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 전공자에서 트로트 가수로
"지금은 웃지만, 시작은 처절했어요"
박현빈은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군 복무는 공군 군악대에서 마쳤다.

전통 클래식 무대가 아닌 대중가요 무대로 방향을 튼 건 우연이었고, 트로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군 복무 시절 동료들과의 음악 교류를 통해서였다.
데뷔 후 ‘남자 장윤정’으로 주목
박현빈은 2006년 싱글 ‘빠라빠빠’로 데뷔했다.
월드컵 버전으로 구성된 대형 무대 퍼포먼스는 단번에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이후 발표한 ‘곤드레 만드레’는 그의 대표곡으로 자리잡았다.

장윤정과 같은 소속사였던 그는 ‘남자 장윤정’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인지도를 쌓아갔다.
집안을 덮친 수십억의 빚
어머니 정성을 씨는 도전하는 사업마다 실패했고, 결국 수십억 원의 빚이 가족의 삶을 짓눌렀다고 털어놨다.

박현빈은 빚 갚기를 인생 목표로 삼고 무대에 올랐다.
‘곤드레 만드레’가 히트하자 수입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는 곧바로 수첩에 적어둔 ‘빚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기 시작했다.

박현빈은 “지갑에 만 원 한 장 없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하루에 마라톤, 점심 기업 행사, 저녁 야외 무대 등 9개씩 행사를 뛰며 링거까지 맞아가며 무대를 소화했다.

그는 “그렇게 1년 반 동안 한 달에 27일은 행사장을 돌았다”고 말하며, 마지막 4천만 원을 갚은 날 온 가족이 울었다고 전했다.
마지막까지 지킨 의리
한때 몸담았던 대형 트로트 기획사가 공중분해되자, 박현빈을 포함한 대부분의 가수들이 흩어졌지만 그는 신인 시절 자신을 발탁한 홍익선 대표 곁에 남았다.

“처음엔 몸 하나로 찾아갔지만, 큰 가수가 됐고 가족의 빚도 갚았다. 이제 내가 회사를 지켜야 할 차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현빈은 계약금을 따라 움직이기보다는 함께 가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은 트로트계에서도 보기 드문 결정으로 회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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