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아티스트를 꿈꾸는 10대 래퍼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래퍼 율음(홍율음)을 보면 영락없는 보통 중학생이다. 바가지 머리를 한 12살 소년은 낯선 사람을 마주할 때 부끄러워 말도 몇 마디 내놓지 않는다. 다른 중학생처럼 방과 후 친구와 자전거를 타거나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것이 취미다. 하지만 여느 중학생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벌써 래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래퍼로 활동하고 있어서인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어른스러워 보인다.
율음은 활발히 활동하는 유명 래퍼 스윙스를 사로잡았다. 스윙스와 함께 음악 활동을 하게 된 거다. 또 최근 가장 ‘핫’한 힙합 프로듀서 ‘세우(sAewoo)’를 스승으로 삼아 배움을 청했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지난 3월 싱글 앨범 ‘히어로즈 디지즈(Hero’s disease)’를 발표했다. 작업은 주로 대구의 부모님 댁에서 했다. 율음의 방은 그가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쌓여 있다. 그런데 이 장난감은 레고나 게임이 아니다. 키보드와 드럼 패드, 스피커, 전자 기타, 베이스 기타와 같은 음악 창작 도구들이다. 한 구석에 달린 좁은 선반에는 록 밴드 너바나와 라디오헤드, 래퍼 켄드릭 라마, 재즈의 전설 팻 메시니의 앨범이 놓여 있다.
율음은 최근 VICE와 인터뷰에서 “친구들은 보통 가장 유명한 아이돌이 내놓는 음악만 주로 듣는다”며 “미국 유명 래퍼 예(카녜이 웨스트)의 노래를 들려주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본다”고 말했다.

율음은 최근 유튜브에서 예의 다양한 색깔의 음악을 접했다. 유튜브를 통해 음악성을 확장할 수 있었다. 예가 데뷔 앨범 ‘칼리지 드롭아웃’부터 정규 6집 ‘이저스’까지 이뤄낸 커다란 변화의 폭에 감탄했다. 율음은 예처럼 다채로운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가장 유명한 아이돌 음악만 들어요. 예의 노래를 들려주면 이상하게 봐요.”
클래식 음악 작곡가 어머니 덕에 9살 때쯤 유튜브 채널 ‘OTHANKQ’를 알게 됐다. 전자 댄스음악(EDM)과 클럽 음악을 제작하는 채널 운영자가 혼자 음악을 제작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다. 이때 영상을 보면서 비트 만드는 법을 배웠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의 공연도 봤다.
율음은 “자기 전 수많은 대중 앞에서 라이브 공연하는 모습을 상상한다”며 “혼자 뮤직비디오도 만들어봤다”고 말했다. 그는 뭐든 스스로 하는 걸 좋아한다. 또 이렇게 직접 만든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 그는 “혼자 작업할 때 가장 편하다”며 “자유롭다고 느끼고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여름엔 14곡이 담긴 첫 정규 앨범 ‘마스크스: 사이드 에이(Masks: Side A)’를 발매했다. 스스로 제작부터 작곡과 연주, 믹싱(목소리와 악기 소리를 합쳐 편집하는 과정), 공연까지 도맡아서 했다.

스윙스와 세우는 독특한 이 앨범을 접하고선 한밤중에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갔다. 율음은 힙합 아티스트 트레이드 엘과 보이콜드가 높이 평가한 덕에 이미 음악 플랫폼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스윙스는 세계 시장을 노리고 설립한 힙합 레이블 ‘위더플럭 레코즈’의 새로운 멤버로 율음을 영입했다. 회사엔 세우와 윤훼이, 존오버, 오르내림이 있다. 여러 장르가 어우러진 음악을 내놓는다.
율음은 자신의 음악을 ‘하이퍼 팝’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이 창작한 많은 곡에 힙합의 묵직한 베이스 음을 깔고 전자음을 잔뜩 넣어 전환 효과를 삽입한다. 가사의 경우에는 대부분 영문으로 써내려갔다.
그는 “외국 바이브(느낌)를 풍기기 위해 영문 가사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율음은 서양 가수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 래퍼 덕에 길을 찾았다.

