우에 대한 판단이 자의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객관적 판단을 담보할 법적 근거가 미비해 포괄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국가안보·공공질서 위해는 난민 협약에도 명시된 보호 제외 사유로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에서도 관련 규정이 마련되는 추세인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한다는 입장이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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