사실 힙합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면 율음처럼 눈에 띄고 싶어 하는 어린 래퍼가 많다. 이들은 힙합 커뮤니티 ‘힙합 플레이야’의 오픈 마이크라는 공간에 믹스테이프(비정규 음반)부터 비트, 커버(다른 가수 노래 재해석) 음원을 올려놓는다. 평가를 듣고 협업 기회를 얻고 나아가 힙합 레이블 눈에 들기 위해서다.
사실 10여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10대들은 아이돌을 꿈꾸지 래퍼를 꿈꾸진 않았다. 사람들은 ‘힙합’이라면 재정난에 시달리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데도 힙합 가수는 자부심이 넘쳤다. 아이돌 문화와 연결 지어지거나 TV에 얼굴을 비추는 것을 수치스러워했다. 래퍼는 연예인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강한 비트가 들어간 ‘붐뱁’ 스타일의 힙합으로 유명한 스윙스가 Mnet 힙합 오디션 ‘쇼미더머니2’에 참가자로 등장했을 때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파장이 일었다. 그는 최종 4위에 그쳤지만 ‘괴물 래퍼’로서 인기를 얻으며 판도에 영향을 줬다. 대중은 랩으로 서로 공격하는 디스 배틀과 노골적인 가사를 들으며 힙합에 흠뻑 빠졌다. 래퍼들은 TV에 출연한다고 해서 자존심을 져버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즌을 거듭하며 더 유명한 래퍼도 등장했다. 씨잼과 비와이, 그룹 아이콘의 바비. 더콰이엇이나 팔로알토 같은 선배 래퍼들은 심사위원과 협업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방송에 나온 곡들은 음원 차트를 휩쓸었다. 때론 인기 아이돌 그룹을 앞섰다. 힙합의 영향력은 10대에게도 미쳤다. 10대들은 Mnet의 또 다른 오디션 ‘고등래퍼’에 출연하면서 역량을 뽐냈다. 이들 사이에서 힙합은 더는 비주류가 아니었다.
스윙스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최고경영자(CEO)로 힙합 레이블 3개를 이끌었다. 또 헬스장 프랜차이즈를 운영했고 부의 상징인 건물주가 돼 잘나가고 있다. ‘쇼미더머니’와 ‘고등래퍼’의 조근애 작가는 “TV 방송의 힘”이라고 말했다. 조 작가는 “한국은 5년 전만 해도 다른 아시아 국가처럼 힙합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며 “유명 래퍼가 자발적으로 TV 오디션에 나오면서 힙합을 주류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조 작가는 누구나 가사를 쓸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이 특히 힙합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올해 18살인 임건우도 율음처럼 학교 다닐 때부터 비트를 만들면서 보냈다. 요즘은 경기 일산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매일 12시간씩 땀을 쏟으며 첫 앨범을 준비한다. 스튜디오가 들어선 상가엔 마사지숍부터 만화방, 모텔까지 여러 가게가 들어서 있다. 건물 5층에 그가 작업하는 스튜디오가 있다. 두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차는 크기다. 테이블과 컴퓨터, 키보드, 스피커, 마이크만으로도 이미 가득 찰 정도다.

그는 VICE에 “목표는 신인상”이라며 “앨범이 나오면 열심히 홍보하겠다”고 밝혔다.
임건우는 16살 때부터 비트를 만들었다. 그러다 인디 힙합계에서 유명한 김아일에게 메시지를 보내 도움을 청했다. 음악 취향을 넓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또 그 덕분에 이번 첫 앨범 발매를 도와줄 수 있는 음반 유통사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15곡이 담긴 앨범에 2년간 공을 쏟았다.
임건우는 “사실 요즘은 하우스(house) 음악이나 펑크(funk) 음악에 더 관심이 있다”며 “힙합은 비트나 배열이 꽤 단순해 많은 아티스트가 음악에 입문하는 통로”라고 말했다. 그도 율음처럼 예술가 부모님을 뒀다. 두 분 모두 화가이자 든든한 후원자다.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고 평가도 해주신다. 또 대학 진학을 보류하도록 허락해주셨다. 매년 대학 진학률이 70%에 육박하는 한국에선 흔하지 않은 일이다.

과거 부모들은 일반적으로 자녀들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음악 활동을 하도록 허락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임건우나 율음 같은 어린 래퍼들도 인정받는다.
율음은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는 천재라고 평가받는다. 율음 자신도 이게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나이가 비슷하거나 훨씬 많은 사람들도 여전히 진로를 찾으려고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아티스트보다는 남 신경 안 쓰고 하고 싶은 일을 언제나 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율음은 “인터넷에서 ‘천재’라고 하는 댓글을 보면 기분이 좋다”며 “하지만 유명한 아티스트보다는 다른 람들을 신경 안 쓰고 하고 싶은 일을 언제나 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알림: 율음은 4일을 기준으로 13세가 됐습니다. 인터뷰 진행일 나이를 기준으로 12세로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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